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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휴리릭 Sep 28. 2021

18개월 육아는 식빵언니

오늘 밤에도 언니식빵이 스치운다.

 아들이 18개월 즈음이 되면서 몇 가지 변화들이 생겼습니다. 위아래 4개씩 밖에 없었던 치아가 급격하게 세력을 확장하며 곳곳에 하얀 본체를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전에 비해 본인 마음에 안 들면 소리를 크게 지른다거나 물건을 집어던지는 행동을 가끔씩 보입니다. 

 가장 큰 변화는 제 껌딱지가 되었다는 겁니다. 저와 애착을 형성하려 하고, 분리되는 것을 강하게 거부합니다. 아침에 어린이집에 등원할 때와 밤에 잠투정을 할 때 가장 심합니다. 그냥 껌딱지면 좋은데, 저에게 와서 소리를 지르고 우는 껌딱지입니다.




재접근기의 시작


 어린이집 이야기만 들어도 생글생글 웃고, 먼저 어린이집 가방을 찾던 아들이 어느 순간부터 어린이집을 거부하기 시작했습니다. 집 밖으로 나갈 때는 소리를 지르며 환호했는데, 어린이집 근처에 도착한 순간부터 찡찡대다가 어린이집 문 열리면 제 품에서 격하게 발버둥을 칩니다. 처음에는 저랑 와이프랑 역할을 바꿔서 그런가 싶기도 했어요. 제가 육아휴직을 하고 등하원을 시키는 시기에 어린이집 거부가 시작 됐거든요. 다행인 건 그렇게 거부하던 아들이 저랑 안녕하고 나면 그래도 금방 울음을 그치고 어린이집에 적응을 하고 있는 겁니다. 어린이집 원장 선생님이 걱정 안 하셔도 될 것 같다며 보여준 CCTV 화면에는 다시 활짝 웃으며 놀고 있는 아들이 있었습니다.


 재접근기는 세상을 탐색하던 아이가 부모로부터의 위로와 애정을 필요로 하는 시기를 말한다고 합니다. 18개월 전후로 가장 많이 나타난다고 하는데, 아들에게 그 시기가 온 거죠. 그리고 그 시기 즈음 제 육아휴직과 함께 주양육자가 와이프가 아닌 제가 되면서 제 껌딱지가 됐습니다. 

 아들은 요즘 혼자 잘 놀려고 하지 않습니다. 혼자 노는 시간이 조금 길어진다 싶으면 어느새 장난감을 던지거나 물을 뿜는 장난을 하고 있습니다. 관심을 가져달라, 놀아달라는 거겠죠? 저랑 와이프가 둘이 밥 먹는 걸 절대 허락하지 않습니다. 혼자서 5분을 놀지 못하네요. 그래서 아들이 밥 먹을 때 저도 같이 먹고, 밥을 다 먹으면 저는 아들과 놀고 와이프가 혼자 밥을 먹습니다. 

 가끔씩 깨물기도 합니다. 이가 나니까 간지러운 건지 한 번씩 제 살을 급습하여 상처를 내고 갑니다. 이빨이 많이 자라고 힘이 세져서 진짜 '악' 소리가 날만큼 아픕니다. 그래도 어디 하소연도 못하죠. 복수도 못하구요.. 몸과 마음의 상처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아들이 장난감 던지듯이 공도 잘 던지면 야구를 시키는 것을 진지하게 고려해 봐야겠어요.



한밤중에도 아빠 껌딱지


 신생아 때부터 잠투정이 심했던 아들이었지만, 그래도 커가면서 한동안 잠을 잘 잤습니다. 저녁 8시 반 정도에 잠이 들어서 아침 7시 정도에 일어났으니까요. 밤에 종종 깨긴 했지만, 토닥토닥해주면 금방 다시 잠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위기는 방심하는 순간에 불쑥 찾아오죠. 어느 순간 아들이 잠을 자는 걸 거부하기 시작했습니다. 늦어도 저녁 9시 이전에는 잤는데, 밤 10시를 훌쩍 넘겨도 잠을 자지 않습니다. 모기 때문에, 감기 때문에 그런가 보다 하고 이해해줬었는데, 그것들이 다 해결된 후로도 계속 잠을 자려하지 않았습니다. 활동량이 부족한가 싶어서 밖에서 한참을 놀다 와도 아들은 힘이 남아 있더라구요. 저와는 다르게 말이죠.


 잠을 안 자는 건 놀아주고 같이 있어주면 되니까 괜찮은데, 문제는 매우 격한 잠투정이었어요. 졸린데 자기 싫어서인지 짜증을 내거나 소리를 지르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렇게 소리 지르며 울다가 지쳐서 겨우 잠들 때도 많았구요. 자다가도 새벽에 깨서 세상 떠나가라 우는 적도 종종 있습니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저를 찾습니다. 와이프가 달래려고 하면 와이프를 거부하고 저에게로 옵니다. 저한테 와서 달래지면 괜찮은데 제 품에서 또 소리를 지릅니다. 제가 지쳐서 아들을 내려놓으면 또 후다닥 저에게 달려오는 것을 반복하구요. 그렇게 거의 한 달을 보냈습니다.


18개월 아들은 한밤중에도 아빠 껌딱지랍니다



쪽쪽이에게 이별을 고하다


 쪽쪽이(공갈젖꼭지)와의 이별 시기를 언제로 할지 늘 고민이 많았습니다. 쪽쪽이가 치아에 좋지 않다는 것은 잘 알고 있지만, 아들이 쪽쪽이 없이 잠을 자지 못하다 보니 계속 미루고 있었습니다. 중간중간 한 번씩 시도는 해봤지만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애착 인형도 만들어 주려고 해 봤는데 안 되더라구요. 아들은 쪽쪽이를 물어야 잠을 잘 시간이다 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습니다. 

 사실 조금 더 단호하게 노력했다면 그전에 쪽쪽이를 뗄 수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쪽쪽이만 주면 편안하고 달콤한 밤이 온다는 걸 알기에 도전과 모험을 애써 외면했습니다. 내일이면 출근도 해야 하고, 몸도 피곤하고...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편안한 현실이 유지되기를 저도 모르게 바랬던 것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제 육아휴직을 해서 출근을 하지 않아도 되고, 아들을 어린이집에 보내고 나서 쉬면 되니까 독하게 마음먹고 쪽쪽이와 고별식을 가졌습니다. 어차피 쪽쪽이를 물어도 잠투정을 할 거면 차라리 이참에 쪽쪽이라도 끊자고 단호하게 마음을 먹었거든요.

 이제 어린 아가가 아니니까 쪽쪽이와 안녕해야 한다고 차분하게 설명해줬습니다. 미리 쪽쪽이 끝을 잘라 놓고 아들에게 주니 쪽쪽이를 물지 못하더라구요. 이제 네가 더 이상 아가가 아니니까 쪽쪽이를 물 수 없는 거라고 천천히 설명해줬습니다. 그리고 아들 스스로 쪽쪽이를 쓰레기통에 버리도록 했습니다. 제 말을 얼마나 이해했는지 모르겠지만, 나름의 이별의식은 해줬다고 생각합니다. 


오랫동안 사귀었던 정든 내 친구 쪽쪽이여 안녕



18개월 육아는 식빵언니를 찾게 합니다만...


 누군가가 그랬어요. 18개월이 괜히 십팔개월이 아니라고. 미국에서 아기를 키우는 후배가 미국에도 'terrible two'라는 표현이 있다고 알려주더라구요. '아기가 어찌나 우는지 침대에 던져버리고 싶더라고'라며 지난 육아를 추억하는 친구도 있었습니다. 대부분의 아기들은 이 즈음 부모를 힘들게 하나 봅니다.


 마음을 차분하게 다스리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아들이 잠투정을 하며 난리법석을 떨고, 그걸 2시간이 넘도록 해도 이해하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소리도 질러봤고, 모른 척 방에 아들을 혼자 두기도 해봤지만 결국 다 소용없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제가 뭘 해도 잘 달래지지 않기에... 뭘 하려 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아기를 받아들이려 하고 있습니다. 아들이 저에게 매달려 눈물이 방울방울 떨어지고 소리를 질러도, 차분하게 눈물 닦아주고 "괜찮아"라는 말을 해줄 뿐 그 이상의 것을 해주지 않습니다. 

 장난감을 던지면 장난감이 다쳐서 병원에 가야 한다고 말해주면서 아들이 만질 수 없는 높은 곳에 그 장난감을 두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바로 고쳐지는 건 아니지만, 장난감들이 계속 병원으로 가다 보니 던질 수 있는 장난감이 많이 줄어서인지 최근에는 조금 나아진 것 같습니다. 


 언젠가 이 소나기도 끝이 나고 평화가 찾아올 거라 믿습니다. 한동안 평화로워서 조만간 한 번 위기가 올 거라 예상했기에... 다만 그 위기가 생각보다 길어서 살짝 당황스럽지만 그래도 침착하게 이 위기를 극복해 보려 합니다. '식빵언니'도 수많은 위기를 이겨내고 도쿄올림픽 4강 신화를 만들었듯이, 저도 이 위기를 잘 이겨내서 훗날 지금을 아름답게 추억해 보려 합니다.


팬심으로 식빵을 샀습니다. 육아 스트레스는 언니식빵으로 푸는 거죠. 잼 한가득 발라서요!


 오늘 밤에도 '언니식빵'이 제 입에 스치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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