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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휴리릭 Oct 22. 2021

헬리콥터 맘과 그 배구 자매

독립심을 가진 아이로 키우고 싶은 맘


헬리콥터 부모

아이들이 성장해 대학에 들어가거나 사회생활을 하게 되어도 헬리콥터처럼 아이 주변을 맴돌면서 온갖 일에 다 참견하는 부모                                                                                     



 '헬리콥터 부모'라는 용어를 들어보신 적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마치 헬리콥터처럼 자녀 주변을 빙빙 돌며 자녀를 과잉보호하는 부모를 지칭한다고 합니다. 자녀의 위에서 헬리콥터처럼 떠다니며 모든 걸 간섭하는 거죠. 자녀의 독립심을 키워주기보다는 자녀의 일거수일투족을 부모가 다 챙기는 건데, 문제는 자녀가 성인이 된 이후에도 이런 성향이 이어진다는 겁니다. 자녀는 독립할 나이와 때가 되었는데도, 부모의 헬리콥터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거죠.




대학 교수에게도 메일을 보내는 헬리콥터 부모


 제가 대학교 다닐 때 일입니다. 다음 주 시험을 앞두고 마지막 수업을 하시던 교수님이 강의를 10분 정도 남기고 표정을 확 바꾸시더니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오늘이 마지막 수업이고 다음 주가 시험이죠. 시험을 앞두고 꼭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서 수업을 10분 일찍 끝냈습니다.

 여러분은 대학생이자 성인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수업을 듣고 있는 지성인이기도 하죠. 옛날이야기를 해서 미안합니다만, 예전 학생들은 지금 여러분들보다 수업을 열심히 안 들었어요. 똑같은 문제를 출제한다면 아마 그 친구들은 여러분보다 답안을 훨씬 더 못 적었을 겁니다. 그런데 공부는 여러분들보다 조금 덜했겠지만, 그래도 그 친구들은 자신에 대한 책임감과 독립심을 가지고 있었어요. 성인이 된 만큼 성인답게 행동한 거죠.

 지난 학기에 제가 성적을 공개하고 한통의 메일을 받았어요. 학점이 낮게 나와서 항의하는 메일이었죠. 그런 메일을 충분히 쓸 수 있어요. 이 수업이 수학 문제처럼 딱 정답이 정해져 있는 그런 시험이 아니고 서술형이다 보니 본인의 예상과 실제 점수가 다르게 나올 수 있으니까요. 그렇기 때문에 제가 그런 메일을 받게 되면 다시 한번 그 학생의 시험지와 점수를 확인하고, 그 학점이 나오게 된 이유를 충분하고 자세하게 설명해 줍니다.

 그런데 그 메일은 일반적인 메일이 아니라서 제가 그 메일을 받고 큰 충격을 받았어요. 그 메일은 제 수업을 들었던 학생이 아니라, 그 학생의 어머니가 쓴 메일이었거든요. 메일의 시작부터 친절하게 적으셨더라구요. 누구 학생의 엄마라고.

 제가 먼저 이해가 안 됐던 건... 시험을 직접 보지 않은 그 엄마는 어떻게 시험 답안지에 대해서 이야기를 할 수 있었을까 하는 점이었어요. 그리고 어머니가 그럴 동안 그 학생은 무얼 하고 있었을까도 궁금했구요. 혹시 갑자기 입대라도 했나 싶어서 제가 그 학생에게 전화도 해봤어요. 그런데 엄마가 메일 보낸 것이 맞다고 하더라구요.

 시험을 보지도 않은 사람이 그 시험에 대해 항의 메일을 보낸다는 생각을 한다는 것도 이해가 잘 안 되지만, 떳떳하게 대답한 그 학생이 더 이해가 안 되고 답답했습니다. 

 여러분들은 성인이자 지성인입니다. 본인이 한 행동과 결과에 대한 책임은 본인에게 있는 것이죠. 미성년자는 보호자가 필요하지만 여러분은 다른 누군가의 보호자가 될 수 있는 성인입니다.

 제가 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제가 이 사례를 소개한 것만으로 여러분들 스스로 충분히 느꼈으리라 생각하고 여기까지만 말하겠습니다. 제가 이번에도 저번처럼 학생의 부모가 쓴 메일이 날아올까 봐 너무 두려워서 미리 말하는 겁니다. 제 교수 생활 30년에 이렇게 시험을 보기 전에, 성적을 공개하기 전에 두려운 건 처음입니다. 

 학생 본인이 성적에 대한 문제 제기나 항의 메일은 언제든지 가능합니다. 필요하면 제게 미리 연락 주시고 제 연구실로 오세요. 제가 학생 본인 시험지를 같이 보면서 그 성적이 나오게 된 이유를 차분하게 설명해드릴게요. 학업 상담이나 진로 상답도 언제든지 환영합니다. 하지만 부모의 이름으로 성적과 관련하여 연락이 온다면... 하... 부디 그런 일은 없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여전히 존재하는 수많은 헬리콥터 사례들


 저 과목을 수강한 지 벌써 10여 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헬리콥터 부모는 더 많아진 것 같습니다. 대학교에 들어간 이후에도 고등학교 때처럼 자녀의 스케줄을 관리하고 스펙을 어떻게 쌓을지 계획해 주는 건 매우 평범한 축에 속하죠. 회사에 퇴직하겠다고 엄마가 회사에 전화하는 경우도 봤어요. 우리 아들이 그 회사랑 도무지 안 맞아서 그만둬야겠다고 전화를 했더래요. 그 아들은 회사에 아무런 통보도 없이 갑자기 무단결근을 했구요. 아들이 회사에 입사할 때 면접을 대신 봐주지 못해서 매우 아쉬워하셨을 엄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왜 고개 숙여, 고개 숙이지 말고 걸어


 어느 자매의 엄마가 자매에게 했다는 말입니다. 언뜻 보기에는 자식에게 당당함과 용기를 주는 말처럼 보이죠. 그런데 사실 이 말은 한동안 여자배구를 포함한 스포츠계를 뒤집어 놓았던 그 자매의 엄마가 한 말입니다.

 그리고 이런 말을 덧붙였죠. "여기 온 기자들 중 단 한 명이라도 우리에게 진실이 무엇인지 물어본 적 있었느냐"라고. 하지만 "그러면 진실이 무엇인지 말을 해 달라"는 기자들의 질문에 답을 피한 뒤 자리를 떠났다고 하죠.


그리스 리그에서 뛰기 위해 출국하려는 그 자매


 이걸 보면서 교수에게 메일을 보냈던 그 엄마가 생각이 났습니다. 사실 논란의 중심이 된 자매에게는 사실 발언할 수 있는 충분한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자매는 KBS와 인터뷰를 하기도 했고, 자매의 법률대리를 맡고 있는 법무법인을 통해 입장을 전달하기도 했습니다. 자매가 하고 싶은 말을 다 하고도 남았을 기회입니다. 이것마저도 부족하다면 개인 SNS를 활용해도 됐겠죠. 글을 게시하면 충분히 기사화됐을 테니까요.

 제가 의아한 건 이겁니다. 설령 자매에게 억울한 부분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그걸 왜 엄마가 말하냐는 거죠. 만약 억울한다면 당사자가 가장 잘 알 텐데 말이죠. 논란이 되었던 그 시간에, 그 현장에는 분명 자매만 있었지 엄마는 없었을 텐데 말이죠. 억울하다면서 정작 당사자들은 제대로 전부 다 말을 하지 않고 있구요. 엄마의 힘을 빌리지 않으며 말할 용기와 능력이 없는 걸까요? 그렇다고 하기엔 이 사건이 벌어지기 이전에는 너무 말을 잘했었는데 말이죠. 예능 프로그램도 여러 군데 출연할 만큼.

 교수에게 학점 항의 메일을 보냈다는 그 엄마와 이 자매의 엄마는 매우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들의 독립심을 키워주고 싶은 맘


 저는 20살이 되면서 부모님과 떨어져 서울에서 살기 시작했습니다. 아무것도 몰랐지만, 친구들에게 물어보고 인터넷도 찾아보고 하면서 나름의 생활력을 키웠습니다. 물론 부모님의 도움을 전혀 안 받을 수는 없었지만, 최대한 제가 스스로 해결하려고 노력했어요. 괜히 멀리 계신 부모님께 말해서 걱정이나 수고를 끼쳐드리고 싶지 않았거든요. 그리고 저는 이제 성인인데 누구의 도움을 받는 것도 이상하다고 생각했구요. 고등학교 때까지 할 수 없었던 수많은 것들의 제한이 해제되었으니 당연히 거기에 맞는 책임감을 가져야 하니까요. 



 제 아들도 그렇게 키우고 싶은 마음입니다. 아들이 성인이 되기 전까지는 당연히 충분한 보호와 지원이 필요하겠죠. 하지만 성인이 되기 전까지 자립할 수 있는 독립심을 조금씩 키워주려고 합니다. 마치 어린 새가 엄마 새를 따라 조금씩 하늘을 날아보는 연습을 하는 것처럼 말이죠. 그리고 아들이 성인이 되었을 때 혼자서 세상을 날아봤으면 좋겠어요. 처음이라 낯설고 어려운 점도 많겠지만, 그래도 경험해보고 도전해보면서 더 나은 어른이 될 수 있는 거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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