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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휴리릭 Apr 15. 2022

아기가 아프면 세상이 멈춥니다.

두 돌에 돌발진 걸린 이야기

 한동안 아들을 데리고 야외로 나가지 않았습니다. 밖을 돌아다니는 걸 좋아하는 아들이라 겨울에도 옷을 두껍게 입히고 산책을 나갔었는데 그러다 감기에 걸렸습니다. 콧물과 기침, 그리고 아들의 짜증과 함께 며칠을 보내고 나니 한동안 밖으로 나갈 용기가 생기지 않더군요. 

 그러다 날씨가 많이 따뜻해졌다 싶어서 오랜만에 야외로 나갔습니다. 아들의 생일을 집에서만 보낼 수는 없다는 생각에 옷을 든든하게 입히고 야외로 나갔습니다.


 최근 <띠띠뽀 띠띠뽀>라는 기차 애니메이션에 빠진 아들을 위해 기차를 보러 갔습니다. 노원구에 철도공원이라는 곳이 있더라구요. 코로나 때문에 아직 실제로 기차를 타보지도, 눈으로 직접 보지도 못한 아들을 위해 준비한 산책이었죠.


<띠띠뽀 띠띠뽀> 애니메이션 / 이미지 출처 : EBS 홈페이지


 엄청 좋아할 거라는 예상과는 달리 아들은 시큰둥했습니다. 출발 전까지만 해도 활기차던 아이가 뭔가 행동이 느렸습니다. 애니메이션에 나오는 기차와 달라서 그런가... 그때까지만 해도 아직 말을 많이 못 하던 때라 조용히 30분 정도 걷다가 차로 돌아왔습니다.


 아들을 차에 태우고 마스크를 벗기는데... 노란색 콧물이 주르륵 흘러 있었습니다. 절대 방심하지 않고 분명 옷을 따뜻하게 입혔고, 날씨도 전혀 춥다고 느껴지지 않았는데... 그 때라도 문제의 심각성을 알고 집으로 빨리 돌아왔었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아들의 생일이었습니다. 이대로 돌아오기에는 아들에게 미안하다는 생각이 자꾸 들더군요. 이왕 나간 거 조금 더 돌아다녀보자며 근처에 있는 태릉에 갔었죠. 다행히 아들이 거기서는 또 열심히 놀더라구요. 시간이 지나면서 바람이 조금 더 부는 것 같았지만 아들이 워낙 즐겁게 놀길래 1시간을 넘게 놀았습니다.



 그날 밤은 괜찮았으나... 하루가 지난 일요일 밤부터 아들 몸에서 열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고열은 아니었지만, 37.5도를 왔다 갔다 하더라구요. 해열제를 먹였더니 다행히 열이 빨리 내렸습니다. 


 혹시 몰라 다음 날인 월요일 아침부터 이비인후과를 갔습니다. 이비인후과에서는 특별한 문제는 없어 보인다고 하더라구요. 진료를 받을 때는 콧물이 조금 나올 뿐, 기침도 안 하고 열도 없었거든요. 그래도 혹시 몰라서 어린이집은 보내지 않았죠.


 그리고 그날 저녁부터 또 열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그 뒤로 해열제를 먹는 간격이 조금씩 짧아졌고, 해열제 효과가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다음 날 소아과도 가봤지만 특이점은 발견되지 않는다며 다른 성분의 해열제만 처방해줬습니다.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는 아들의 식욕이 사라졌다는 것이었습니다. 밥도, 간식도 정말 잘 먹던 아들이 까까마저 거부했습니다. 초반에는 그나마 소고기에 밥을 몇 숟갈이라도 먹더니 나중에는 밥을 거의 먹지 않았습니다. 목이 아픈 아픈 건지 액체로 된 건 그나마 조금 먹더군요. 죽 같은 걸로 겨우겨우 버텨나갔습니다.


 열이 39도까지 올라간 적은 없지만, 37-38도 정도의 열이 계속 있었습니다. 수시로 아들의 몸을 만져보고 체온을 측정했습니다. 어떤 걸 먹을까 몰라서 정말 아들이 먹을 수 있는 모든 걸 준비해놓고 먹여보기도 했습니다.




 혹시 코로나에 걸렸을까 싶은 생각이 들더라구요. 아들은 컨디션도 안 좋을 뿐만 아니라 코 깊숙이 찔러 넣는 것이 잘 안 되다 보니 정확한 검사가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저를 날마다 자가진단 했습니다. 아들과 하루 종일 밀착하고 있으니 만약 아들이 코로나에 걸렸다면 저도 분명 걸렸을 테니까요. 하지만 계속 음성만 나왔습니다.




 4일이 지나도록 열이 완전히 떨어지지 않아서 결국 큰 병원으로 갔습니다. 의사 선생님은 이런 경우는 대부분이 코로나라면서 바로 코로나 검사를 하더라구요. 하지만 제 예상대로 음성이 나왔습니다. 의사 선생님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혹시 모르니 이것저것 검사를 해보자고 하셨습니다. 소변검사, X-Ray, 피검사를 했습니다. 가뜩이나 컨디션이 좋지 않은 아이를 데리고 검사를 받는 건 엄청난 고역이었습니다. 그나마 아들이 소변을 빨리 배출해줘서 다행이었죠.


 검사 결과가 나오는 데까지 2시간 정도 걸린다고 하더라구요. 아들이 병원 안에 있는 걸 격렬하게 거부해서 아들을 데리고 병원 밖으로 나갔는데 갈만한 곳이 약국밖에 없었습니다. 약국에서도 자동차 장난감을 판다는 사실을 이 날 알게 됐죠. 

 5천 원짜리 자동차를 들고 차에 돌아와서 아들과 1시간을 보냈습니다. 새로운 자동차 덕분에 그래도 30분 정도를 보낼 수 있었고, 동요를 부르며 또 30분을 버텼습니다. 결과가 나오기까지 마음은 초조했지만 아들의 기분을 맞춰주느라 몸은 바빴습니다. 


 모든 검사 결과 아무 문제가 없답니다. 의사 선생님도 열이 나는 이유를 모르겠다며... 일단 그나마 가능성이 있는 부분과 관련한 약을 처방해 줬습니다. 문제가 없다고 하니 다행이긴 한데 정말 답답해 미칠 지경이더군요. 당장 오늘 밤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막막했습니다. 오늘도 열이 나면 어쩌지...


 그날 밤 미열이 살짝 있었고, 그다음 날인 금요일 오후부터 열이 안 나더라구요. 그리고 몸에 옅게 열꽃이 생기더니 이틀 뒤에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아들은 다 나았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엄청난 식욕을 보여줬습니다.


 다 지나가고 나서 깨달은 것이지만, 아마 '돌발진'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보통 돌 즈음에 많이 발생하는데, 3세까지 발생하더라구요. 증상의 특징 중 하나가 발열이 3-5일 정도 지속되다가 갑자기 없어지는 것인데, 아들의 증상과 정확히 일치했습니다. 열꽃이 생겼다가 사라지는 것도 그렇구요.

 


 

 그로부터 시간이 한참 지난 지금은 마음 편히 글을 쓰고 있습니다만, 그 당시에는 정말 세상이 멈춘 것 같은 기분이었습니다. 찡찡대는 아들을 달래고, 식욕을 잃은 아들을 먹이고, 열이 나는 아들을 재우느라 저 역시 5일 동안 제대로 먹지도, 자지도 못했습니다. 물론 성인인 제가 며칠 못 먹고, 못 자는 건 큰일이 아니죠. 

 정말 큰 일은 아들의 열이 5일 내내 지속됐다는 것이었죠. 큰 병원에서도 원인을 찾지 못하니 미치겠더라구요. 차라리 코로나라고 하면 대응이라도 하겠는데, 병원에서도 원인을 못 찾아주니 당연히 해결책도 없고... 긴장과 불안 상태로 며칠 동안 멈춰버린 세상을 살았습니다.



 두 돌이 되면서 아들이 말을 조금씩 하기 시작했고, 저도 모르게 욕심을 냈었습니다. 영어도 가르쳐볼까 하는 거만한 생각으로 아들에게 원, 투, 쓰리를 가르쳤습니다. 


 다 필요 없다. 그저 건강하게만 자라다오.

 초심으로 돌아갔습니다. 아픈 뒤에 전보다 더 잘 먹는 아들에게 이것저것 부지런히 대접하고 있습니다. 하루하루 새로운 말을 할 때마다 깜짝 놀라기도 하지만, 굳이 더 가르치려 하지 않습니다. 그저 건강한 오늘 하루에 감사하며 살고 있습니다. 그렇게 3주가 지났습니다.


 그런데...


 어제저녁부터 콧물이 납니다. 어린이집 친구들이 모두 콧물이 난다고 합니다. 아들이 마지막 차례인가 봅니다... 아, 야속한 환절기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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