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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휴리릭 Oct 12. 2021

육아와 중고거래에 관한 이야기

5천 원에 거래하실래요?

 전 원래 중고거래 같은 건 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원래 물건을 사는 것 자체에 별로 관심이 없었거든요. 그러다 보니 중고로는 팔 것도, 살 것도 딱히 없었죠. 그런데 육아를 시작하고 나니 참으로 다양한 용품들이 필요하더군요. 각 용품들마다 종류는 또 어찌나 많은지... 게다가 장난감도 주기적으로 새롭게 교체를 해줘야 하구요. 

 코로나가 없었다면, 이전처럼 정상적으로 생활했다면, 중고거래를 많이 안 했을지도 모릅니다. 육아 선배가 후배에게 물품을 나눠주고, 나중에 또 그 후배가 그다음 후배에게 나눠주고 했었으니까요. 하지만 코로나로 인해 아무래도 서로 만나는 것이 어려워졌죠. 조금 부담스럽죠.

 물론 경제적으로 정말 넉넉하다면 모든 걸 새로 사면 간단히 해결됐겠지만, 그런 건 아니기 때문에 중고거래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마침 '당*마켓'이란 플랫폼이 활성화되면서 중고거래가 훨씬 편해지기도 했구요. 


 오늘은 육아와 중고거래에 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육아에 중고거래는 필수!


 신생아 시절, 스와들스트랩을 샀어요. 아기가 잠투정이 심하고 해서 이걸로 좀 도움을 받아보려 했죠. 그런데 아기가 거부하더라구요. 새 제품이고 가격도 몇만 원이나 하는 건데... 그때는 와이프랑 둘이 아기 보느라 낑낑대던 때라 밖에 나가서 무언가를 사거나 중고거래는 꿈도 못 꾸던 시기였거든요. 그래서 어쩔 수 없이 큰맘 먹고 샀는데... 정말 딱 두 번 시도해보고 팔았습니다. 아기가 이걸 하면 더 소리를 지르니 방법이 없더라구요. 결국 구매 가격 대비 매우 헐값에 팔았어요.


사놓고 너무 안 써서 주름이 가득했던 스와들스트랩


 장난감은 경험재죠. 의사표현을 하지 못하는 아기를 위해 최대한 아기의 성향을 잘 파악해서 신중하게 장난감을 골라서 아기에게 줍니다. 하지만 아기는 이런 제 마음도 모르고 장난감을 거부합니다. 아니면 하루 이틀 가지고 놀다가 싫증이 났는지 쳐다도 안 봅니다. 이 장난감은 정말 잘 가지고 놀 것 같아서 거금을 들여 새 제품을 샀는데 바로 찬밥 신세가 되어버렸습니다.

 아들이 걸음마를 조금씩 하길래 쇼핑카트를 사주면 이걸 잡고 걸음마를 더 열심히 하지 않을까 싶어서 구매를 했었거든요. 그런데... 이걸 끌고 다닐 생각은 안 하고 버튼만 누르더군요. 언젠가 가지고 놀겠지 싶어 기다렸지만... 뛰어다닐 때까지도 잘 안 가지고 놀길래 결국 처분을 했습니다. 버튼을 누르는 장난감은 다른 것도 많았으니까, 더 망가지고 고장 나기 전에 차라리 팔고 그 돈으로 다른 새로운 장난감을 사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한 거죠.


걸음마에 전혀 도움이 되지 못했던 쇼핑카트



아빠들 중고거래의 특징 - 속전속결


 제가 지금까지 했던 중고거래를 떠올려보면, 70%는 엄마가, 30%는 아빠가 나왔어요. 그런데 아빠들과 거래할 때마다 정말 신기한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거래가 매우 신속하다는 거죠. 아빠들은 쿨하게 돈 주고 물건 받고 바로 갈 길 갑니다. 엄마들 중에는 꼼꼼하게 물건을 확인하고 돈을 주는 분들도 꽤 있거든요. 그런데 아빠들은 물건을 확인한다거나 다른 인사를 굳이 나누지 않습니다. 신속하게 거래를 하고 재빠르게 제 갈길을 갑니다.

 그 이유는 아마 저처럼 와이프의 지령에 따라 거래를 수행하기 때문이 아닐까 추측해 봅니다. 


 "여보, 거기 아파트 101동 앞에 가서 5천 원 주고 워터매트 받아오면 돼. 그쪽도 남편이 나오는데 파란 모자 썼다니까 쉽게 알아볼 거야. 늦지 않게 빨리 다녀와."

 부인이 이런 식의 말을 남편에게 하지 않았을까요? 


 중고거래도 성향이 맞아야 즐겁게 할 수 있겠더라구요. 저는 원래 게으른 편은 아닌데, 중고거래는 너무너무 하기 귀찮거든요. 5천 원 벌려고 사진 찍고 채팅하고 이렇게 하는 것보다 그냥 나중에 친한 후배 줘버리는 게 낫겠다고 생각해요. 근데 와이프는 생각이 다르더라구요. 5천 원에라도 팔면 돈도 벌고, 쓰지 않는 물건 처분도 할 수 있고, 그 돈으로 아들 장난감 사는데 보탤 수도 있는데 왜 이걸 안 하냐는 거죠.

 그래서 그저 와이프에게 감사하며 열심히 지령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밖에 나가는 건 귀찮지 않기 때문에 지령이 떨어지면 정확하고 신속하게 거래를 완료하고 집으로 돌아옵니다.



중고 거래의 숨겨진 법칙 - 버티면 승리한다?!


단종된 이후 가격이 급상승한 개구리 연못


 개구리 연못이라는 이름의 장난감입니다. 제가 작년에 사서 아들이 배밀이 할 때 한창 재밌게 가지고 놀던 장난감이죠. 아들이 저걸 엄청 좋아해서 저걸 가지고 놀기 위해 모든 힘을 쥐어짜서 배밀이로 갔던 기억이 납니다.

 하지만 장난감인지라 많이 쓰고 오래되니 잔고장이 나더라구요. 그리고 당연히 더러워졌구요. 작동이 잘 안 되니까 아들이 짜증을 내길래 한동안 눈에 안 보이게 치워놓고 있었어요. 그런데 와이프가 인터넷을 찾아보더니 이걸 고치더라구요. (조립이나 고치는 건 와이프가 저보다 훨씬 잘합니다...) 다시 소리도 잘 나고 잘 되니까 아들이 또 한동안 열심히 재밌게 가지고 놀았어요. 그러다 아들이 걷기 시작하고 이동의 자유를 얻으면서 이 장난감은 쳐다보지 않더라구요. 그래서 조만간 처분해야겠다 생각은 했는데... 미루고 있었죠.


 그런데!! 와이프가 갑자기 어느 날 당근마켓에서 이 제품이 난리가 났다고 소리를 지르더라구요. 이 장난감을 만드는 회사에서 이 제품을 단종시키기로 결정했나 봐요. 그래서 이 제품의 가격이 천정부지로 뛰고 있다고 합니다. 심지어 최초 구매 가격보다도 비싼 가격에 거래되기도 한답니다... 이게 무슨 셀럽의 한정판 굿즈 같은 것도 아닌데 말이죠. 여하튼 언젠가 또 가지고 놀겠지 라는 기대감과 약간의 귀찮음이 의도하지 않게 이 제품을 계속 가지고 있게 했고, 버티다 보니 가격이 올랐습니다. 와이프가 조만간 거래를 올릴 것 같은데, 아이들의 중고 장난감 시장도 참 알다가도 모르겠습니다.



중고거래하면서 만난 사람들


 중고거래를 종종 하다 보니 특별한 사람도 종종 만났습니다.


 - 외국인을 만난 적이 있었어요. 채팅할 때 한국말을 잘해서 전혀 예상도 못했는데, 외국인이 저에게 다가와서 "당근?" 이러니까 정말 당황했던 기억이 납니다. 거래를 하고 저에게 본인이 운영하는 식당에 한 번 오라며 홍보물을 주기까지 했어요. 


 - 딱 봐도 매우 비싼 고급차를 몰고 와서 1만 원에 아기띠를 가져갔던 사람도 있었네요. 대체 왜... 아, 이래서 저런 고급차를?!


 - 한 번은 약속시간이 10분이 다 지나가는데 거래 상대방이 나타나지를 않더라구요. 백 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어떤 남자가 계속 서 있어서 그 남자인가 싶었는데 그 사람은 저를 보고도 저에게 안 오더라구요. 제가 거래할 물건을 들고 있었으니 거래 당사자면 분명 왔을 텐데 안 오길래 그 사람은 아닌가 보다 했죠. 약속이 파투난 것 같아서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가려는데 아까 그 남자가 저에게로 열심히 뛰어와서 제게 묻더라구요. 혹시 중고거래하러 나오셨냐구요. 그분이 와이프의 지령만 듣고 나왔는데 세부적인 내용은 제대로 못 듣고 나와서 와이프 연락을 기다렸대요. 근데 그 타이밍에 와이프가 모유 수유를 하느라 남편이랑 연락이 안 됐던 거죠. 와이프 폰으로 거래를 한 거라 제가 보낸 메시지에도 답이 없었구요. (물론 저도 와이프 폰을 가지고 나서 채팅을 했지만요) 그러다 제가 자리를 뜨기 직전 극적으로 연락이 와서 거래를 할 수 있었어요. 




 내일은 안쓰는 장난감을 넣어둔 박스를 열어 정리를 한 번 해야겠습니다. 그래도 이제는 아들이 어느 정도 의사표시를 하니 아들에게 물어보고 처분할 것들을 모아봐야겠어요. 정리가 끝나면 와이프가 하나씩 살펴보고 중고거래 할 물건들을 판별하겠죠. 그리고 지령이 떨어지면 저는 신속하게 출동할 것이구요.


 중고거래도 서로 필요한 사람끼리 거래를 하는 것이니 의미 있고, 때론 재미도 있습니다만 저는 물려주고, 물려받고 하는 것이 더 좋네요. 예전 같은 일상이 빨리 다시 찾아와서 제 친한 육아 후배들에게 기꺼이 물건도 나눠주고, 같이 시간도 보내는 날이 오기를 기다려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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