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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트라슈 Sep 14. 2020

부부는 닮는다

교양이 경쟁력

닮은 사람들끼리 만난 건지 살다 보니 닮아간 건지 알 수는 없지만 요즘 들어 공감이 되는 말

부부는 닮는다


외모뿐만이 아니라 삶을 대하는 태도, 외부 자극에 반응하는 방식, 가치관 등에서 말이다.



김여사님, 이럴 땐 사과가 먼저예요.

지난겨울 어느 주말, 회사에 가야 할 일이 생겨 오전 9시쯤 차를 끌고 집을 나섰다. 아파트 단지 앞 사거리에서 신호를 받고 정차해있는데 갑자기 '쿵' 하면서 차가 덜컹거렸다. 무방비상태로 있다가 몸이 앞뒤로 흔들려 놀란 마음에 황급히 룸미러로 뒤를 보니 뒷 차가 평소보다 가까이 보였다. 그제야 접촉사고가 났다는 걸 깨달았다. 큰 충돌은 아니었고, 무엇보다 왕복 8차선 대로의 한 중간이어서 다른 차들의 통행에 방해가 된다는 생각에 서둘러 쌍 깜빡이를 켜고 갓길로 차를 댔다.


그런데 나를 박은 뒷 차는 그 상태 그대로 도로 한 중간에서 얼음땡 하듯이 멈춰있는 게 아닌가. 한참을 그렇게 서 있으니 뒤에서 오는 차들이 빵빵 거리고 난리도 아니다. 보다 못한 내가 차에서 내려서 이쪽으로 차를 붙이라고 손짓을 해 보이자 그제야 슬금슬금 오는 게 아닌가.. 아니 박힌 것도 나고, 놀란 것도 난데.. 어째 나보다 더 멍 때리는 그 차를 보고 '뭐지?' 하는 생각을 했다.


겨우 갓길에 도착한 그 차는 한참을 또 그대로 있었다. 운전자가 내려서 내 상태를 살펴도 모자랄 판에.. 점점 분노 게이지가 상승하는 게 느껴졌다. 추운 날씨에 오들오들 떨면서 한참을 기다렸는데도 운전자가 내리지 않아서 운전석 쪽으로 가서 창문을 똑똑 두드리며 내리라고 손짓을 했다. 그러자 40대 후반으로 보이는 아주머니 한분이 창문만 쓱 내리며 하는 첫마디가 "잠시만요, 남편한테 전화 좀 하고요"

    

아니 이게 무슨 상황이지.. 참아왔던 분노가 폭발했다. 상식적으로 멀쩡히 정차해있던 차를 뒤에서 박았으면 먼저 "죄송합니다. 놀라셨죠, 다친 곳은 없으세요?"라고 물어야 하는 게 정상 아닌가?? 통화음이 울리는 동안에도 마치 억울하다는 듯이 "아니 제가 10년을 운전했는데 접촉사고는 처음 이어서요" 한다.


인터넷에서만 보던 그 김여사를 드디어 내가 만난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한국에서 운전 12년 무사고라는 걸 알려주고 싶었으나 그러면 그 사람과 똑같은 종류(?)의 사람이 될 것 같아 참았다. 김여사가 남편과 통화하는 사이 서둘러 내 차와 가해차의 사진을 찍어뒀다. 김여사는 남편과의 통화가 끝나자 어느 정도 심신이 안정되었는지 그제야 인정을 한다. "사실 제가 뒷좌석에 있는 애한테 신경을 쓰느라 전방주시를 못했어요." 그마저도 역시 사과는 빠졌다. 서로 블랙박스 화면도 다 있고 더 이상 길게 대화할 상황도, 사람도 아니란 생각에 일단 연락처를 주고받고 헤어졌다.  


회사에 도착하자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와서 받으니 이번에도 예상치 못한 전개가 펼쳐진다.


"네 안녕하세요, 아침에 접촉사고 난 차량 운전자 남편입니다."

"네"

"명함을 봤는데, S사 시네요?"

"네.."

"아 저는 H사입니다"

"네...."

"제가 자주 가는 공업사가 있는데 오후에 거기서 만나실까요?"


아니 이 부부는 쌍으로 대화의 '기본'이라는 것을 모르는 건가 싶었다. 결국 사과는 1도 받지 못했고, 출장을 앞두고 있던 터라 범퍼 수리비용만 받고 따로 보험처리는 하지 않기로 했다. 그마저도 남편이란 사람은 내가 수리비를 받아놓고 또 보험처리를 할까 걱정이 된다며 어떻게 당신을 믿냐고 하길래 그럼 보험처리 안 하겠다는 제 말을 녹음하라 하고 끝냈다. 두 사람 모두 어떤 일로도 다시는 만나고 싶지 않은 유형의 사람들이었다.


며칠 지나 SNS 메신저 '알 수도 있는 친구'에 모르는 이름이 뜨길래 클릭해봤더니 김여사였다. 가정주부가 고급 외제차를 몰고 다닐 때부터 이상한 느낌이 들었지만.. 역시나 그녀의 SNS 사진에는 동네 비슷한 유형의 사람들과 어울리며 브런치를 즐기는 허세 사진들이 가득했다. 조용히 '차단' 버튼을 눌렀다.



당신 같은 사람들 때문에 NO KIDS ZONE이 생기는 거야

코로나가 심각해지기 전, 친구와 집 근처 카페에 갔을 때다. 테이블이 5개 정도 되는 작은 카페였는데 한 테이블엔 노트북을 가지고 업무를 하는 중년의 아저씨가, 한 테이블은 대학생 커플이, 그리고 우리 테이블과 그 옆에 4살, 7살쯤으로 보이는 형제를 데리고 온 아주머니가 앉았다. 조용한 카페여서 다들 소곤소곤 대화를 하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아이들이 앉은 테이블에서 찌를듯한 괴성이 들려왔다. 7살 첫째 아이는 비교적 얌전해 보였는데, 4살 아이는 전혀 통제가 되지 않는 듯했다. 급기야 의자에 올라가 방방 뛰면서 소리를 지르는데 처음엔 저러다 멈추겠지.. 하며 지켜봤지만 오히려 더 심해졌다. 와중에도 엄마는 주문한 음료와 조각 케이크를 연신 떠먹이기만 하고 아이의 행동을 제지하지 않았다.


그러자 먼저 업무를 하던 아저씨가 인상을 찌푸리며 짐을 싸서 나갔고, 대학생 커플도 그 가족을 피해 제일 먼 자리로 옮겨갔다. 나는 그 엄마의 태도가 너무 생경해서 유심히 지켜보고 있었는데, 마시던 음료를 아이가 흘렸는지 카운터로 가서 물티슈를 달라고 한다. 그러니 직원분이 조용히 뭐라 하면서 물티슈를 주는데 갑자기 이번엔 카운터 쪽에서 큰 소리가 났다. 대화 내용을 들어보니 아이들이 너무 시끄러우니까 조금만 조용히 시켜달라고 직원분이 요청을 한 것 같은데.. 그 아주머니의 반응이 정말 놀라웠다.


(허리에 양손을 올리고 눈을 위로 치켜뜨면서) "아니!! 여기가 노키즈존이에요!!???" 하더니 직원분에게 삿대질까지 한다. "당신 애 있어?? 아니 저 나이 때 애가 저 정도는 떠들 수도 있지, 여기가 노키즈존이냐고!!!!!" 하면서 소리를 지른다. 나는 그 장면을 정면으로 보는 자리에 앉아있었고, 친구는 등지고 있었는데 큰 소리에 친구마저 화들짝 놀라 뒤를 돌아봤다. 그 진상 아주머니는 그렇게 10분 가까이 카운터에서 직원을 향해 삿대질을 하며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했다.


너튜브에 한 번씩 갑질이라고 올라오는 동영상이 이런 상황이구나.. 찍어둬야 하나 고민하던 중, 가게 문이 열리며 그 아줌마 남편이 들어왔다. 카운터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는 와이프를 보며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왜? 무슨 일이야?" 묻는다. 그러니 그 아줌마는 마치 자기가 억울하다는 듯이 남편한테 달라붙어서 있었던 일을 이야기한다. 누가 봐도 그 아줌마와 아이들의 잘못인데.. 이 상황 뭐지? 싶어 남편의 반응을 지켜봤더니.. 아니나 다를까. 남편은 그 직원분을 위아래로 훑더니 "아니 서비스직이 손님한테 그런 말을 해도 돼요?" 하며 애들과 아내를 데리고 나간다.  

 

와.. 별 또라이들이 다 있구나. 부창부수란 말이 딱인 부부였다. 영문도 모르는 표정으로 끌려나가는 아이들의 미래와, 그 아이들이 사회로 나왔을 때 만날 사람들이 진심으로 걱정됐다.

 


나도 저렇게 늙어야지 : )

호두파이를 사려고 동네 빵집에 갔을 때다. 계산대에 줄을 섰는데 앞에는 70세는 넘어 보이는 노부부가 있었다. 식빵과 기타 빵 몇 가지를 사신 것 같았는데, 할머니가 계산을 하기 전에 통신사 할인카드와 포인트 적립카드 어플을 어렵지 않게 꺼내 보이시며 직원분이 적용해주기를 기다리셨다. 나도 귀찮고 잘 몰라서 안 받는 할인과 적립을 너무 자연스럽게 하시는 모습에 신기한 표정으로 쳐다보고 있으니 할아버지가 뒤를 돌아 인자한 눈빛으로 미소를 지으며 "아이고, 미안해요. 우리 때문에 많이 기다리시게 하네.." 하신다.


놀란 나는 손사래를 치며 "아니에요, 아니에요. 천천히 하세요. 그런데 저보다 그런 걸(어플) 잘 사용하시네요~!!" 대단하시다는 듯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워드렸더니 그제야 계산이 끝난 할머니도 돌아보신다. "이런 거 꼬박꼬박 받으면 좀 주책맞죠..?" 하며 민망하신 듯이 웃어 보이시길래 또 손사래를 치며 아니라고, 그런 거 원래 다 하시는 거라고. 정말 잘하신 거라고 말씀드리자. "아유, 고마워요~ ㅎㅎ" 하며 두 분이 손을 꼭 붙잡고 나가셨다. 아주 짧은 시간이었는데 노부부의 따뜻한 웃음과 기운이 집에 와도 계속 나한테 남아있는 기분이었다.


정말 제대로 된 어른은 미안함과 고마움의 표현을 아주 자연스럽게 한다. 그렇게 하도록 배웠으니까, 교양 있게 보여야 하니까, 다른 사람들이 이상하게 볼까 봐 억지로 하는게 아니라.. 평소 생활습관처럼 자연스러움이 묻어난다. 그런 사람들과는 길게 대화하지 않아도 마음이 평온해진다. 품위는 명품으로 치장한다고, 억지로 노력한다고 얻어지는게 아니다. 상대방을 존중하는 태도와 진심에서 우러난 인사를 할 수 있으면 된다. 나이가 들면 교양이 경쟁력이라고 하던가. 멋진 노부부를 보면서 나도 저렇게 늙어야겠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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