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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권수 Oct 26. 2016

두려움과 걱정의 실체

두려움의 실체는 ‘직면’하려는 용기 속에 지극히 작아지고 힘을 잃어버린다

자기에게 약한 자에게 가장 강하고
약한 자를 독식하는 강력한 것,
자기에게 강한 자를 가장 무서워하는 것
이것이 무엇일까요?   

  

정답은 바로 두려움이다. 두려움으로 아무것도 하지 못할 때가 있었다. 어떤 터널에 빠져 두려움의 대상 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나의 존재는 무기력하고 세상은 참으로 힘겨운 존재였다. 두려움과 씨름하다 뭔가 느껴지는 것이 있었다. 자신이 떨고 있는 대상은 모두 미래에 있는 것이었고 생각이고 스스로 논리적이다고 믿는 가정들이었다. 물론 현재의 근심과 걱정꺼리에서 파생된 정당한 것이기는 했지만 아직 일어나지 않았고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것들이다. 하지만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것이었다. 이때 그나마 가장 큰 위안이 된 글이 있었다. 정신과 의사 조지 월튼의 Why Worry에 나오는 다음의 내용이었다.   

   

걱정의 40%는 절대 일어나지 않는다.
걱정의 30%는 이미 일어났던 일이 또 일어날까 미리 걱정하는 것이다.
걱정의 22%는 너무 사소해서 무시해도 좋은 일이다.
걱정의 4%는 바꿀 수 없는 일이거나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걱정의 4%는 우리가 바꿀 수 있는 일이다.


그러고 보니 진짜 걱정의 대상은 4% 밖에 없다는 일이고 그것도 적극적으로 대응하면 바꿀 수 있는 일이 된다. 40%는 절대 일어나지 않기 때문에 걱정할 필요가 없는데 미리 겁먹고 불안해하는 것이며, 30%는 이미 일어났던 경험 때문에 독립적인 지금의 일에 연관지어 미리 걱정하는 것에 불과한 것이다. 22%는 너무 사소해서 무시해도 좋은데 두려운 마음에 나도 모르게 증폭한 시킨 것에 불과하고 4%는 자신이 어쩔 수 없는 일이라 걱정해도 소용없어 받아 들여야 하는 것이다. 그러니 이 모든 것이 나의 생각이 만든 것에 불과하다는 것을 느낄 때 베일이 벗겨지고 용기가 솟아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사실 두려움으로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있을 때, 자고 일어나면 그 두려움의 생각이 영원할 것 같이 가위눌림하고 있을 때 오기로 실험한 것이 있었다. 진짜 분명히 일어날 것만 같았던 두려움의 실체가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목록을 만들어 보았다. 목록을 만들면서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두려움은 그 긴급하고 강력한 감정때문에 과장되고 실체가 모호하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리고 3년을 두고 지켜봤다. 하지만 두려움을 야기 시켰던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았다. 6년이 지난 지금도 일어나지 않았다. 지금은 그런 감정을 밀어 놓고 관찰하는 단계가 되었지만 그때는 정말 두려움의 명분은 분명했고 압도적이었다.      


사람은 부정적 정보의 편향 탓에 두려움이 증폭되고 확대 재생산되기 쉽다.


사람은 부정편향(Negativity Bias)의 속성을 가지고 있다. 부정적인 정보에 더 민감하고 어떤 사안을 부정적으로 해석할 때 더 유리하고 생존의 확률이 높았다. 원시시대 맹수의 위협이 항상 도사리고 있던 시절에 알지 못하는 주변의 신호(Sign)를 부정적으로 해석하고 대처할 때 생존의 확률이 더 높았던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우리는 두려워하고 걱정하면서 더 나은 생존을 대비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머릿속으로 예측하고 추측하면서 이런 부정 편향의 시나리오는 증폭되고 확대 재생산되기 쉽다. 우리의 몸은 그 시나리오에 맞춰 대비하면서 더 긴장하기 마련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 상상으로 만든 시나리오가 완벽한 현실로 느껴지는 것이다. 긴장과 부정적 시나리오는 반복되면서 우리의 뇌에서 현실과 똑같은 비중으로 자리한다. 우리의 뇌는 선명한 상상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한다. 이쯤 되면 두려움을 만드는 사실만 인식의 레이더에 잡히고 그 두려움을 야기하는 상상은 무너뜨릴 수 없는 논리적 사실이 된다. 이런 상황에서 두려움과 그 두려움을 야기하는 사실을 떨어뜨려서 현실인지 상상인지, 현재인지 미래인지, 내가 어쩔 수 있는지 없는지를 판단하는 것은 무척 힘들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두려움의 대부분은 미래의 것을 대비하면서 내 생각이 만들어 낸 것이고 실제 현실과는 다르다는 것이다.       


두려움의 실체는 ‘직면’하려는 용기 속에서 지극히 작아지고 힘을 잃어버리게 된다.


어디선가 들었던 기억이 나는데 “두려움은 존재하지 않는 어두운 방에서 검은 고양이를 찾고 있는 눈먼 사람과 같다”고 한다. 우리는 현실에서 쏟아지는 정보를 통해 생각을 하고 상상을 한다. 그렇게 상상이 그려놓은 상황이 원하지 않거나 감당하기 힘들다고 판단할 때 두려움이란 감정은 자연스럽게 일어난다. 생각일 뿐이고 감정일 뿐이다. 생각이 현실도 아니고 일어나는 감정 자체가 나의 모든 것은 아니다. 두려움과 상호작용하고 싸우면서 현실적으로 대비하고 통제하고 있다는 것은 그저 착각일 뿐이다. 두려움의 실체는 ‘직면’하려는 용기 속에서 지극히 작아지고 힘을 잃어버리게 된다. 모호하게 과장된 두려움에서 잡음을 제거하고 현재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선택하여 진행할 때 직면하려는 용기도 커지게 마련다.


PS. 아래는 이 글을 뒷받침하는 과학적이고 분석적인 내용의 글


https://brunch.co.kr/@hesse24/33



브런치의 글들이 <북프로젝트>의 대상을 받고, 책으로 나왔습니다. 브런치의 글과 그 외의 글들이 세련되게 정제되어 나왔습니다. 많은 관심을 부탁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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