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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윰 Feb 19. 2020

시선에 담긴 위계


시선은 위계를 함축한다. 무언가를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은 적어도 그 대상과 대등하다는 것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신하가 왕을 쳐다보지 못하고, 짝사랑에 푹 빠진 사람이 상대방 앞에서 안절부절 못하며 시선을 오갈 데 없이 이리저리 옮기는 것처럼 말이다. 이처럼 무언가를 제약없이 조망할 수 있는 위치에 선다는 것은 내 시선의 주체로서 마음껏 자유를 누릴 수 있음을 뜻한다. 눈을 통해 세상의 아름다운 전경을 바라볼 수 있는 자유는 인간이 누리는 큰 혜택 중 하나다. 때로는 적극적으로, 때로는 거리를 두고 자연의 작용을 관조하고 바라보며 자연과 호흡하고 부대끼는 것이 우리네 문화사에서 단단히 큰 몫을 했으리라.


그런데 근대 이후 제도상의 신분이 사라지고, 또 평등을 기치로 내건 현대에 들어서며 조직 내에서도 수평적 위계질서가 자리 잡으니 더이상 "어디서 감히 내 눈을 똑바로 쳐다봐" 따위의 말을 할 수 없게 돼버렸다. 그러한 배경 속에서 오늘날의 권력자들은 다소 흥미로운 방식으로 시선을 제약한다. 아예 조망할 공간을 박탈해버리는 것이다. 다시말해 애초에 마주하질 않는 것이다. 이를테면 해변에 장사진을 치고 돈 낸 사람만 들여보내는 출입금지 조치 말이다. 돈 없는 사람에겐 조망할 기회조차 안 주겠단 거다. 바로 앞에 마주한 사람에게 '어딜 감히 날 쳐다봐' 라고 말하는 건 요즘 사회에 반인격적 처사라고 지탄 받을지 모르니 애초에 내 앞에 서지도 못하게 하는 거다. 작가의 혼이 담긴 예술 작품을 전시한 미술관이라면 몰라도, 자연에 대해서도 조망권을 사고 팔다니.



지저분하더라도 힘을 키울 수 밖에. 더 아름다운 광경을 놓치지 않기 위해 능력을 갖출 수 밖에. 시선의 굴복은 가능 세계의 소멸일 테니. 이겨내는 수 밖에.




*부족한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혹시 재미있으셨다면, 심심하실 적에 유튜브도 한 번 놀러와주세요^^

https://www.youtube.com/channel/UCT6CEgi8KQN2MCIvCLMl-b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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