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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권수 Jan 30. 2019

완벽하지 않은 것들을 즐기는 힘

길들여진 것에서 벗어날 때 누리는 힘

완벽하지 못한 것들에 대한 무의식적인 저항

시골에 집을 얻어 이사를 온 이후 가장 큰 도전은 정돈되지 않은 것들을 그대로 두고 견디는 것이었다. 의자에 앉아 바깥 풍경을 즐기려 해도 정돈되지 않은 세간이 눈에 거슬려 정돈을 하고 아궁이에 불을 지피려고 하면 흩어져 있는 마른 솔잎과 장작을 정리해야 했다. 그러다 보니 전원의 아름다움보다는 주변을 정돈하다 시간을 다 보낸다. 주변을 걷고 있으면 하루가 멀다 하고 중구난방 솟아오르는 잡초를 베고 정리해야 한다. 손댈 데 없이  잘 갖추어져 있고 정돈되어 있는 아파트에 살다가 정돈을 해도 끝이 없는 시골은 언제나 불완전하다. 그대로 둬도 살지 못하는 것은 아닌데 찜찜하고 혼란스러운 신경이 자꾸 불안하게 만든다. 시간이 지나고 익숙해졌다기보다는 포기할 때쯤, 과민한 신경은 안정되고 엉클어진 수풀에서 피어나는 꽃과 열매, 원거리에 보이는 산들의 곡선, 햇빛에 깔깔하게 마른 수건의 감촉, 해 질 녘의 바람, 새소리들이 느껴지기 시작한다. 이때쯤 정돈되지 못하고 완벽하지 않은 것들에 대한 무의식적인 저항을 바라보게 된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프로그래밍되어 길들여진 완전함에 대한 공식이 '나의 세상'을 지배하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우리는 완벽함에 대한 공식 때문에 불완전한 결핍을 인정하지 못하고 불필요한 저항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 일이다삶은 완벽하지 않다. 나 자신도 완벽하지 않다. 완벽한 듯해도 다시 흩어지고 다시 불완전함과 결핍으로 이어지는 것이 순간과 시간의 속성이다. 결핍을 극복하는 방법은 결핍을 인정하는 것이다. 잠시 내버려 두는 일이다.  우리는 결핍이 목적이 아닌데 결핍에 너무 많은 신경을 쓴다. 그래서 그 불완전한 결핍에 발목이 잡힌다. 결핍을 인정하지 않고는 결핍에 발목 잡혀 만족한 상태를 누릴 수 없다. 설령 만족스러운 상황이 내게 주어져도 인정하지 않은 결핍 때문에 그 만족을 누리지 못한다. 


결과에 희생당하는 과정처럼
미래를 위해 잊히는 현재의 소중함

완벽함을 추구하는 사회의 속성은 우리를 무의식적으로 불안하게 만든다. 채워지지 않았던 과거를 반성하고 완벽함을 향한 미래가 현재를 희생하게 만든다. 경쟁하고 비교하면서 성공을 향한 명예와 부러움이 우리를 프로그래밍해 오면서 완벽함에 대한 의무를 짐 지우게 만든다. 경쟁과 비교, 개선과 완벽함, 성공이 문제가 아니다. 결과에 희생당하는 과정처럼 미래를 위해 잊히는 현재의 소중함이 문제다. 완벽함에 짓눌린 불완전한 순간의 아름다움이 문제다. 완벽함을 강조하는 사회적 속성은 완벽하지 않는 것들을 즐길 힘을 잃어버리게 만든다. 완벽함이란 개인이나 사회나 한 시점의 주관적이고 일시적인 상태의 평가다. 완벽함에 대한 착각 때문에 우리는 비교에 능하고 실패나 결점을 인정하지 못하고 자신을 비하하는 일이 많아진다. 완벽한 성과지상주의로 불안과 탈진(번아웃)이 일반화되기 쉬운 사회다. 과정 없는 결과가 없고 결핍 없이 채워지는 것은 없다. 불완전한 아날로그의 곡선들이 어우러져 완벽한 순간의 디지털적 결과를 만든다. 우리가 결과에 상관없이 현재를 누리기 위해서는 완벽함을 향해 달리는 불완전한 오늘을 인정하는 힘이 필요하다. 그 힘이 불완전한 오늘을 완벽한 미래로 끌고 가는 여유와 인내를 만들기 때문이다. 


완벽함에 길들여진 불편한 진실과 상처

완벽을 추구하는 것은 인간의 속성이다. 완벽함을 향한 의지는 인간에게 기대를 만들고 동기를 유발한다. 자신을 개선하고 완벽을 추구하는 인간의 속성이 탁월함을 만들어 나간다. 하지만 완벽함에 집착해서 불완전함을 인정하지 못하면 자신의 결점이나 실수를 용납하지 못하고 쉽게 자기 비난으로 이어진다. 사회나 주변이 요구하는 완벽함에 얽매이면 타인의 인정에 얽매여 자신의 만족을 느끼지 못한다. 타인에게 완벽함을 요구하는 경우에도 타인을 비난하기 쉽고 관계에 문제가 생기기 쉽다. 이런 탓에 완벽주의자는 유능하다고 하더라도 긴장이 높고 심혈관계 질환이 많다. 우리가 완벽함에 집착할 때 조정과 수용, 균형이 힘들어진다. 상대적인 완벽함이란 이런 수용과 조정, 균형을 통해 만들어지지만 긴장된 우리의 신경은 이런 여유를 만들어 내지 못한다. 현실의 일상은 완벽하지 않다. 완벽하려고 애를 써도 그렇게 되지 않는 것이 대부분이다. 완벽해지려는 사람은 그대로 내버려 두지를 못한다그래서 마음의 상처가 많다


조금은 느슨하게 즐기는 위대한 순간

인간의 개인적인 발전이나 현대의 발전된 문명은 불완전함을 극복하고 완전해지려는 인간의 속성에 의해 만들어졌다. 하지만 한쪽으로 기울어진 무게중심은 개인과 사회에 혼란스러운 저항을 만들어 내고 있다. 그래서인지 완벽하지 않은 것들을 즐기는 와비사비(わびさび)나 느긋하면서도 소소한 생활방식을 의미하는 킨포크(kinfolk)가 세간에 유행하고 있다. 좀은 부족하고 완벽하지 않지만 현재를 누리고 음미하는 생활방식에 관심이 쏟아진다. 완벽함에 시달리는 피로와 각성이 자기 존중감에 대한 열풍과 일과 삶의 균형, 욜로(YOLO)로 관심이 높아지는 것과 같다. 하지만 무의식적으로 학습되어 온 ‘완벽함에 대한 신경조직’을 단숨에 바꾸기는 힘들다. 완벽함과 성공을 추구하며 자신이 원하는 미래를 만들어 가면서도 현재를 잃지 않기 위해서는 불완전함에 대한 아름다움도 즐길 수 있어야 한다누리고 음미하는 삶은 불완전한 현재에 살아 숨 쉬는 자신과 관계환경의 단면을 허용하고 수용하는 연습이 필요하다. 누리고 음미하는 삶의 시작은 불완전하다고 느껴지는 현재를 인정하는 힘을 기르는 것이다. 나에게 요구하는, 사회가 나에게 요구하는, 내가 타인에게 요구하는 완벽함에 대한 신경 줄을 좀은 느슨하게 놓아주는 것이다. ‘그래도 괜찮아’ 말하는 것이다. 오히려 불완전함이 가지고 있는 아름다움을 찾는 것이다.  그러면 정돈되지 않은 수풀 사이로 흐르는 자연스러운 소리와 바람에 편안함을 찾고 손때 뭍은 낡은 가구에서 정을 느끼고, 엉클어진 장작더미에 앉아 친구와 따스함을 즐기는 위대한 순간이 삶을 더욱 풍성하게 하지 않을까?


To You.

완벽하지 않은 것에 정을 들여보자. 어떤 것이 있을까? 적어도 완벽하지 않은 세상의 속성에 불필요한 저항을 떠나보내면 좀 더 누리는 기회가 찾아오지 않을까? 완벽하지 않은 세상보다는 완벽하게 길들여진 내 마음, 내 감각과 감정을 봐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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