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휴리릭 Dec 02. 2021

육아휴직 100일차, 회사 생각이 나지 않습니다..

하루가 짧은 육아휴직 일상이야기

 벌써 2021년의 마지막 달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육아휴직을 한지도 100일 정도가 지났습니다. 회사를 다닐 때도, 육아휴직을 한 지금도 시간은 생각보다 빠르게 흘러갑니다. 



 사실 회사 다닐 때도, 지금도 날짜에 대한 개념이 별로 없습니다. 보통 날짜보다는 요일만 아는 경우가 많았죠. 회사 다닐 때는 월급날이 한 달 중 날짜를 정확히 아는 거의 유일한 날이었고, 지금은 아들이 새로운 개월이 되는 날이 그런 날입니다. 새로운 개월에 접어드는 날, 아들의 키와 몸무게를 재보거든요.

 대신 회사 다닐 때와 마찬가지로 여전히 평일과 주말이 확연하게 구분됩니다. 평일은 아들이 어린이집을 가고, 주말은 그렇지 않으니까요. 평일엔 아들을 어린이집에 보내고 몇 시간의 자유가 있고, 주말은 하루 종일 아들과 함께 하고 있습니다.





하지 못한 것에 대한 핑계는 많죠. 예를 들어, 너무 바쁘다거나...


 육아휴직을 시작하면서 썼던 글을 다시 한번 봤습니다. 제가 야심 차게 적어놓은 목표가 있더군요. 운동, 공부, 브런치, 이렇게 3개 목표를 세웠었어요. (고작 100일 정도 지났는데 그 목표가 가물가물해져 전에 썼던 글을 다시 보고 왔습니다.)


 운동은 욕심만큼은 못했지만 그래도 회사 다닐 때보다 오히려 더 많이 한 것 같습니다. 아들이 어린이집 가 있는 시간에 틈틈이 거리를 열심히 걷는 것으로 유산소 운동을 했고, 집에 와서는 열심히 스트레칭을 했습니다.(웨이트라고 말하기에는 너무 보잘것없기에 스트레칭이라는 단어를 써봅니다.) 아들이 13kg에 가까워지면서 정말 살기 위해 운동을 한다는 말을 실감하고 있습니다. 

 운동을 위해 야심을 가지고 구매한 턱걸이 봉은 턱걸이보다는 스트레칭 용으로 많이 쓰고 있습니다. 봉에 매달려서 온몸을 쭉 펴주면 몸도 개운해주고 허리에도 좋습니다. 턱걸이를 하기 위해 힘차게 올라가다가 금방 현실을 깨닫고 다시 내려옵니다. 그래도 저를 위해 열심히 조언을 해주는 친한 동생이자 트레이너가 있어서 그 동생에게 덜 미안하려고 한 번이라도 더 시도해 봅니다.



 공부는 사실 손도 대지 못했습니다. 바쁘다는 것은 핑계고 의지가 부족하다는 것이 진실이겠죠. 10년 전과 비교해서 제 언어 구사 능력이 정말 현저하게 형편없어진 것 같아서 어학 공부를 다시 시작해 보려 했지만... 아들이 언어 혼란을 겪지 않도록 하나의 언어만을 사용해야겠다는 굳은 다짐을 하면서 공부 안 하는 것을 합리화하고 있습니다.

 책이라도 읽자는 생각에 근처 구립도서관에서 책을 빌려서 가끔 읽고 있습니다. 다만 신작은 경쟁이 치열해서 쉽지 않더군요. 그래서 브런치를 통해 다른 분들의 따끈따끈한 글을 열심히 읽고 있습니다다른 분들의 세상 사는 이야기나 생각을 듣는 것도 큰 공부니까요.



 브런치는 열심히 써보려고 노력하고 있으나 생각만큼 되지는 않습니다. 회사 다닐 때와 큰 차이는 없는 것 같아요. 다만 글을 쓰는 데 있어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훨씬 안정되어 있긴 합니다. 글을 쓰다 시간이 늦어지면 내일 출근 생각에 조급해질 때도 있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집에 아무도 없는 낮에 조금 써보려고 했는데 집중이 잘 안 되더라구요. 그리고 바빠서 짬이 많이 나지 않더라구요. 그래서 회사 다닐 때처럼 아들을 재우고 밤에 종종 쓰고 있습니다. 하지만 글을 쓰다가 자꾸 다른 곳으로 길을 벗어납니다. 회사와 육아에 치여 못 봤던 만화와 소설과 드라마를 봐야 해...라고 아무도 없는 방에서 혼자 중얼거리면서 말이죠.


거창하게 장만한 여러 아이템들은 저를 걷던 길에서 잠시 벗어나게 합니다.



근데 진짜 바쁘긴 합니다.


 휴직해서 아들을 어린이집에 보내 놓으면 그 시간 동안 집에서 자유 시간이 많은데 왜 바쁘냐고 하는지 궁금하실 수도 있습니다. 근데 진짜 바쁘긴 합니다... 

 아들이 어린이집에 있는 시간이 6시간 정도 됩니다. 그리고 저는 그 시간 동안 아침과 점심을 먹어야 합니다. 그리고 청소, 빨래, 쓰레기 버리기 등의 거의 모든 집안일을 합니다. 



 제가 결혼 전 오랜 시간 자취를 할 때는 적당한 수준으로 집안일을 했었습니다. 밥은 모두 밖에서 먹었고, 집에 혼자 있는 것보다는 밖에서 친구를 만나거나 산책을 하는 것을 좋아해서 집에 있는 시간도 별로 없었거든요. 그런데 아기를 키우고 코로나로 모든 끼니를 집에서 먹다 보니 그때에 비하면 집안일이 어마어마합니다. 마트에서 쇼핑하는 것보다 온라인 쇼핑에 익숙해지다 보니 분리수거할 박스는 어찌나 많던지요. 그리고 아기와 같이 산다고 생각하니 전보다 더 많이, 더 열심히 집안일을 하게 됩니다. 코로나 때문에 가족이 외식하지 않고 집에서만 밥을 먹다 보니 집안일은 더 많아지구요.

 



그래서일까요? 회사 생각이 안 납니다.


 휴직 초반 제 업무를 이어받은 후배가 휴직 중 죄송한데 부득이하게 물어볼 것이 있다며 몇 번 연락이 왔어요. 그리고 한 달 정도 지나니 연락이 없더라구요. 친한 팀장님과 후배들과 가끔씩 안부 연락 정도는 하지만, 집에서 회사까지 거리도 멀어 회사까지 가는 것이 쉽지 않다 보니 휴직 이후에는 한 번도 얼굴을 보지 못했습니다. 회사 정보통인 동기가 가끔씩 회사의 핫한 소식을 알려주지만 제가 회사에 없어서 그런지 큰 감흥이 없더라구요.

 휴직을 하고 나니 제가 다니던 회사를 다시 보게 됩니다. 회사 속에서 몇 년을 살다가 회사 밖에 나와서 회사를 보니 느낌이 다르더라구요. 처음에 입사했을 때의 마음가짐도 추억해 보고, 변한 제 직급과 회사에 대한 애정도 고민해 보게 됩니다. 처음에는 좋은 점만 보여 열정을 가지고 사랑을 나누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단점이 눈에 들어오는 장기 연애 중인 커플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싫어도 참고 계속 연애를 해야 하는 건지, 아니면 시간이 지나면서 새로운 좋은 점을 찾고 더 좋은 연애가 될 수 있을지, 혹은 상대방은 그대로인데 내가 변해서 이 연애가 흔들리고 있는 건지... 이런저런 생각을 해보다 어느새 아들의 하원 시간이 돼서 어린이집으로 출발합니다. 



잠이 줄었습니다. 그리고 감사한 마음으로 스포츠를 봅니다.


 육아는 고단하지만 신체적 피곤함의 정도는 회사 다닐 때보다 덜한 것 같습니다. 회사 다닐 때에 비해 잠이 줄었습니다. 출퇴근 시간이 사라진 것이 가장 큰 이유겠죠. 여러 가지 이유로 회사에서 조금 먼 곳에 살고 있어요. (같은 서울 하늘 아래인데 동쪽에서 서쪽까지 왜 그리 멀까요...) 회사까지 왕복 2시간이 걸려 출퇴근을 했었습니다. 그 시간이 사라지니 체력을 많이 아낄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오늘도 멀리서 통근하시는 분들... 정말 고생 많으십니다.)


 그 덕분에 제가 좋아하는 스포츠를 열심히 보고 있습니다. 여자배구는 아들과 저녁을 먹고 노는 시간에 하다 보니 라이브는 거의 못 보지만, 아들을 재우고 하이라이트를 포함해 여러 영상과 뉴스를 천천히 훑어볼 수 있죠. 손흥민 선수와 황희찬 선수가 활약하고 있는 프리미어 리그 경기는 밤 12시 경기라도 거뜬합니다. 주말마다 이렇게 라이브로 경기를 볼 수 있는 날이 얼마나 있을까 싶어 열심히 보고 있습니다. 


"이 재밌는 걸 아빠 혼자 봐서 미안하구나 아들아. 빨리 커서 같이 보자."





많아진 시간 공백과 명상... 2021년의 문이 닫히고 있습니다.


 육아휴직을 하고 나니 시간의 틈이 생기는 때가 전보다 훨씬 많아졌습니다. 회사와 육아를 둘 다 하다가 하나가 사라지니 당연한 일이겠죠. 게다가 친구들을 만나는 일도 거의 없다 보니 더 그런 것 같아요. 도와주시는 분 없이 온전히 저와 와이프 둘이서 육아를 하다 보니 제가 평일에는 어린이집 등하원에 얽매어 있고, 주말에도 어딘가를 혼자 나가는 게 선뜻 되지 않더라구요. 지금까지 만났던 친구라고는 평일 낮에 시간이 되는 취업 준비하는 동생, 결혼식 사회를 봐달라고 부탁하러 왔던 후배, 육아용품을 물려주려고 만난 후배 정도밖에 없는 것 같네요. 코로나가 아니었다면 아기들 데리고 같이 만났을 텐데 그걸 못하니까요.


 명상의 시간을 종종 가지고 있습니다. 한 때는 커피 중독자처럼 살았는데 커피 대신 차를 마시며 창밖을 내다보는 때가 많습니다. 


 "아들은 어젯밤에 왜 잠을 자지 않고 밤 11시까지 버텼는가"

 "오늘 배구는 누가 이길까?"

 "아 맞다! 세제 사야 하는구나. 핫딜방을 뒤져봐야겠다."

 "점심. 그것이 문제다. 일주일에 5번이나 혼자 먹어야 하다니. 오늘은 뭐 먹지."


 이런 별 것 아닌 생각들을 하곤 합니다.


 예정대로라면 이제 복직까지 9개월 정도가 남았네요. 마침 1년의 마지막 달인 12월도 되다 보니, 내년 복직까지 휴직 기간을 어떻게 보낼지 생각을 하게 됩니다. 육아휴직을 시작했던 제 마음가짐을 다시 한번 되새겨 봅니다. 


 아들과 애착형성은 잘 되고 있는지, 아빠로서 최고는 아니지만 그래도 최선을 다하고 있는지, 아직 말 못 하는 아들의 투정을 너그럽게 받아주었는지...


신생아 때 아들의 발이 이렇게 작았었는데... 시간이 많이 흘렀구나 깨닫고 있습니다.


이전 06화 18개월 육아는 식빵언니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