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물 밖 개구리_다른 곳을 바라보다
사람들은 자주 고민에 빠진다. 그리고 질문한다.
좋아하는 일과 잘하는 일 중에서 어떤 일을 해야 하나요?
돈의 속성의 저자 김승호 회장님의 답변은 “잘하는 것이든 좋아하는 것이든, 돈 되는 일을 해야 한다”였다. 사람들은 돈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은 듯하다. 돈 이야기를 하면 ‘속물적’이라고 생각한다든지 ‘부자는 나쁘다’라는(사실이 아닌) 인식으로 판단하고 말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나 또한 그랬다. 돈에 대한 이야기를 꺼려했다. 다행히도 결혼 8년 차에 들은 유튜브 강의가 내가 가진 돈에 대한 인식을 바꾸어 주었다.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의 차이는 정말 크다. 돈에 대해 몰랐을 때는 돈이 스치듯 지나갔지만 돈에 대해 알게 되면서부터 돈을 통제하는 삶이 가능해지기 시작했다. 시간도 돈도, 그리고 나의 인생도 내가 주체가 되어서 내가 통제하며 살아야 한다. 시간과 돈은 물론 인생까지도 능동태가 아닌 수동태로 살아왔다. 카드를 자르고 소비 통제를 하려 해도 되지 않던 것이 돈에 대해 알게 되면서부터 저절로 통제가 되기 시작했다. 정말로 내 인생의 주인이 내가 된 것이다.
돈 때문에 시작한 일은 아니 지만 돈을 벌지 않으면 그 일은 지속할 수 없다. 그 일이 취미 생활이나 봉사활동이 아니라면 더욱이 그렇다. 돈은 감사의 표현이고 기쁨의 교환이라고 한다. 나의 귀한 시간을 들여서 학생들의 학업 진도를 최선을 다해 관리했고 모임의 운영에 대해 기획을 하고 모집을 하고 진행하였다. 처음은 서비스일 수 있고 무료일 수 있으나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도 서비스를 받는 사람도 감사와 기쁨을 주고받으며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는 것이 맞다. 그런데 그 당시는 이 사실을 알지 못했다. 무료로 시작한 일을 유료로 전환한다는 것이 심적으로 부담이었다. 그러나 나는 한 단계 더 실행하기 위한 시도 했고 생각보다 좋은 반응으로 쉽게 유료화로 전환되었다. 이렇게 한 단계 한 단계 밟아 나갔고 시행착오를 겪으며 내 마음의 벽들을 허물어야 했다. 남들에게는 아무 일도 아닌 자연스러운 일일지 모르지만 내 인생 36년 동안 처음 하는 사업이 아니던가. 쉬운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내가 온라인 스터디를 기획할 수 있었던 것은 6년 전에 시작한 온라인 성경통독 모임 덕분이었다. 매일 성경은 읽고 싶은데 혼자서 마음을 다잡아 보아도 작심삼일이다. 위로가 되는 것은 많은 사람들의 의지는 ‘작심삼일’ 정도라는 것이다. 둘째를 낳고 100일쯤, 아는 선생님의 권유로 시작했다. 아이를 키우면서는 제때 잠을 잔다거나 먹는다는 것이 불가능하다. 그런데 성경통독이라니? 그것도 매일? 그러나 꼭 해보고 싶었다. 시작하기가 어려워서 그렇지 책임감이 강한 나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하면 분명히 해낼 것 이란 것을 알았다. 그렇게 시작한 성경통독은 일 년에 일독을 하게 되었고 6년째 지속하고 있으니 나는 성경을 6번 보았다. 둘째의 나이와 함께 나의 성경통독의 연수도 먹어간다. 세상에 쓸모없는 경험은 없다. 모든 경험은 피와 살이 됨이 확실하다. 많은 지인들이 성경통독을 함께 했었다. 지인들 중 지금까지 지속하고 있는 사람은 몇 명 없는 것 같다. 서른이 훌쩍 넘어 알게 되었지만, 내가 잘하는 일은 ‘꾸준하게 하는 것’이었다!!
내가 잘하고 좋아하는 일. 그 교합점에 있는 직업은 ‘교사’라고 생각했다. 내가 아는 것을 나누고 이야기하고 알려주는 기쁨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원치 않는 사람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하면 ‘오지라퍼’이지만 상대가 원할 때 알려주는 것은 ‘교사’가 될 수 있다. 나의 이야기를 듣는 학생들. 그리고 내 말에 권위가 실어질 수 있는 전문성. 그래서 교사라는 직업은 내게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나의 최종 꿈은 교사가 되어 ‘강사’로 ‘작가’로 활동하는 것이었다. 언젠가 내 이름 석자 박힌 책을 내어 보리라. 김미경 강사님 만큼 유명한 강사는 아닐지라도 남들 앞에 서서 강의하는 강사가 되리라 하는 꿈이 있었다. 작가가 되고 강사가 되려니 전업주부로만 살던 한 아줌마를 어디에서 갑자기 ‘강사’로 써줄 것이며 어떻게 ‘책’을 쓸 수 있단 말인가. 교사라는 직업을 발판으로 나에게 감투 하나를 씌워서 책도 쓰고 강의도 하러 다니는 그런 삶을 꿈꿨다. 그래서 더 절실하게 공부했다. ‘교사’라는 꿈을 넘어 나의 꿈을 이루어야 하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