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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흥준 Aug 26. 2021

책 이야기_4

소설보다 여름 2021

스물한번째 


소설 보다 여름 2021/서이제,이서수,한정현/문학과 지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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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하고 싶은 한 문장


평생 나는 어떤 곳에 비켜서서 울음을 삼키기만 했다는 걸 알았습니다. 그렇게 또렷하고 깨끗한 시야에 그제야 울음을 간신히 참고 있는 영소의 얼굴이 들어왔습니다. 그 얼굴과 나란히 혜자와 미자가, 그리고 영자가 그곳에 있었습니다. 나는 아마도 무슨 말인가를 더 하려고 했던 것 같아요. 하지만 그 즈음엔 나도 부디 평안에 이르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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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할 생각들


저녁마다 가을이 오고 있음을 느낀다. 동시에 기다린 여름의 끝자락에 내가 서 있음을 깨닫는다. 여름이 다 지나가기 전에, 이 책을 읽어내고 싶었다. 여름이 가기 전에 이 책을 나누고 싶었던 마음도 슬며시 얹어 본다.


문학과 지성사의 “소설 보다” 시리즈는 매 계절마다 세 편의 단편 소설과 작가와 평론가의 인터뷰로 구성되어 우리를 찾아온다. 이번 여름에는 서이제, 이서수, 한정현 세 작가의 이야기가 담겼는데, 난 그 중에서도 한정현의 <쿄코와 쿄지> 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난 한정현의 작품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과거의 나에게 <소녀 연예인 이보나>를 열 번 읽혀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무래도 나의 집중력이 문제였을텐데, 애꿎은 한정현의 문체와 플롯을 탓한 것이다. <쿄코와 쿄지>를 다 읽었을 때 쯤, 나는 이 소설이 내 올해의 소설로 남겠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쿄코와 쿄지>는 70~80년대 광주에서 자란 경녀, 혜숙, 미선, 영성 네 사람의 과거를 오키나와에 사는 현재의 경녀(이제는 경자)와 그의 자녀(영소)가 회상하는 서술 방식을 취한다. 회상이라기 보다 정확히 말하면 '기록' 의 형식을 빌려오는데, 엄마 '경자' 의 기록과 자녀 '영소' 의 기록 속에서, 80년 광주에서부터 이어진 사람의 시간들이 새끼줄처럼 꼬인 채 독자 앞에 드러난다.


과거의 네 인물은 모두 자신에게 '부여된' 성별에 불만을 가진다. "말대꾸라도 하는 날엔 오빠에게 헛간으로 끌려가 주먹으로 얼굴을 맞"(155쪽)고, 오빠의 재수를 위해 가고 싶은 대학을 포기해야 했던 '딸' 이 아닌 '아들' 대접을 받고 싶어하는 경녀, 혜숙, 미선. 인터섹스의 몸으로 태어나 남성의 삶을 살고 있지만 여성의 삶을 바라는 영성. 그들은 각자의 이름 마지막 글자를 자(子)로 바꾸며 우정의 서약을 맺는다. 그들은 그렇게 경자, 혜자, 미자, 영자가 되었으며, 아들을 권유하고 싶지 않다는 영자의 말로 인해 자(子)는 다시 한 번 자(自) 로 바뀐다. 우정의 서약이라고 일컬어지는 개명 과정은 어쩌면 자신의 정체성을 스스로 정립하는 '자긍' 하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즉, 개명은 이름 한 자 바꾸는 것으로 얻을 수 있는 남성성- 혹은 이름을 바꾸어도 결코 얻어낼 수 없는 남성성 - 일지라도, 자신의 정체성을 스스로 사유하고 만들어가는 주체로서의 이행인 것이다.


그리고 70~80년대 광주를 배경으로 하는 서사이기에, 소설은 오월 광주를 한 치도 비껴나갈 수 없었다.

소설은 오월 광주가 네 인물에게 어떤 자국을 남기고 갔는지에 대해 들여다보는데, 오월 광주는 벗어난 자들의 마음에도 씻을 수 없는 자국을 남기는 일이었음을 선연히 드러낸다.

학살의 현장을 두 눈으로 목격하고 하루만에 머리가 하얗게 센 미자,

시위 중에 목숨을 잃은 혜자,

친구와 가족에게 총을 겨누어야 했던, 남성이자 군인이었던 영성.

그리고 그 곳에 없었던, 광화문 재수학원에서 공부를 하고 있던 나, 경자.


 "아무것도 보지 못한 거야. 다 잊어. 다 잊고 살어"(182쪽) 라고 아무리 말해도, 나는 "연대나 시위 같은 말을 들으면 숨이 차오르는 사람이 되어"(170쪽)버리고 마는 것이었다.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어도, 그 날의 일은 그 누구와도 무관하지 않으며, 거기에 있지 않은 누구도 결국 그 자리에 있었음을, 그래서 우리는 복원될 수 없는 각자의 자국을 가슴에 둔 채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 자국을 어찌해야 할까. 시위나 연대란 말을 듣기만 해도 가슴이 저릿하고 질색한 감정을 느끼는 사람으로 남아있어야 하는가.


작가는 '더러운 피' 라는 개념을 가져오며 정지된 가슴을 다시금 재생한다. 즉 빨갱이라 불리우며 죽어간 오월 광주의 사람들, 말대꾸를 하면 주먹으로 얼굴을 맞아야 했던 사람들, 일본에 사는 조선인이라 왕따를 당해야 했던 사람들, 남성과 여성의 성기를 모두 가지고 태어난 사람들, 모두들 '더러운 피' 를 가지고 태어났다고 모욕받는 사람들.

작가는 이들이 받는 모욕이 절대 그들의 잘못이 아님을, 당연하다고 생각되는 것 외에는 다 당연하지 않은 것으로 취급하며 배제하는(196쪽) 세상의 잘못임을, 그렇기에 우리의 삶이 "어쩌면 서로를 가로지르며 나아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는" 일임을 말하며 지금껏 펼쳐진 삶과 이야기들이 교차하고 있음을 드러낸다.


소설 속에서 이러한 교차성을 깨달은 경자의 자녀 영소는 자신의 연구를 위해 광주행을 선택한다. 그녀의 연구는 "죽어도 꼭 살아있는 것 같은 사람들" 과 "살아남았어도 늘 과거에 사는 사람들" (198) 에 대한 연구일 것이며, 그것은 곧 오월의 광주를 비롯한 '더러운 피'의 영혼의 위로할 수도 없는 마음을 어루만지는 일일 것이다. 그녀의 연구는 또다시 기록이 될 것이며, 그것은 전혀 죽고 싶지 않았던, 죽도록 살고 싶었던 사람들의 이름을 기억하는 일이 될 것이다.


결국 복원과 재현에 그칠 수밖에 없는 이야기일지라도, 함부로 판단하지 않고 ‘이야깃거리’ 화 하지 않은 한정현과 그녀가 가진 사랑을 듬뿍 가져온 인물들이 여기에 있어서 한정현 소설은 매력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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