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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휴리릭 Feb 22. 2022

층간소음과 예민한 아빠의 육아(전편)

예민한 아빠는 오늘도 조용히 살고 싶습니다...

 쿵.쿵.쿵. 


 밤 11시를 넘긴 시간. 아들을 막 재우고 거실로 나왔습니다. 밖은 어둠이 진하게 깔렸고, 명순응 준비가 안된 아빠는 불을 아직 켜지 않고 적막 속에 서 있었습니다. 오늘도 아들을 재우기는 쉽지 않았기에.. 그래도 오늘은 밤 12시를 넘기지는 않았다는 안도감에 잠시 여유를 안고 거실 한복판에 서 있었죠.

 하지만 평화는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윗집이 활동을 시작했기 때문이죠. 쿵.쿵.쿵. 주변 세상이 고요한지라 발자국 소리는 더 크게만 들립니다. 발자국은 묵직한 소리와 함께 거실부터 방까지 부지런히 왔다 갔다 합니다. 예민한 아빠는 한숨을 쉽니다. 육퇴 후 쉬는 시간을 가지려 했던 아빠의 계획은 위층의 발자국 폭격에 무너져 버립니다.


 더 큰 문제는 혹시나 아들이 깨면 어쩌나입니다. 아들이 자다가 깨면 다시 재우는 건 너무너무 힘들기 때문이죠. 윗집의 무차별 폭격이 빨리 멈추기를 간절히 바라봅니다.




층간소음의 첫 번째 기억


 25살까지는 층간소음이란 걸 모르고 살았습니다. 예전에 제가 살았던 집에 소음이란 것이 있었는지조차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경험해 보지 않았기에 존재를 느낄 수 없었겠죠. 


 대학교 기숙사에 살 때는 가끔 시끄러울 때가 있었지만 누가 놀러 와서 그런가 보다 했습니다. 그 소음은 옆방에서 나는 소음이지 위에서 나는 소음은 아니었어요. 기숙사 방이 너무 좁아 걸어 다닐 곳이 거의 없어서 발망치 같은 건 존재하기도 어려웠죠. 


 전역 후 2년간 살았던 원룸은 정말 조용했어요. 제가 보통 집에 늦게 들어가기도 했지만, 제 방이 탑층에 있어서 가능했던 것 같아요. 심지어 가장자리에 위치한 방이라 옆집도 하나밖에 없었는데, 옆집에 살던 분은 2년 동안 단 한 번도 시끄러운 소리를 만들지 않았습니다. 아랫집은 주인집이었는데 초등학생 아이들이 있어서 밤 9시 정도면 불이 다 꺼지더라구요. 


 처음으로 층간소음에 귀가 트인 건 교환학생을 다녀와서 구한 오피스텔이었어요. 이름만 오피스텔이지 사실 원룸과 다를 바가 없는 집이었죠. 제 방은 위, 아래, 왼쪽, 오른쪽에 모두 이웃이 있는 딱 한가운데 방이었어요. 그전까지 층간소음 같은 건 겪어보지 않았었기에 방을 구할 때 층간소음이란 건 고려했던 요소가 전혀 아니었죠.

 그런데 그 오피스텔에 살기 시작한 며칠쯤 지났을까요... 밤에 자려고 누웠는데 정체불명의 소리가 들렸습니다. '휘이이', '쿵.퉁.투둥.'. 문제는 어느 방향에서 나는 소리인지 알 수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소리의 정체도, 소리의 방향도 모르니 정말 미치겠더군요. 더 큰 문제는 소리의 규칙성도 없고, 소리의 형태도 날마다 조금씩 달랐다는 거죠. 언제, 어떤 소리가 튀어나올지 모르니 집에 있다 보면 신경이 곤두서더군요. 귀가 소음을 찾기 시작하니 집에서는 그 어떤 것에도 집중하기 어려웠습니다.



 이 이야기를 들은 제 친구가 책상 위에 사탕을 놓고 자보라고 하더군요. 귀신 소리일 수도 있다고. 귀신이 사탕을 좋아한다고. 그래서 사탕을 놓고 자면 귀신이 조용할 거라고.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생각했지만, 너무 괴로운 나머지 밑져야 본전이란 생각으로 한 번 해보자 마음먹고 사탕을 샀습니다. 그런데 못했습니다. 아침에 일어났을 때 사탕이 줄어들어 있으면 너무 무서울 것 같더군요... 소음도 무서운데 귀신이라뇨...



 층간소음에 한 번 귀가 트이기 시작하니 저는 조금씩 예민해져 갔습니다. 원룸을 벗어나 아파트에 살아도 마찬가지 더군요. 원룸은 공간이 좁아 발망치는 별로 없었는데, 아파트는 발망치가 저를 괴롭히는 주요 요인 중 하나였습니다. 어찌나 요란하게 걷는 사람들이 많은지...




 제가 겪었던... 층간소음 사례들을 한 번 적어볼까 해요. 층간소음 피해자들끼리 서로의 피해를 공유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는 연구 결과를 본 적이 있어요. 실제로 우연히 친구도 층간소음에 시달리고 있다는 것을 알고 그 친구와 많은 대화를 나눴는데 신기하게 그날 밤은 조금 낫더라구요. 나 혼자만이 아니구나... 내 친구도 당하고 있구나... 이런 동병상련의 마음 때문이었을까요...


 그래서 그때부터 층간소음이 심할 때면 층간소음 노트를 작성했어요. 그럴 일은 없어야 하지만, 혹시나 나중에 이 노트가 도움이 될 수도 있잖아요. 그 노트 기록 중에서 인상 깊은(?) 것들만 몇 개 골라서 한 번 적어봅니다.  



기이한 층간소음 사례 1 - 3층 리모델링 공사하는 소리... 전 12층에 사는데...


  엘리베이터에 3층이 리모델링을 할 거라는 안내문이 붙었습니다. 저는 12층에 살고 있었기 때문에 큰 상관이 없을 거라 생각했죠. 

 리모델링 안내문을 보면 공사 일정과 함께 소음이 가장 많이 나는 날을 적어둡니다. 마침 제가 그 소음이 가장 많이 난다는 날 하루 휴가를 내서 집에 있었어요. 그런데... 아침 9시부터 쾅.쾅.쾅. 하는 소리가 너무 선명하게 들리는 겁니다. 소리가 쉴 새 없이 나길래 위층에 한 번 올라가 봤는데 고요하더라구요. 이건 사람 한 명이 낼 수 있는 소리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면서 3층 리모델링 안내문이 떠올랐습니다. 그래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3층에 가봤더니... 정확히 제가 듣고 있는 소리가 나고 있었습니다!



한 번은 가스검침원 분이 저희 집 가스 검침을 하면서 이런 이야기를 했어요. 

 "정말 신기하네요. 제가 가스 검침하느라 15층에서부터 내려오면서 집집마다 다 방문하고 있거든요. 지금 1403호에서 조그만 공사를 하는데 그 소리가 집마다 다 똑같이 들려요. 여기 1204호잖아요? 1303호에서 들었던 거랑 같은 소리가 나요."


 우리나라의 많은 아파트들이 벽식 구조를 택하고 있고, 소음이 벽을 타고 이동하다 보니 이런 현상이 생긴다고 들었습니다. 그래서 소음이 발생하면 윗집이 아닐 수도 있으니 함부로 단정 짓지 말라고. 여기에도 무죄추정의 원칙은 필요하다면서 말이죠. 반면 기둥식 구조의 주상복합은 소리가 기둥을 타고 사라져 버리는 구조라서 층간소음만 놓고 봤을 때는 벽식 아파트보다 훨씬 좋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거 하나만 믿고 주상복합으로 이사를 가보려고도 했으나... 이런저런 이유(가장 큰 건 와이프의 확실한 반대...)로 포기했습니다.



기이한 층간소음 사례 2 - 공룡 걸어가는 소리


 쥬라기공원? 티라노사우르스??!! 혹시 꿈인가..? 


 정말 거짓말 하나 안 보태고 공룡이 나타난 줄 알았어요. 느리고 묵직한 발걸음 소리가 쥬라기공원 영화에서 봤던 그 사운드와 매우 유사했습니다. 부엌에서부터 거실까지 한 걸음씩 걸어가는데... 인간이 저런 소리를 내는 것이 가능한가?라는 생각이 들면서 공포에 휩싸였습니다. 윗집에 분명 사람이 아니라 다른 것이 살고 있다는 것이니까요.


 발소리가 멈추지 않길래 이젠 안 되겠다 싶어 윗집으로 올라갔습니다. 그 소리의 정체가 너무 궁금했거든요. 계단을 올라가는데... 공룡 소리가 더 가까워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내가 괜히 위험을 자초하나 싶기도 했지만... 호기심은 이미 저를 위층으로 데려다 놓았죠. 윗집 대문에 귀를 대보니 공룡 소리는 더 명확히 들렸습니다. 다른 소리는 하나도 들리지 않았어요. 들릴 수가 없었죠. 공룡 발자국 소리보다 더 큰소리가 세상에 얼마나 되겠습니까. 



 이건 말도 안 된다 싶어 벨을 눌렀습니다. 저도 모르게 충동적으로 눌렀습니다. 윗집 사람, 아니 윗집에 사는 어떤 생명체와 대면하고 싶지 않았지만, 너무 두려웠지만 그래도 이건 실체를 확인해야만 했습니다. 그 어떤 것이 나오더라도 놀라지 말자... 설령 그것이 내 목숨을 위협하더라도 덤벼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제 손에 핸드폰 외에 무기로 쓸만한 어떤 것도 들고 오지 않았다는 사실에 잠시 슬픈 운명을 예감하기도 했습니다만... 기록에 남겨 세상 사람들이 알게 해야 한다는 일념으로 폰 동영상 버튼을 누르고 벨을 눌렀습니다.


 하지만... 아무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벨을 누른 후 공룡 발자국이 두 걸음을 더 내딛고 그 뒤로는 고요해졌습니다. 벨을 연속해서 눌러봤지만 갑자기 윗집에는 고요함이 흐르는 것 같았습니다. 벨소리를 들으면 죽는 공룡이었을까요..? 혹시 몰라 계단에 앉아 10분을 기다렸습니다. 집에 내려가서 무기를 들고 올까 고민했지만, 그 사이에 공룡이 나타날까 봐 자리를 지켰습니다. 하지만 끝내 아무것도 확인할 수 없었습니다.


 이후로 그 집에서 이사 갈 때까지 다시 그 소리를 듣지 못했습니다. 근데 정말 그 소리는 무엇이었을까요..? 지금 생각해도 소름이 돋습니다.



기이한 층간소음 사례 3 - 새벽 6시, 방망이로 굿모닝 인사하는 윗집


 정확히 새벽 6시가 되기 조금 전이었어요. 제가 빨리 출근을 해야 해서 알람을 6시에 맞춰뒀었거든요. 근데 그 알람이 울리기 전에 천장에서 두드리는 소리가 나더라구요. 제가 잠들면 잘 깨지 않은데 천장을 마구 두드리는 소리에 깼습니다. 깨기 전부터 이미 소리는 났다는 뜻이겠죠. 


쿵쿵쿵쿵쿵쿵쿵


 위층에서 몽둥이 같은 걸로 바닥을 내리치는 것 같은 소리였습니다. 매우 일정한 속도와 리듬을 갖춘 소리... 마늘을 빻는 소리인가? 그런데 그걸 새벽 6시에...? 잠깐 하다 말겠지 했는데 계속 소리가 들려서 관리사무소에 전화를 했습니다. 위층에 연락을 해보겠다고 하더군요. 잠시 뒤 거짓말처럼 소리가 멈췄습니다. 그리고 관리사무소에서 다시 연락이 왔어요. 윗집에서 인터폰을 안 받는다고 하더군요.



 정황상 윗집에서 인터폰이 울리자 문제가 있다는 걸 깨닫고 멈춘 것 같았습니다. 그래도 최소한의 양심은 있네...라고 생각하며 돌아서는 순간 다시 소리가 났습니다. 쿵쿵쿵쿵쿵쿵쿵. 이건 뭐지? 최소한의 양심이 아니라... 아예 양심이란 것이 없네? 


 아들이 자고 있으니 최대한 조용히 통화하려고 했으나 이미 아들은 잠에서 깼습니다. 천장에서 마구 두드리는 소리가 나니 아들은 무서웠는지 엉엉 울기 시작했죠. 어쩔 수 없이 다시 한번 관리사무소에 연락을 했습니다. 거듭 부탁드려 죄송하지만 다시 한번만 연락해 달라고 했습니다. 역시 윗집에서 응답이 없다고 하더군요. 그로부터 10분 정도 소리가 지속되더니 끝났습니다. 윗집은 목표로 한 마늘을 다 빻아야만 했나 봅니다. 덕분에 아들은 울고 저는 우는 아들을 뒤로하고 허겁지겁 출근 준비를 해야 했죠.




 예민한 아빠의 육아 이야기를 써야 하는데, 층간소음 이야기를 하다 보니 벌써 너무 길게 써버렸네요. 조금 지치기도 했고, 윗집에서 쿵.쿵. 소리를 내기 시작해서 집중력이 흐트러지는 관계로 조만간 이어서 더 쓰도록 하겠습니다.


 층간소음으로 괴로워하시는 분들에게... 오늘은 조용한 평화가 찾아오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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