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배터리를 충전하는 시간의 우선순위
차 2대가 주차되어 있는 마당에서 출근을 할 때는 항상 조심스럽다. 약간의 언덕에 위치한 집은 차를 돌리면 바로 내리막길인 데다 차를 돌릴 공간이 충분하지 않기 때문이다. 어떨 때는 회전하는 각도가 적절해서 한 번에 빠져나가지만 잘못하면 여러 번의 전진과 후진을 반복해야 한다. 새 차를 사기 전 9인승의 차는 화단과 언덕에 여러 번 긁혀서 마음을 상한 일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새 차를 구입한 후에는 앞쪽의 화단을 조정해서 회전하는 공간을 약간 늘렸다. 아침마다 긴장하며 마음을 졸였던 순간은 사라지고 가뿐한 마음으로 출근하게 된다. 매일 출근을 하면서 느낀다. 인생에도 최소한 회전할 공간은 있어야 해! 하루하루 살면서 그다음의 하루하루를 이어나갈 최소한의 공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낀다. 새 차를 들이고 회전할 공간을 조정하자 바쁜 하루도 너무 편안하고 기분 좋게 시작할 수 있으니 말이다.
열심히 살았는데 되돌아보면 삶이 허무하게 느껴질 때가 많다. 최선을 다했는데도 행복하지 않을 때가 더 많다. 정말 바쁘게 사는데 점점 더 바빠지고 마음의 여유는 찾기 힘들다. 이때 하루하루 살아가는 내게 주어진 공간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허무하고 행복하지 않은 것은 열심히 살지 않아서가 아니라 그것을 생각할 공간이 없기 때문이다.
하루라는 전체 중에서 최소한 달려야 했던 의미를 생각하고 느낄 시간과 공간을 만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루의 구성비를 생각해보자. 열심히 달리는 시간 외에 온전히 자신을 위해 투자한 순간이나 시간이 얼마나 되는지, 중력처럼 이끌려 살면서 잠시 쉬면서 열심히 뛰었던 나의 가치와 의미는 무엇인지 생각한 시간은 얼마나 되는지, 나를 위로하고 변명이든 명분이든 간단히 지지한 순간은 얼마나 되지는 살펴볼 일이다.
하루 종일 책상에 앉아서 머리를 앞으로 내밀고 집중하다 보면 목과 어깨는 금방 굳어지고 목 디스크나 어깨를 짓누르는 만성 통증환자가 된다. 앞으로 쏠린 머리의 무게는 중력 때문에 최대 6배 가까이 증가한다고 한다. 집중하다 보면 컴퓨터나 책 앞으로 고개를 쑥 내밀게 되는데 잠시라도 자세를 바로 하고 고개를 돌려주는 습관을 들이며 간단히 피할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우리의 목과 어깨는 늘 통증과 싸우고 있다. 우리의 하루도 이렇게 피할 수 있는 통증을 쌓아가고 있는 것을 아닐까?
하루는 긴장과 이완이 적절하게 균형을 이루면서 구성되어야 한다. 긴장을 할 때 교감신경이 활성화되고 이완을 할 때 부교감 신경이 활성화되어 균형을 이룰 때 질병 없다. 필요해서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일, 목표든 욕심이든 내려놓지 못하고 일에 빠져 있을 때는 긴장이다. 반면에 해야 하는 일에서 조금 떨어져 자신을 바로 보는 여유와 휴식, 정말 좋아서 하는 일들은 이완의 순간이다. 이완이 있기 때문에 긴장은 의미를 가진다. 그리고 이런 긴장과 이완의 자연스러운 균형이 우리를 계속 달릴 수 있게 힘을 제공한다.
하루의 구성비가 깨지는 것은 이완보다는 긴장이 장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도 모르게 긴장하고 있기 때문에 이완의 감각을 잃어버린다. 긴장 상태에서 달리는 짜릿한 쾌감에 중독되어 이완을 오히려 위협적으로 느끼는 감각에 길들여져 있다. 생각하는 인간은 눈 앞에 위협 요소가 사라져도 생각으로 위협에 대한 긴장을 놓지 못하는 존재다. 긴장에 익숙해진 감각은 절대 긴장을 쉽게 인식하지 못한다.
하루 중 이완의 공간을 늘릴 때 우리는 더 힘차게 달릴 수 있다. 이완은 삶의 배터리 역할을 한다. 아무리 좋은 기기도 배터리가 소진되면 작동을 멈추게 된다. 일상에서 뒤로 밀려 나 있던 배터리 충전시간의 우선순위를 높이고 균형을 맞출 필요가 있다. 어느 재무상담사는 가계부를 쓰기보다는 지출의 구성비를 살피고 정해진 지출의 구성비를 관리하다 보면 저축이 늘어난다고 주장한다. 우리가 파산하는 것은 저축을 못해서가 아니라 지출의 구성비가 깨지기 때문이다. 돈이 모자라는 것은 이런 지출의 구성비를 지키지 못했을 때다. 하루가 정신없이 바쁜 것은 실제로 바쁜 일상이 이유이기도 하겠지만 배터리를 충전하는 시간과 공간을 가지지 못했을 때다.
이젠 장거리의 시대다. 우리가 늘리고 지켜야 하는 하루의 구성비는 어떤 것일까? 타인의 목적을 위해 달렸다면 자신을 위해 투자하는 시간, 좋아하는 일, 자신의 의미와 가치를 느끼는 시간들이다. 해야 하는 일을 접어두지 않아도 된다. 약간의 거리를 두는 나만의 짧은 시간만으로도 충분하다. 하루를 잠시 스캔하는 시간, 그중에서 내게 의미 있었던 일과 단어를 해시태그처럼 잠시 정리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한다. 매일 일정한 시간 내 곁에 두는 것이 중요하다. 차에서 내리기 전 5분이라도 좋지 않을까?
또 자신을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들과 만나는 시간, 대자연이나 예술 작품을 통해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하루를 초월하는 시간, 모든 것을 잊고 온전히 몰입하는 시간들은 흔들리고 굳어진 감성을 키운다. 감성이 충전되었을 때 우리는 더 강하고 길게 나아갈 수 있다. 감성은 좀 더 넓은 공간과 거리를 필요로 한다. 감성에 공간이 생길 때 떠밀려 달려야 하는 순간들이 이해되고 소화된다. 윤활유 없이는 아무리 거칠고 강한 기계라도 그 기능을 상실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