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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권수 Apr 03. 2019

때로는 죽음을 통해 삶과 만난다.

현재를 제대로 누리는 영혼의 가지치기

불필요한 영혼의 가지치기

어느 강연 주제에서 “죽음을 바라보다 삶을 마주하다”라는 문구를 보았다. 정말 맞는 말! 우리는 죽음을 통해 삶을 보다 냉정하게 바라보게 되는 듯하다. 세상을 제대로 누리지도 못하고 산화한 누나의 죽음을 통해 나는 세상의 성취보다 가족의 중요성을 읽었다. 어릴 적 친구의 죽음을 통해 살아있는 나의 죽음을 생각하게 되었다. 죽음 앞에 서면 살아 있다는 것은 경이롭고 감사한 일이 된다. 죽음 앞에서 삶은 보다 선명해진다. 일상의 복잡하고 거추장스러운 패턴을 끊고 보다 단순해진다. 내일 죽는다고 생각하면 과거의 아쉬움과 책망, 미래의 성취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우리를 끌고 다니는 과거와 미래의 생각들이 멈추고 잡다한 생각들이 욕심이다는 생각, 그 욕심이 현재를 너무 붙잡고 있다는 생각을 쉽게 한다. 현재의 모든 순간은 그저 다행스럽고 감사할 따름이다. 우리는 때때로 죽음을 상기하면서 영혼의 불필요한 가지치기를 하는 듯하다. 그래서 성경에는 초상집에 가는 것이 잔치집에 가는 것보다 낫다고 했을까? 고인의 죽음을 통해 생의 시간과 의미를 귀하게 여기기 때문이다. 늘 죽음은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듯하다.   

   현재를 보다 소박하게 꿰뚫어 보는 순간들

2010년 가수 요조는 청춘 페스티벌이란 강연에서 <<늙어 잘 살려고 오늘의 아메리카노를 참지 마라>>라고 한다. “낭만적으로 사는 게 뭐냐고 궁금한 사람들에게 오늘이 나의 마지막 하루라고 생각하는 삶이라고 얘기해주고 싶다”라고 한다. 요조의 동생은 지하철 공사를 하던 포클레인에 깔려 즉사했다고 한다. 그날 아침 “언니 운동화 좀 신고 나갈게”라고 말하며 나간 것이 동생의 마지막이 될 줄은 몰랐다고 한다. 요조는 동생의 죽음을 통해 미래를 담보로 소박한 행복과 즐거움을 잃어버리고 사는 삶의 허무함을 느꼈으리라. 그리고 소중한 현재의 삶을 가장 소박하게 뚫어 보는 마음을 가졌을 것이다. 주어진 삶의 과정을 좀 더 소중하게 살아갈 수 있는 의지는 죽음을 인식할 때 생긴다. 죽음이라는 끝을 인식할 때 삶이라는 하루하루의 과정이 더 소중하게 여겨진다. 오늘이 소중한 것은 누구나 죽음을 향해 보이지 않게 한 걸음 한 걸음 걸어가고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현재의 겸허한 성찰, 메멘토 모리
죽음을 기억하라

중세의 수도사들은 아침에 일어나면 ‘메멘토 모리(memento mori)라고 인사했다고 한다. 라틴어로 ’죽음을 기억하라‘는 뜻이다. 늘 죽음을 기억하며 삶 속에서 자신의 신앙을 되돌아보는 계기로 삼았다는 것이다. 죽음을 기억함으로써 현재의 삶을 겸허하게 성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로마에서는 원정에서 승리를 거둔 장군이 시가행진을 할 때 노예를 시켜 행렬 뒤에서 ’메멘토 모리!‘를 외치게 했다고 한다. 전쟁에서 승리했다고 우쭐대지 말고 죽음을 생각하며 겸손하게 행동하라는 의미였다고 한다. 삶을 성찰하고 겸허하게 살기 위해서 모두 죽음을 상기시킨 것이다. 우리의 죽음은 모든 욕심과 영광과 아픔을 무의미하게 만들어 버린다.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직면하게 되는 죽음 앞에서 삶의 길이와 양에 상관없이 살아간다는 것은 감사하고 신비로운 일이다. 


제대로 누리며 살고 있는가?      

죽음을 향해 가는 잃어버리는 삶이 아니라 죽음을 향해 가기 때문에 현재를 제대로 누리는  삶을 살 수 있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어떻게 하면 제대로 살 수 있는 것인가”에 대한 질문과 답을 알려준다. 이 삶에서 무엇을 누릴 것인가에 대한 명확한 정답을 알려준다. 그리고 현재를 제대로 누리며 살고 있는지 스스로 질문하게 한다. 우리에게 그나마 주어진 축복을 우리는 알고 있을까? 내게 허락된 일상의 순간에 펼쳐 놓은 아름다움을 누리고 있을까? 죽음을 바로 앞에 둔 환자들은 살아있는 동안 특별한 것을 바라지 않는다. 가족과 손잡고 웃고 햇살을 즐기고 하루만 더 함께 밥 먹는 것을 바란다. 나머지 살아 있는 모든 세포를 통해 진심으로 안고 상대의 존재에 대해 감사함을 표현하기를 바란다. 이렇게 삶을 고백하기를 바란다. 죽음을 기억하는 사람에게 삶은 더욱 강력한 진실을 말한다. 마치 그동안의 삶을 원심분리기에 넣고 삶의 핵심적 진실을 뽑아내는 듯하다. 메멘토 모리!, 이것은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보다 어떻게 누리야 하는지를 말한다. 행복한 삶을 위해서 우리의 일상을 어떻게 재단해야 할지를 알려준다. 굳이 관에 들어가 보는 체험을 하지 않더라도 가까운 죽음들 앞에서 나의 삶을 바라보는 짧은 시간을 가져보는 것도 좋겠다. 내일 죽음이 선고된 사람처럼...아침의 햇살과 저녁노을을 쳐다보며 아낌없이 그 순간을 누려보는 것도 의미 있고 아름다운 일이다. 사랑하는 사람, 아까운 사람을 안아보고 눈에 꼭 담아보는 것도 그저 감사하고 행복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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