<그 깅레 네가 먼저 있었다>, 나태주
이 시집은 <풀꽃>으로 잘 알려진 나태주 시인의 39번째 신작이다. 물론 그 중에는 중복되는 시집도 많겠지만 시인의 성실성은 의심의 여지가 없는듯 하다.
내가 나태주 시인을 처음 알게 된 것도 아래에 적어둔 짧은 시 <풀꽃> 덕분이었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시인은 단 세 줄의 짧은 호흡만으로, 한 눈에 반하는 아름다움과 쉽게 빠지는 사랑이 만연한 이 세상에 소외된 '너'를 위로한다. 그 감성이 부러웠고, 그 위로가 감사했다. 고요한 마음으로 이번 시집을 읽었고 여전히 나태주 시인의 시는 어렵지 않았다. 독자들은 그저 시인이 그려낸 대로 바라보고, 말하는대로 이해하면 그만이었다. 분위기는 잔잔하고 평온해서 힘을 빼고 누우면 시상 위를 유유히 떠다닐 것만 같았다.
비평가들은 나태주 시인의 시가 너무 쉽다는 말을 많이 한다. 말하자면 그의 시는 해석의 여지 조차 남겨 두지 않을 만큼 직관적이어서 누구나 쓸 수 있다는 것이다. 뭐, 일부는 맞는 말이다. 그의 시는 쉽게 읽힌다. 아래에 <장갑 한 짝>이라는 시인의 시 한 편을 올려두었다. 읽어 보면 시인의 시가 쉽다는 데 대체로 동의할 것이다. 시인이 쓴 많은 시는 적어놓은 글자 그대로 이해가 가능하다.
장갑 한 짝
눈 내린 아침
눈길 위에 장갑 한 짝
나도 장갑 한 짝 잃고
많이 속상했는데
누군가 많이 속상했겠다
나도 장갑 한 짝 잃고
많이 손 시렸는데
누군가 많이 손 시렸겠다
길 가에 잃어진 장갑 한 짝
마음도 한 조각.
다만 그것이 왜 비난의 근거가 될까 의아하다. 시의 난해함은 시의 본질이 아닌 양상이나 특징에 가깝지 않은가. 물론 난해한 시도 틀림없이 많다. 그러한 시들이 가진 난해함의 배경에는 시를 쓰는 시인 또한 대상을 보고 생전 처음 느껴보는 감각, 혹은 인상을 느꼈던 것을 설명하려는 데 있다. 형용하기 어려운 최초의 인상을 이성적인 글로 설명하고자 하니 아주 날 것 그대로의 표현만 마치 기호처럼 남을 따름인 것이다. 다만, 인간은 늘 생경한 인상만을 감각하진 않는 법이다. 또한 그 낯설고 생경한 인상이란 것도 사실은 수많은 익숙한 일상이 선행했을 때야 발생하는 법이다. 그렇다면 낯선 인상이 발생하는, 다시 말해 일상의 아주 몇없는 짧은 순간만을 긍정하는 시 의식을 내세워 나태주 시인의 시가 쉽다는 비평을 하는 것은 삶의 대부분을 부정하는 것과 다름아닐까.
인생이 곧 한 편의 시다. 그러니 삶의 일부만 시의 재료로 삶는 폭력 아래 잘려나간 소외된 삶을 회복하자. 인생이 시고, 누구나 인생이 있다. 당신이 써내려간 삶이 시고, 당신은 시인이다. 모두가 시인인 세상을 꿈꾼다. 시인과 비시인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풍요로운 세상을 소망한다.
*부족한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혹시 재미있으셨다면, 심심하실 때 유튜브도 가끔 놀러와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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