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드르와 이폴리토>, 장 라신
반면교사란 '다른 사람이나 사물의 부정적인 측면에서 가르침을 얻었다'는 뜻이다. 가령 부정직한 정치인의 모습을 보며, '나는 저러지 말아야지'하는 식의 학습 과정이 이에 속한다. 장 라신은 서문에서 이와 닮은 본인의 저술목적을 은근히 내비친다.
악덕은 어디서든 그것을 알아보고 그것의 추함을 증오하게 하는 색채로 그려진다. (……) 만일 비극 작가들이 관객을 즐겁게 하는 만큼 교화시키는 데에도 유념해, 이로써 비극의 진정한 목적을 따른다면, 필경 그들은 비극에 대해 보다 호의적인 평가를 내리게 될 것이다.
<페드르와 이폴리트> 서문에서
장 라신은 악덕을 고발함으로써 대중으로부터 그 추함을 증오하게 만들기를 꾀했다. 즉 페드르의 정념을 고발함과 동시에 그 정념 탓에 파멸에 이른 여러 인물들의 삶을 적나라하게 그려냄으로써 대중이 악덕으로부터 반하여 미덕을 좇게하는 것이 장 라신의 계획한 목표 중 하나였던 것이다. 다만 장 라신의 계획이 성공적이었을까. 인물의 비참한 삶을 조명함으로써 비극을 관람하는 제3자는 악덕이라는 것이 본인의 외부에 존재하는 것이라고 사유하기 쉽다. 또한 악덕의 외부성에 대한 착각과 자만은 악으로 물든 본인 내면에 대한 용기있는 성찰을 방해하기 마련이다. 하기야 비극에서 다루는 악덕이라는 것이 일상의 악덕에 비할 때 퍽 극단성을 보이는 탓에 비교적 자신을 투명하게 반성하는 사람 조차 페드르에 비하자면 본인은 미덕에 합한 사람이라 여기는 것이다. 즉 장 라신의 비극을 관람한 관객들이 보이는 보편적 반응이란 페드르의 악덕을 좇지 않기를 소망하는 대신 페드르의 악덕은 현실에 실존하지 않는 비극적 판타지의 재료로 허무하게 소모해 버리는 것이 아닐까.
P.S : 더 보태자면, 반면교사의 학습 방법론 자체가 내 취향이 아니다. 정녕 페드르가 저지른 시대적 악행이 페드르 본인이 어찌할 수 없는 정념에 사로잡힌 것이었다면, 남의 불행을 교훈 삼아 제 삶을 정비하는 심보가 무슨 변태적 학구열일까. 눈물 흘리는 자 앞에서는 수첩을 꺼낼 것이 아니라 손수건을 내미는 데 인간 공감의 의의가 있으리라 생각한다.
*부족한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혹시 재미있으셨다면, 심심하실 때 유튜브도 가끔 놀러와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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