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는 우리가 인식하는 세상을 만든다.
명상은 주의(attention)를 조절하는 특별한 기술이다.
과학적으로 증명되고 있는 명상의 효익 즉, 심신의 안정, 스트레스 감소, 면역, 감정과 충동의 조절, 뇌파의 안정과 뇌의 활성화 등 대부분이 주의를 조절하는 능력이 향상된 결과들이다.
우리는 주의를 통해 주변 환경을 지각하고 인식한다. 당연히 주의가 가지 않은 것은 인식하지 못한다. 우리가 인식하는 모든 것은 주의를 선택하고 집중하고 유지할 수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주의는 생각, 감정, 감각에 영향을 주고 의식의 내용을 결정한다. 현재의 자신은 주의를 어디에 두고, 주의를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근력 운동을 통해 근육이 늘고 근력을 조절하는 능력이 향상되듯이 명상을 지속적으로 훈련함으로써 주의를 조절하는 능력이 향상된다. 주의를 조절하는 능력이 향상되면 외부의 자극에 주의를 빼앗겨 쉽게 스트레스 받지 않는다. 자신의 생각과 감정에 주의를 빼앗겨 불필요하게 걱정하고 불안해하는 일도 적을 것이다. 내외부의 불필요한 자극에 반응하느라 심신이 쉽게 지치지도 않을 것이다.
주변의 자극에서 정보를 선택하고 처리하는 과정
주의를 통해 정보를 인식하고 처리
우리는 주의를 통해 지각하고 인식한다.
주의를 기울이지 못하면 보고, 듣고, 만져도 인식하지 못하고 기억하지 못한다.
우리의 "의식은 주의를 기울여 기억을 작동시키는 행위"라고 볼 수 있다.
같은 공간에서 보고 들어도 사람들마다 인식하고 것이 다르다. 서로 주의를 두는 곳이 다르기 때문이다. "흰옷 입은 여성들이 공을 몇 번 패스하는지 세어 보라"고 하면 공을 패스하는 곳에 주의가 가 있기 때문에 커튼 색이 바뀌고, 중간에 고릴라가 지나가도 사람들은 인식하지 못한다. 주의가 다른 곳에 성립되었기 때문이다. 뇌는 모든 정보를 처리할 수 없기 때문에 특정한 곳에 선택적으로 주의를 두고 <선택적으로 지각>하기 때문이다
(고릴라 실험) https://www.youtube.com/watch?v=0dTUQrdinSY
<편측무시> 환자들은 시계를 보고 그대로 그려보라고 하면 아래 그림과 같이 절반만 그린다. 감각기관(눈)에는 이상이 없지만 감각기관을 통해 들어온 정보를 뇌가 처리하는 과정에서 주의를 할당하는데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다양한 이유가 있다고 하지만 주요한 원인). 주의가 할당되지 못하면 우리의 뇌는 인식할 수 없다. 그래서 주의가 성립되지 않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우리의 인식 밖의 문제가 된다.
명상은 주의를 선택, 집중, 지속하는 훈련으로 주의의 통제력, 조절력을 향상시킨다. 주변으로 쉽게 분산되고 흐려진 주의를 선명하게 자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힘을 길러준다.
우리의 주의는 자동적으로 반응하기도 하고 의도에 따라 조절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심장처럼 내버려 둬도 기능을 하고 의도적으로 조절해서 심장박동을 변화시킬 수 있는 것과 같다.
주의는 의도하지 않아도 주변의 강한 자극에 자동적으로 반응한다. 생존과 종족의 번식, 괘락(만족)의 자극에 자동적으로 반응해야 살아남을 수 있기 때문이다. 밤길의 소리에 주의가 가고 여자의 노출에 남자의 주의(시선)가 자동적으로 반응한다.
"자동적으로 반응하도록 되어 있는 것이 우세하다. 언제나 주변의 자극을 쉴 새 없이 모니터링하면서 생존에 위협이 될만한 것을 처리해야 한다. 외부의 자극이 아니라 내부의 걱정, 근심, 불안에 주의가 반응적으로 쏠리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물리적으로 생존 위협이 없는데 주의가 위협에 반응하며 지쳐간다면 살기 힘들 것이다"
주의는 의도나 계획에 따라 의도적으로 반응하도록 되어 있다. 불필요한 자극을 무시하고 필요한 자극에 주의를 집중해야 목적을 달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동적 반응이 생존본능이라면 의도적 조절은 번영을 위해서 필수적이다.
명상은 반응하는 주의가 아니라 조절하는 주의를 길들인다. 이런 주의의 조절력이 향상되면 필요한 곳에 반응하는 속도와 정확도도 높아진다. 주의를 조절하는 능력이 높다는 것은 인간이 인격적으로 성숙하는 필수조건이다. 뇌의 발달이 이를 증명한다.
"감각과 감정의 영역에서 주의는 반응적이라면 이성적 영역에서 주의는 조절을 지향한다. 그래서 주의를 통제하고 조절하는 기능은 이성을 담당하는 전두엽 중에서도 앞쪽 전전두엽에서 담당한다. 인간이 뇌가 발달하고 인격적인 성숙은 주의를 조절하는 뇌의 발달과 연결되어 있다."
명상은 주의를 조절하는 뇌의 영역을 활성화시키고 발달시킨다. (예를 들어 명상을 하면 배외측 전전두엽이 활성화되고 발달한다)
주의는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무한정 쓸 수 없다. 동시에 여러 가지를 인식하고 처리하는데 한계가 있다. 우리 뇌가 처리할 수 있는 정보가 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대개 7개 내외라고 하고 최근 연구에서는 그 이상이라고 하기도 하지만 한정되어 있는 것은 모두가 느끼는 사실이다.
한정된 주의를 가지고 있는데 너무 많은 선택지나 정보를 주면 인식이 힘들고 불명확해진다. 또한 불필요한 것에 주의가 분산되어 있으면 필요한 곳에 활용한 주의가 고갈되게 된다.
흔히 근심, 걱정으로 주의를 다 쓰고 나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기력은 주의 에너지가 고갈된 상태다. 주의를 조절하는데 도파민이라는 에너지가 필요한데 도파민 분비가 되지 않으면 컵을 들고 있을 수 있는 주의 조절도 힘들어지게 된다. 주의는 한정된 자원이며 효과적으로 사용하는 습관이 중요한 이유다.
어떤 명상이든 한정된 주의를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습관을 길들인다. 주의를 집중, 유지하거나 불필요한 것에 분산되지 않게 하고, 불필요한 것에 집착하지 않도록 개방적으로 풀어 놓으며 인식하는 훈련을 한다.
동시에 여러 가지 일을 하는 <멀티태스킹>을 유능함으로 볼 때가 있었다. 하지만 연구 결과에 의하면 멀티태스킹은 비효율적이고 생산성이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을 수행하는 인간의 주의를 생각하면 당연한 사실이다. 주의는 분할해서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교체되기 때문이다. 2014년 명상이 유행하고 있던 미국의 타임지에서 "마음챙김 혁명"을 커버로 다루었는데 멀티태스킹 문화에 스트레스 받는 사람들에게 집중력을 찾는 과학으로 소개되었다.
동시에 여러 일을 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주의가 빠르게 교체되면서 이루어진다. 주의를 교체하는 데는 상당한 에너지가 소모되고 한정된 주의를 교체하면서 관리하는 것은 비효율적이다. 주의를 분산하는 것은 낭비이며 비생산적이다. 아이나 어른이나 주의가 분산되고 멀티태스킹의 습관은 정확도가 떨어지고 의사결정에 실수가 많았다.
인간에게 주의가 집중되고 분산되는 것은 감정, 인식, 행동에 많은 영향을 준다. 수십 년 몰입(flow)을 연구한 칙센트 미하이(Csikzentmihalyi) 교수는 주의가 집중될 때 긍정적 정서 유발되고, 일의 정확도와 효율성은 높아진다고 밝혔다. 반대도 주의가 분산되면 정신적 분열 증상(우울증, 불안장애 등)을 보였다고 한다. 우리는 일상에서 적절한 주의의 집중과 분산의 균형을 경험하면 정상적으로 산다고 보면 된다.
명상을 연구한 결과에서도 명상을 하면 긍정적 정서가 유발되고 긍정적 정서를 유발하는 호르몬이 늘어나고, 긍정적 정서를 느낄 때 활성화되는 뇌 영역이 활성화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좌측 전두엽)
"심신의 안정과 일의 성과를 위해서는 조절된 상태에서 주의를 집중하는 시간을 늘리는 것이 중요하다. 뇌를 활용하면 더욱 활성화되고 발달한다는 가소성을 염두에 두면 주의의 집중과 조절은 인격과 조절의 뇌 부위를 활성화시키는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