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며칠 전 친구에게 임용이 3주 남았다는 소식을 들었다. 임용 시험 친 지가 벌써 일 년이나 되었다고? 세월 정말 빠르다. 속절없이 흘러가는 시간.(속절없이:단념할 수밖에 달리 어찌할 도리가 없이.)
아직도 나는 전공책을 버리지 못했다. 10여 년의 내 인생이 버려지는 것 같은 기분에 쉽사리 정리하지 못하겠다. 미니멀 라이프를 하면서 물건을 함부로 버린 적도 없지만 필요 없는 물건을 버리지 못한 적도 없다. 그런데 딱 한 가지.. ‘전공책’은 아직도 가지고 있다. 작년 12월 말. 남편과 “그만하자”라고 결정해 놓고 이사 오면서 또 가지고 왔던 나의 책. 작년까지 책을 버리지 못한 이유는 ‘다시 시험에 도전해볼 수도 있기 때문’이었는데 지금까지 버리지 못한 걸 보면 그 이유만은 아닌가 보다.
교사가 되지 않으면 세상에 직업은 없는 것처럼 살아온 나와 '정서적으로 이별'하는 것이 쉽지 않았는데, 책을 버리는 순간 '물리적인 이별'도 하게 되니 나는 여태껏 미루어왔을까. 사람과의 이별만 ‘애도’의 시간이 필요한 것은 아닌가 보다. 이제 곧.. 정말 이제는 물리적으로도 이별할 때가 다가왔음을 느낀다.
‘나는 교사가 되지 않기로 했다’. 그렇게 결정하고 돌아선 내 인생은 생각지도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인생에 늘 계획을 세웠고 그 계획을 이루려 노력했는데 (물론 이루지 못했다) 2020년은 계획은 없었고 ‘하루’만 있었다. 하루하루 충실하게 살아내었다. 하루를 즐겼고, 아픈 일도 그 하루만 참으면 되었다.
성경에 나오는 말이 있다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하라. 그날의 괴로움은 그날로 족하니라’ 진리였다. 말로만 듣던 그 메시지가 내 삶으로 체험되니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욜로’ 인생. (‘인생은 한 번뿐이다’를 뜻하는 You Only Live Once의 앞 글자를 딴 용어로 현재 자신의 행복을 가장 중시하여 소비하는 태도를 말한다. 미래 또는 남을 위해 희생하지 않고 현재의 행복을 위해 소비하는 라이프스타일이다.) 위의 정의에서 '소비'를 빼고 생각해 본다면, 진정한 ‘욜로’는 매일매일 기쁨과 기도와 감사가 넘쳐나는 삶일 것이다. 먼 미래보다 내 하루가 행복하고자 노력하는 삶이 ‘욜로’니까.
미래가 없는 것처럼 사는 것이 아니라 하루를 충실하게 살아내는 것이다. 오해하지 말아야 하는 것은 ‘완벽하게’와는 구분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로봇이 아니다. 우리의 365일이 모두 완벽할 수 없다. 아픈 날도 힘든 날도 슬픈 날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 하루에 충실하면 아프고 힘든 일도 빨리 이겨낼 수 있는 것 같다.
하루가 꼬이는 날이 있다. ‘아, 이런 날도 있구나’하면 되는 것이다. 새벽 기상을 어떻게 꾸준히 하냐고 물으시는 분이 많다. ‘충분한 숙면’과 ‘일관된 수면 패턴’이 도움이 된다고 말씀드리는데 제일 중요한 것은, 새벽 기상하지 못한 나를 ‘자책’ 하지 않는 것이다. 사람들은 목표를 세워두고 그 목표를 하지 못했을 때 좌절하고 실망한다. 그리고 그 목표를 내려놓고 이전의 나로 돌아간다.
나는 작은 일을 꾸준히 하는 편인데 이렇게 지속할 수 있는 것은 ‘나에게 실망하지 않기’를 잘해서 인 것 같다. 새벽 기상을 못한 날도 그렇게 속상하지 않다. ‘못했구나’, ‘오늘은 몸이 피곤한가 보다’, ‘내가 해이해졌나 보다’라고 생각할 뿐. 그저 일어난 시간에 맞추어 내 우선순위대로 움직일 뿐이다.
아침 루틴 모임을 운영하고 있지만, 모임을 운영하기 전까지 내가 매일 하던 일들이었을 뿐 그것을 ‘루틴’이라고 이름 붙인 적이 없다. 주부로서 아침에 일어나면 집을 정돈하고 하루를 시작하는 것. 그것은 나를 돕는 일이었기에 당연한 일이었다. 루틴 모임에서 항상 강조하는 것은 “몇 시에 일어나느냐 보다 중요한 것은 ‘우선순위’대로 살아내는 것입니다.”이다. 일어나서 그냥 내 할 일을 해내면 된다. 누군가에게 인정받으려고 하는 것도 아니고 내가 내 하루를 돕는 일이다. 새벽 기상을 하거나 이른 기상을 해서 일찍 집을 도운다면 내게 보너스 시간이 주어지니 더 좋을 뿐이다!
이렇게 루틴 모임에서 3개월간 습관을 장착하고 관리적인 일은 빨리 끝낸 후 남는 시간에 생산적인 일을 하기 시작하면 엄마들도 성장하고 발전할 수 있다. 아이가 어려서 못한다고만 생각했다. 주부라서 나를 돕는 일은 사치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독서’한 가지만 꾸준히 해도 내 하루는 달라질 수 있었다.
나는 올해 들어 '비타 30'(비행기 모드/타이머 활용/30분 독서)을 하면서 매달 4권의 책을 완독 했다. 일 년에 책 한 권 보던 내가 한 달에 4권. 9개월째니 36권은 넘게 보았다. 책을 무조건 많이 보아야 좋은 것은 아니지만 완독이 주는 기쁨은 확실하다. 초반에 독서습관을 잡을 때는 책을 완벽하게 정리하려고 하거나 필사를 하는 것보다 속도감 있게 읽어나가는 것도 한 방법이 될 수 있다. 꽤 많은 책을 읽고 나면 정독하고 싶어 지고, 정독하고 나면 독후활동도 하고 싶어 지고 단계 단계를 천천히 밟아나가면 되는 것이다.
내가 온라인을 기반으로 모임을 운영하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작년 이맘때, 나는 시험을 몇 주 앞두고 밥 먹는 시간 외에는 공부 중이었다. 며칠 전 같은데 벌써 일 년 전이라니 새삼스럽다. 나는 교사가 되었어도 행복했을 것이다. 평생 바래 온 꿈을 이루었다면 얼마나 기뻤을까. 그러나 나는 지금도 좋다. 아니, 지금은 벅찬 감동과 신남이 있다. ‘달콤한 레몬 이론’이 있다. 아무리 신 레몬이라도 자신의 것은 달다고 생각하는 합리화 이론이다. 교사가 되지 못해서 지금이 좋다고 나를 합리화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분명 교사가 되었어도 신나게 살았을 것이다.
교사가 되지 못하면 나는 아무것도 할 것이 없다고 생각했던 무경력에 가까운 전업주부 10년 차의 아줌마가 ‘교사가 되지 않기’로 결정하고 담담히 돌아섰을 때 일어난 10개월의 시간에 일들은 ‘기적’과 같이 느껴진다. 내가 운영하는 채널은 작게나마 브랜딩이 되었고, 1인 기업의 대표가 되었고, 출판사의 제의가 들어와서 곧 서울로 미팅을 간다. 사업자를 내고 4개월 만에 공식적인 외부 출장이 잡힌 것이다. 출판을 할지 하지 않을지 모르지만, 내게 출간 제의가 들어온 것이 감사하고 신난다. 주부로만 살던 내가 공식적 출장이 잡혀서 티켓팅을 하고 미팅을 간다는 것이 기적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이 모든 일은 ‘하루살이 인생’ 덕분이다. 이전과 같이 먼 미래를 바라보며 거창하게 이루어야 할 것들을 나열했다면 아직도 나는 ‘실패자’로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매일매일 열심히 살아냈더니 10개월 만에 많은 부분에서 성장했다.
첫 번째로, 평생의 꿈마저도 ‘하지 않기로’하는 용기. 돌아섰던 용기에 박수를 보낸다.
두 번째로, 코로나로 계획했던 공부방을 못할 상황에서 ‘할 수 있는’ 포인트에 맞추어 온라인 스터디로 실행했던 나를 칭찬한다.
세 번째로, 매일 새벽 기상으로, 매일 30분 독서로, 매일 루틴으로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낸 내가 고맙다.
마지막으로, 하루살이 인생으로 오늘 하루를 멋지게 살아내실 여러분을 묵묵히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