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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트라슈 Sep 08. 2020

저 사투리 안 고칠 건데요?

사투리가 촌스럽다는 그대에게

내 고향은 경상도다. 대학 진학을 하면서 고향을 떠났으니 조금만 더 있으면 타향살이 시간이 고향에서 지낸 시간과 같아진다. 때문에 가끔 소속감 측면에서 붕 뜨는 경우가 있는데 명절에 고향 친구들을 만나면 그들에게 나는 '타 지역 사람'으로, 대학 이후에 만난 친구들이나 회사 사람들에겐 나는 '경상도 사람'으로 분류되는 것이다.


이 같은 사람들의 반응에 내 사투리가 한몫을 했다는 건 순순히 인정한다. 나는 아직 사투리를 사용하는데 가끔 사회에서 만난 사람들은 "아니 보통 남자들은 말투 고치는 게 어려워도, 여자들은 1년이면 사투리 감쪽같이 고치던데.." 하며 마치 사투리를 고쳐야 할 잘못된 언어습관 취급을 한다. 이는 화자에 따라 종종 불쾌한 경우로 다가오기도 하는데 그런 사람들에겐 나도 똑같은 자세로 한마디 해준다. "저 사투리 일부러 안 고친 건데요? 앞으로도 안 고칠 거예요" 그러면 백이면 백 "아니 왜요?? ㅇㅂ ㅇ"  하며 눈을 똥그랗게 뜨고 되묻는다. 


"좋아서요. 전 사투리가 조크든요"



반항이 아니라 사실이다. 난 사투리가 좋다. 


얼마 전 중국어를 배우면서 알게 된 또 하나의 사실은, 경상도 사람인 나에게 중국어는 최적의 언어라는 것이다. 중국어에는 4개의 성조가 있다. 처음 중국어를 배우는 사람들은 한자보다 성조 때문에 굉장히 어려움을 겪는데, 나는 선생님께 칭찬을 받을 정도로 성조 구분을 잘했다. 처음엔 그 이유를 몰랐다가 반의 다른 학생들을 보면서 깨달았다. 경상도 사람인 나에게 성조는 아주 자연스러운 것이어서 마치 노래하는 것 같은 느낌이었는데, 다른 학생들에겐 한 단어 한 단어가 외워야 하는 악보였던 것이다. 


또 경상도 사투리는 효율적이다. 적은 단어로 의미를 전달할 수 있다. 대표적인 예가 "쫌!!" 

상황에 따라 여러 가지 의미로 변신하는 이 한 음절의 단어는 상대방의 행동에 제제를 가하는 목적으로 많이 사용된다. 가령 잠을 자는데 누군가 시끄럽게 할 때 조용히 하라는 의미로, 동생이 tv 채널을 계속 쉬지 않고 돌리면 멈추라는 의미로, 빨래 개는 엄마 앞을 왔다 갔다 하며 산만하게 구는 아이들에게 얌전히 있으라는 의미로.. 활용도가 무궁무진하다. 


이처럼 사투리는 좋은 점이 많다. 그동안 겪었던 사투리 관련 웃픈 일화를 소개하고자 한다.




. 잠온다 vs 졸린다

신입사원 시절 부서 동기와 나란히 앉아 교육을 듣던 중, 점심시간 직후라 내려오는 눈꺼풀을 추켜올리며 


"아~ 너무 잠온다"라고 했더니 서울 토박이인 동기가 깜짝 놀라며 

"야, 너는 어떻게 그런 말을 노골적으로 하냐?" 

응?? 잠 오니까 잠온다고 한 건데.. 이게 무슨 금지어인가? 싶어서 


"아니 잠이 오니까 잠온다 하지 그럼 이 상황에 뭐라고 해야 하는데?" 물었더니 


"그럴 땐 '졸린다'라고 해야지~ 그렇게 대놓고 잠온다고 말하는 건 처음 본다" 


'잠온다'를 아주 무례한 단어 취급을 하길래 괜히 '잠온다'에게 미안해졌다. 그리고 그 동기가 말한 단어를 조용히 입모양으로만 뻥긋거려보았다. '조.. 졸.. 린..'

"아오!! 오글거려!!"


경상도 출신인 나에게 '졸린다'는 손발이 다 오글오글 거리는 단어였다. 십 년 가까이 지난 지금은 익숙해져서 자연스레 사용 중이지만 처음의 그 문화 충격은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 2² vs e²

한때 인터넷을 뜨겁게 달군.. 화제의 그 수학 표기법이다. 어느 오후 한창 업무를 하고 있는데 부산 출신 후배가 문제의 그 4종 세트가 적힌 종이를 들고 와서 "선배님, 이거 한번 읽어보세요"라고 한다. 아무 의심 없이 하나씩 또박또박 읽었더니 옆에서 지켜보던 동료들의 웃음이 터진다. 

후배는 "와~ 선배님 진짜 경상도 맞네요!" 한다. 어리둥절해하며 "왜? 이거 무슨 트릭이 있는 거야?" 물었더니 그게 아니고 경상도 사람들만 알파벳 e와 숫자 2의 억양이 다르다는 것이었다. 응? 그건 또 무슨 소리야? 

의아해하는 내게 또 다른 서울 토박이 후배를 데려오더니 직접 낭독을 해 보인다. 전혀 차이가 없이 네 가지를 읽길래 "에이~ 장난치지 말고, 다시 제대로 읽어봐" 했더니 장난친 거 아니라며 억울하단 표정으로 원래 서울은 이 네 개가 차이가 없다는 말을 한다. 

헐!! 정말?? 헐!!..... 너무 놀란 나머지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하다가 다시 물었다. "아니 그럼 이거 듣기 평가에 만약 이런 문제 나오면 정말 구분 못해??" 했더니 그렇단다. 그러면서 이런 문제가 왜 듣기 평가에 나오냐며.. 이 네 가지를 구분하는 경상도 사람들이 이상한 거라고 말한다. 


엄청난 문화 충격과 함께 이런 차이를 구별해낼 수 있는 사투리가 좀 더 우월한 느낌이 들어 괜히 뿌듯했다.



. 아 맞나??

한국인이 자주 쓰는 언어 습관 중 '아 진짜?'가 있다고 한다. 경상도는 '진짜' 대신 '맞나'를 사용하는데.. 특별한 의미나 의도가 있는 게 아니고 '호응' 정도로 생각하면 되는 용법이다. 몇 년 전 유럽 여행에서 같은 숙소에 묵으면서 알게 된 어느 대학생과 같이 밥을 먹던 중 그동안의 그녀의 여행 이야기를 들으며 자연스레 "아~ 맞나??"가 나왔는데 그 친구가 어리둥절해하며 "네.. 맞아요"라고 대답을 한다. 


순간 뭔가 잘못된 것 같다란 생각이 든 나는 다시 설명을 해줬다. "(현웃 터짐) 미안한데 이게 진짜 맞냐고 묻는 게 아니고.. 일종의 언어습관인데, 그냥 '진짜?'라고 하는 리액션 정도로 생각하면 돼. 매번 그 말에 대답해 줄 필요는 없어~" 그제야 그 친구는 환하게 웃으며 "사실 언니가 자꾸 맞냐라고 묻길래.. 내가 틀린 말 하는 것도 아닌데 왜 자꾸 맞냐고 묻는 거지.. 첨엔 이상하다고 생각하긴 했어요~"라고 솔직하게 말한다. 자칫 불신의 대화만 하고 간 사람으로 기억에 남을 뻔하다가 오해를 풀어서 다행이었다. 그렇게 오해 푼 기념 샷을 남기고 각자 여행지로 헤어졌다. 




* 배경이미지 : 짱구는 못말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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