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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눅진한 브라우니 Oct 11. 2022

기차여행

엄마와의 첫 여행

입시 수시 접수가 지난달에 끝났다. 

이번 달은 딸아이가 징검다리를 건너듯 띄엄띄엄 실기시험을 봐야 한다. 

한 달 내내 긴 호흡으로 시험을 봐야 한다. 

수능이 생기기 전, 92년 겨울에 입시를 치러본 나는 그해 전기, 후기, 전문대까지 떨어지고 

다음 해 수능을 봤다. 여름에 한번, 겨울에 한번, 2번의 수능을 치렀다.

총 5번의 시험을, 오전부터 오후 늦게까지.. 그렇게 거쳐 왔다. 그게 무엇이길래 아직도 이리 무언가를

판가름하는 잣대로 머릿속에 각인되어 있는 것일까? 자신감의 결여 때문이리라 짐작한다.

다수가 가는 길이 전부인 것처럼 그렇게 스무 살이 되면 무슨 일이 있어도 진학을 해야 하고 4년이 지나면

반드시 졸업을 해야 한다는 것에 매어 살았던 것 같다. 정작 졸업하고는 어떤 틀이 없어지자 무얼 해야 할지

모르고 많은 시간을 낭비한 것 같은데. 

'남들 사는 것처럼'에 너무 매여 있지 말고 나의 꿈과 그 꿈을 이루기 위한 구체적 계획, 실천할 수 있는 여건과 용기가, 지나고 나니 가장 필요했던 게 아닌가 싶다. 


수능을 치르고 복수 지원한 여러 학교 중에 강원도에 있는 k대학이 있었다. 면접을 보러 가야 했는데

그때 나와 동행한 엄마와 기차를 탔던 반나절의 시간이 최초이자 마지막 여행이었다는 걸 쓰고 싶었다.

아직까지도 우린 단 둘이 여행을 가본 적이 없다. 이렇게 말하면 이해 못 할 사람이 참 많겠지만 엄마와 나는,

아니, 엄마와 우리 자매들은 오붓하게 여행을 같이 갈 수 있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우선 엄마는 집과 일터와 교회 이외엔 그 어디도 다닐 생각이 없는 분이었고, 지금도 여전하시다. 

그리고 나도 이젠 내 삶에 매어 있다 보니 쉽지가 않다. 

먼 곳은 언감생심 꿈도 안 꾸고 가까운 곳이라도 같이 갈 수 있는 날이 과연 올까? 

우리가 함께 했던 94년 1월 즈음의 기차여행은 지금 내 안에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아 있다. 

집에 있을 땐 퉁명스럽고 화만 내던 엄마가 밖으로 나오니 수줍은 소녀 같아서 신기할 정도였다.

옅은 핑크빛 화장에 따뜻해 보이던 겨울 코트를 입은 엄마와 같이 앉아서 창밖의 풍경을 바라봤다.   

왔다갔다 하는 간식차 소리에 뭘 하나 사 먹자고 했다. 그때 우리가 달걀을 사 먹었는지 탄수화물 가득한 단 과자를 사 먹었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진 않는다. 그저 무언가를 사이좋게, 조금 어색하게 나눠 먹었던 느낌만

남아 있다. 늘 같은 모습에서 벗어난 생경함이, 엄마를 엄마가 아닌 한 사람으로 느끼게 했다.

k대학에 도착하여 짧은 면접을 보고 돌아오는 기차 안에선 갈 때보다 마음이 푸근해졌다.

많은 사람들과 히터로 더워진 공기에 양볼은 빨개지고 면접이 다 끝난 안도감에 졸리기도 했던 그 시간들... 

그 학교는 인연이 아니었는지 떨어졌고 다른 곳을 가게 되었다. 

면접 때문에 함께 했던 기차여행이, 지금의 나보다도 젊었던 엄마와 함께 했던 추억으로 

남게 되었으니 한 가지는 건진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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