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티스트웨이 필사- 9주
동정심을 되살리다 _ 자신이 받고 싶은 연민은 자신이 채워주자
진실로 온전해지면 만물이 돌아올 것이다 - 노자
<세부목차>
- 두려움의 치료제
- 열정이라는 삶의 에너지
- 창조성의 유턴
- 장애물 헤쳐나가기
258. 당신은 창조하고 싶었지만 유감스럽게도 지금까지 그러지 못했는데, 그것을 게으름이라고 불렀다.
하지만 당신은 게으르지 않다.
그저 창조성이 막혀 있을 뿐이다.
시작하지 못하는 것을 게으름이라고 표현해선 안된다. 그것은 두려움이다.
258. 아티스트가 되겠다는 것을 부모는 사춘기의 반항쯤으로 생각한다. 그것은 예술행위가 부모와의 단절을 불러오고 사랑하는 사람을 잃게 만든다는 생각으로 연결된다. 그래서 창조적인 목표를 갈망하는 아티스트들은 자신이 원하는 쪽을 선택했더라도 가슴 한구석에 죄책감이 남아있다. 이런 죄책감 때문에 그들은 자신의 반항을 정당화할 목표, 즉 반드시 위대한 아티스트가 되어야 한다는 목표에 더욱 집착하게 된다. 위대한 작품을 만들어야 한다는, 불가능해 보이는 목표를 세우면 많은 두려움이 생긴다. 그 두려움이 일을 미루게 하고, 우리는 그것을 게으름이라고 잘못 부르고 있다.
완벽하게 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
미완성에 대한 두려움,
실패와 성공에 대한 두려움,
시작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
창조성 회복을 가로막는 것은 이러한 두려움이다.
두려움 치료제는 단 하나, 바로 사랑이다.
자신을 윽박지르지 말고 스스로에게 잘 대해주자.(= 스스로에게 동정심을 가지자.)
261. "아티스트가 되려면 많은 훈련을 해야 한다." 이런 식으로
아티스트의 이미지를 군대식으로 떠올리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여기서는 창조성의 분출이 아니라 훈련 자체가 초점이 되어버리는 경우가 많다.
창조적인 아티스트에게 필요한 것은 훈련보다는 열정이다. 그것은 창조적인 과정에 대한 정신적인 동의이자 애정 어린 항복이며,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창조성에 대한 애정 어린 인식이다.
우리의 아티스트는 아침의 고요 속에서 타자기를, 혹은 이젤을 만나기 위해 이른 새벽에 일어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일은 훈련이라기보다는 비밀스런 모험에 대한 어린아이의 동경과 같은 것이다.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고달픈 훈련으로 보여도 우리에겐 어린 아티스트와 즐기는 재미있는 놀이이다.
263. 어떤 점에서 우리는 솔직히
말하면 환자가 되고 싶어하기도 한다. 병약자에겐 주위의 동정과 애정을 유발하는 야릇한 기쁨과 특권이 주어지기 때문이다. 창조성 회복의 과정에서는 이러한 특권을 포기하는 적극적인 선택이 필요하다.
하지만 타인의 동정심에 중독된 사람들은 창조성을 회복해갈수록 마음 한편에서 불안감과 자기회의에 빠지게 된다. 지속적으로 생산적이고 창조적이어야 한다는 위험을 감수할 신념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 결과 많은 사람들이 두려움을 느낀 나머지 유턴을 시도하거나 아니면 자신을 파괴한다. 회복기에 있는 아티스트가 눈부신 성공을 앞두고 자기패배의 동굴 속으로 황급히 도망치기도 한다.
모든 일에는 이런 유턴이 있다. 창조성 회복 과정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창조적 도약을 눈앞에 두고 겁먹은 말처럼 도방가고 나서, 다시 울타리를 ㅁ더어넘으려고 시도하기 전에 잔디밭을 몇 바퀴 돌기도 한다.
그러니 창조성 유턴을 생각해볼 때 우리는 무엇보다도 먼저 자신을 동정해야 한다.
(겁 많은 자신을 보살펴주어야 한다, 두려워하는 자신을 잘 보살펴주어야 한다. 타인으로 부터 동정심을 구하지 않도록)
그리고 유턴의 시기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우선 그런 시기가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자신이 키우고 있는 다재다능하지만 아직 어리고 예민하며 겁 많은 말(창조성, 재능)이 계속 앞으로 나아가 경기를 무사히 끝마치도록 유도해야 한다.
우선 말이 다른 것보다 훨씬 두려워하는 장애물이 어떤 것인지 살펴본다.
그리고 경마에 다른 말들도 참가하고 있다는 점을 기억한다. 도움을 받아들이려고 마음만 먹으면 도움은 찾아오게 마련이다.
269. 자유롭게 일하려고 하는 아티스트는 그동안 묻혀 있던 장벽을 드러내고 지금까지 일을 해오지 않은 것에 대한 대가까지 감수해야 한다. 장애물은 수수께기 같은 것이 아니다. 그것은 적대적인 환경(이에 대한 판단이 옳든지 그르든지 간에!)에 맞서 세운 아티스트의 방어벽이다.
당신의 아티스트는 어린아이임을 잊지 말자. 어린아이는 삐치고 짜증내고 샘을 내며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두려움을 갖고 있다. 어둠과 불안한 모험을 두려워 한다. 부모로서, 보호자로서, 큰형으로서, 동료로서 내면의 아티스트에게 안전하니 나와서 놀라고 설득하는 일은 이제 당신의 몫이다.
삶은 인간의 용기에 따라 축소되거나 확장된다.
- 아나이스 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