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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휴리릭 Mar 04. 2022

층간소음과 예민한 아빠의 육아(후편)

예민한 아빠는 오늘도 조용히 살고 싶습니다...


 저번 글에서 제가 겪었던 기이한 층간소음 사례들에 관해 적었습니다. 언급한 사례를 직접 겪었던 당시에는 정말 충격적이었고 많이 힘들었는데... 그래도 시간이 지나니 아주 조금은 기억이 흐려지는 것 같은 기분입니다.


 층간소음의 가장 큰 문제는 트라우마처럼 기억에 박힌다는 것입니다. 한 번 어떤 소리에 귀가 트이면 언제 다시 그 소리가 들릴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휩싸이게 되는 거죠. 발망치 소리라는 것이 시간으로만 따지면 엄청 길지 않습니다. 집에서 사람이 연속적으로 10초 이상 걷기는 매우 어렵거든요.(집이 엄청 넓은 경우는 예외겠지만... 제가 그런 곳에서는 안 살아봐서) 하지만 몇 초의 강렬한 기억이 머릿속에 정확히 박힐 수 있습니다. 언제 다시 그 소리가 들릴지 모른다는 생각에 마음은 평화를 잃고 초조해 질 수 있습니다. 발자국 소리에 심장이 덜컹 가라앉고, 발망치 하나하나마다 심장이 아래로 낙하하는 기분을 느낄 수도 있습니다.


 




피곤한 육아에도...


 제가 예민하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주변의 환경이나 이웃이 문제지 제가 남들보다 특별히 까칠하다고 생각하지 않았거든요. 하지만 결혼을 하고 상대적으로 무던한 와이프가 제게 정확한 답을 알려줬습니다. 제가 예민한 것이 맞다고... 아파트라는 공동 생활을 하면서 그렇게 예민해서는 안된다고...


 아기가 생기면 예민함이 조금 나아질 수 있을거라 기대를 했습니다. 아기에게 좋은 모습을 보여줘야 하니까 제 스스로 노력할 거라 생각했죠. 육아로 인한 피로를 느끼면 지쳐서 소리에 무던해지지 않을까도 생각해 봤습니다.


 육아 초창기 때, 잠 드는 순간의 예민함은 사라졌습니다. 회사 다녀와서 초보 아빠가 아기를 케어하는 것이 생각보다 너무 힘들었거든요. 아들의 잠투정으로 밤중에도 통잠을 한번도 제대로 못 자다 보니 늘 피로가 가득했죠. 그 때는 정말 눈만 감으면 금방 잠들 수 있었어요. 마치 고3때로 돌아간 것 같은 기분이었죠. 문제는 마음 편하게 잘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아기가 신생아일 때는 어 수 없이 청각이 예민해지더라구요. 밤중에 언제 아기가 깨서 울지 모르니까요. 게다가 육아 초보인지라 아기가 우는데 바로 반응을 해주지 않으면 큰 일이 난다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원래 한 번 잠들면 웬만해서 잘 깨지 않는데, 이 때부터는 귀를 완전히 열어두고 잠을 청했죠. 와이프가 하루종일 집에서 육아하느라 고생했으니 밤에는 제가 더 열심히 해야한다고... 멋진 아빠가 되겠다는 욕심도 컸습니다.


 그러다 보니 미세한 소리에도 잠에서 깨기 시작했습니다. 결혼 전에 같이 살았던 사촌 형은 시계 초침 소리에도 잠을 못 자던 형이었어요. 그래서 그 때는 집에 전자시계만 있었거든요. 초예민한 사촌 형을 보며 참 힘들겠다는 생각에 안쓰러웠는데, 어느 새 그게 제 모습이 되어있더라구요. 윗집 화장실 물 내리는 소리, 앞집 문 는 소리, 동네 취객의 괴성 소리... 모든 소리가 저의 잠을 방해했습니다. 잠을 자도 자는 것 같지 않은 시간이었죠.


 


통제가 불가능하기에 더 힘든...


 신생아 때부터 잠투정이 심했던 아들은 두 돌이 코앞인 지금도 잠을 엄청 잘 자는 편은 아닙니다. 여전히 밤에 한번씩 깨고, 가끔씩 울부짖습니다. 한동안은 잠자는 것을 격렬하게 거부해서 밤11시를 가볍게 넘기는 나날들이 이어지기도 했습니다.



 겨우 재운 아기가 다른 곳에서 나는 소리 때문에 깼을 때... 얼마나 짜증이 나고 화가 나던지요. 주말 낮잠 시간은 그래도 어느 정도 이해는 할 수 있습니다. 망치질을 할 수도 있고, 조금 시끄럽게 떠들 수도 있죠. 하지만 밤은 다릅니다. 밤에는 주변이 조용해져서 소리가 훨씬 크게 들리죠. 냉장고에서 나는 소리만 해도 낮에는 별로 인식하지 못하다가 늦은 밤에는 정말 잘 들리는 것처럼 말이죠.


 그런 늦은 밤에 큰 발자국 소리로 집안을 걷는다거나 부엌에서 도마질을 격렬하게 한다거나(아들 방이 부엌과 붙어있는 구조라 부엌에서 나는 소리가 매우 잘 들립니다. 네, 밤11시에 도마질을 격렬하게 하는 집이 있습니다...) 하면 신경이 곤두섭니다. 그럴 때면 황급히 잔잔한 음악을 틀어주거나 폰을 바로 못 찾으면 제 입으로 백색 소음을 만들기도 했죠.


 아들이 잠에서 깨는 것보다 더 큰 문제는 예민한 제가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것입니다. 아기를 재우고 이제 저만의 시간을 가지며 육아 스트레스를 풀어야 하는데... 제 신경을 거슬리는 소음이 나면 짜증이 나죠. 집은 편안함과 안락함을 줘야 하는데 그게 안 되는 거니까요.


 문제는 이런 건 돈으로도 해결할 수 없다는 겁니다. 아파트에 생활하면서 발생하는 대부분의 문제는 사실 돈으로 해결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건 돈으로도 해결이 안됩니다. 제 통제 범위를 완전히 벗어난 거죠. 그래서 제가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우린 답을 찾을 것이다. 늘 그랬듯이...


 인간의 오감을 on/off 할 수 있는 초능력이 있으면 정말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청각과 후각이죠. 나머지 감각은 그래도 어느 정도 컨트롤 할 수 있으니까요. 듣기 싫은 소리가 들릴 때 청각을 꺼둘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쓰레기를 비우러 갈 때 후각을 off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런 생각을 한번씩 해봤습니다.


 다행히 제가 후각은 예민한 편이 아닙니다. 그래서 혼자 자취한 시절부터 결혼 이후 지금까지 음식물 쓰레기와 분리수거는 제가 담당하고 있죠. 문제는 청각입니다. 그런데 우연히 어느 예능 프로그램을 보고 청각을 컨트롤 할 수도 있겠는데...?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미지 출처 : tvN <신서유기>


 찾아보니 노이즈캔슬링 헤드폰이란 것이 있더라구요. 예능을 보면 저걸 착용하면 정말 주변 소리가 안 들리는 것처럼 보였어요. 그래서 고민 끝에 매장에 가서 체험해봤습니다. 정말 신기하더군요. 당연히 어느 정도 가격이 있었습니다. 집에 와서 한참을 고민했습니다.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가 라섹 수술을 하기 전에 큰 맘 먹고 질렀습니다. 며칠동안 눈으로 볼 수 있는 즐거움이 없으니 듣는거라도 잘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샀습니다. 아기가 태어나기 전에 저를 위해 마지막 투자를 한다는 생각으로 라섹 수술도, 헤드폰도 질렀습니다. 그리고 노이즈캔슬링 헤드폰은 지금까지 제가 가진 물건 중 가장 만족도 높은 물건이 되었습니다.


 거슬리는 소리가 날 때는 노이즈캔슬링을 켜고 음악을 들으면 웬만한 소리는 묻힙니다. 물론 내 마음대로 생활하지 못하고 왜 이렇게 소음에 눈치를 보며 살아야 하나... 라는 자괴감이 들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그 자괴감보다 소음으로부터 해방되었다는 만족감이 훨씬 큽니다. 어떤 소리가 들려올지 귀를 민감하게 열어둘 필요없이 헤드폰에서 흘러나오는 편안한 음악과 함께 잠을 청하면 됩니다. 헤드폰을 낀 상태로 잠을 자는 것이 처음에는 조금 불편했지만, 금방 적응해서 지금은 헤드폰과 하나되는 수면을 하고 있습니다.



 아들이 신생아일 때도 유용하게 사용했습니다. 아들을 재우고 육퇴를 해야하지만, 잠투정이 심한 아들인지라 잠든 후에도 한동안 밀착 방어를 해야했습니다. 아들 옆에 누워서 눈을 감으면 금방 잠이 들어버렸고, 그렇게 흘러가는 밤이 너무 아쉬울 때가 많았죠. 그래서 이불 속에서 헤드폰을 장착하고 육퇴 후 자유시간을 즐겼습니다. 드라마나 유튜브를 보며 지친 심신을 달랬습니다. 피곤했지만 이대로 자면 또 내일이라는 생각에 조금이라도 놀다가 자고 싶었습니다. 어둠 속에서 영상을 봐야하니 눈이 조금 피로하긴 했지만, 이미 육아로 인해 온몸이 심히 피로한 상태라 크게 개의치 않았습니다.  



이제는 가해자가 될 수 있음을...


 아들이 걷기 시작하고, 격렬하게 뛰기 시작하면서 제가 층간소음 가해자가 될 수 있음을 깨닫고 있습니다. 어린이집 하원해서 실컷 산책을 하고 돌아와도 아들은 여전히 에너지가 넘치나 봅니다. 아들은 저녁을 먹고 나면 '띠띠뽀' 노래를 틀어달라고 외칩니다. 노래가 나오면 춤을 추면서 뛰어 다닙니다.

 처음부터 매트 위에서만 뛸 수 있게 교육을 시켜서 그나마 다행입니다. 매트가 아닌 그냥 바닥에서는 뛰지 못하게 계속 가르쳤더니 다행히 매트를 벗어나지 않습니다. 매트가 아닌 바닥에서 뛰면 아랫집에 피해를 줄 수 있고, 넘어지면 다칠 수 있죠. 한 번 바닥에서 제대로 쿵 했던 기억 때문에 아들도 스스로 조심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죠.


 아이들은 본능적으로 달리는 걸 좋아한다고 합니다. 초등학교 1학년들도 쉬는 시간이 되면 복도에서 다들 뛰어다닌다고 하죠. 달리기는 커녕 걷는 것조차 귀찮아지는 날이면 나이가 들었다는 걸 더 격하게 느낍니다. 그래서 아들과 같이 춤이라도 춰보려고 노력합니다. 아들의 들뜬 기분에 제 기분도 비슷하게 맞춰보려고 최선을 다합니다.

 




 둔해지는 아빠가 되보려고 합니다. 아들에게는 섬세하고 다정하게, 소음에게는 무던하고 담담하게 대하려고 노력해 보려고 합니다.


 오늘도 빡센 육아를 하는 부모님에게... 육퇴 후 편안한 밤이 찾아오기를 바라며...

 오늘도 층간소음으로 괴로워하시는 분들에게... 조용한 평화가 찾아오기를 바라며...


 오늘도 사.뿐.사.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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