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괴테
(소설의 내용 스포가 있으니 참고 부탁드려요^^)
괴테는 생전에 쉼없이 사랑을 갈구한 인물이었다. 괴테의 작품 대부분이 그가 사랑한 여자들로부터 영감을 얻어 쓰여졌다고 한다. 이 작품도 마찬가지다. 괴테가 법률 사무소에서 견습생으로 일하던 때 실제로 그는 한 약혼녀에게 사랑에 빠진 적이 있다. 베르테르처럼 말이다. 이는 제법 흥미로운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자신이 겪었던 일을 소설의 주요 모티프로 내세웠다는 것은 이로부터 독자가 괴테의 사랑관을 추론할 가능성을 확보하게 되었음을 뜻하기 때문이다 . 쉽게말해 베르테르가 사랑의 열병에 시달리더 보여주는 모종의 행위들과 그것들이 묘사된 방식을 통해 우리는 괴테가 어떤 자기 인식에 이르렀는지 예측할 수 있다. 괴테가 발견한 사랑의 속성은 무엇일까.
베르테르는 자살한다. 로테를 향한 마음을 살아서는 도무지 끊을 수 없었던 베르테르는 끝내 죽음을 결심한다. 아무리 고민해봐도 그의 마음을 멈출 수 있는 거라고는 죽음 뿐이 없었다. 그렇다면 소설에서 베르테르의 죽음이 뜻하는 것이라곤 '육체적 죽음', 혹은 '물리적 소멸' 뿐일까? 만약 그렇게 해석해야한다면, 마찬가지로 괴테의 사랑관은 오직 '물질적'인 개념에만 기초한다고 해석해야 모순이 없다. 즉 현실의 사랑은 죽고 나면 남지 않는 사랑이라는 사랑관을 괴테가 가졌다고 분석해야만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해석에는 한 가지 오류가 발생한다. 베르테르가 죽기 전 로테에게 남긴 마지막 편지를 보면 죽어서도 죽지 않을 사랑을 죽 서술하는 베르테르를 금방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베르테르는 본인이 죽고 난 뒤에도 로테에게 이따금씩 자신을 떠올려달라는 유치한 속내를 내비친다. 이는 살아서 이루지 못한 사랑에 대한 미련을 죽음의 층위에서나마 꿈꿨던 나약한 희망이 아니라, 현실 너머의 본질적이고도 사라지지 않을 사랑의 진정한 실현을 꿈꾼 것이다.
이러한 감상은 순전히 물질주의적 가치가 팽배한 현대에는 도저히 와닿지 않을 말임을 안다. 많은 사람들은 기억 속에만 존재하는 것이 무슨 대수냐고 반박할 것이다. 그러나 이는 내 말을 오해한 것이다. 난 베르테르의 진의가 단지 기억에만 남는 사랑을 꿈꿨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다. 괴테는 물리적 공간에서 단지 혼인만으로 맺어진 두 사람의 사랑이 진정한 사랑인지를 묻기 위한 역설적이고도 극단적인 방법으로 베르테르를 죽음으로 내몰았을 뿐이다.
예를 들어보자. 죽기 전 베르테르는 로테와 격정적인 입맞춤을 나눈다. 로테는 이것이 잘못된 일이라는 세속의 규칙을 금방 깨닫고 베르테르를 밀어낸다. 베르테르도 이내 순순히 밀려난다. 베르테르는 그 단 한 번의 입맞춤이 온 몸에 가져다준 전율을 뼛 속 깊이 새긴다. 반면 베르테르가 본 알베르트는 로테에게 차가운 말만 내뱉는다. 알베르트의 삶을 둘러싼 로테와의 수많은 순간들은 그저 일상의 평범성으로 추락해 아무런 의미를 발하지 못하는 것이다. 하지만 베르테르에게 그 순간은 삶의 전부와 맞바꿀 수 있는 소중한 순간이었다. 즉 베르테르는 알베르트가 로테와 말을 섞고, 살결을 부비고, 일상을 나누는 그 모든 당연한 순간을 죽음과도 맞바꿀 준비가 된 것이다. 다시 말해, 물질의 마주침은 그 접촉 자체에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정신적 층위에서 다시금 새로운 가치를 부여함으로써만 의의를 가질 따름이란 말이다. (이는 괴테가 결코 사랑을 물질적 관점에만 국한하려 하지 않았다는 증거다.) 이러한 베르테르의 마음은 그의 편지에서 다시 드러난다. 아래는 로테와 사랑에 빠진 베르테르가 자신의 감정을 표현한 말이다.
해와 달과 별들은 물론 변함없이 그 궤도를 돌고 있겠지만, 나에게는 이제 낮도 없고 밤도 없어졌다네. 세계가 온통 내 주위에서 사라져 버린 걸세.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괴테, 민음사, 1999
베르테르를 둘러싼 세상의 모든 규칙들은 무심한듯 작동한다. 해와 달과 별이 움직이는 천체의 질서가 그렇고, 나 없이도 잘 돌아가는 저 회사며, 학교며, 내 주변을 둘러싼 모든 요소들이 마치 나란 부품은 필요도 없었다는 듯 잘만 작동한다. 그래도 베르테르는 꿈쩍없다. 내 앞에 숨쉬는 로테 당신만 있어준다면. 세상의 모든 물리적, 관습적, 이념적 조건을 뛰어넘어 진정한 교감을 꿈꿨던 베르테르는 죽어서도 죽지 않는 사랑을 남긴다.
*부족한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혹시 재미있으셨다면, 심심하실 때 유튜브도 가끔 놀러와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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