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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휴리릭 Nov 01. 2021

일상을 무너뜨린 아주 조그만 실금

실금이 불금을 날려버렸습니다

 찰나의 순간이었습니다. 아들 목욕을 준비하기 위해 욕조에서 따뜻한 물을 틀고 이것저것 세팅을 하고 있었어요. 평소에는 목욕을 하자고 해도 꼼짝도 안 하던 아들인데 그날은 어느새 욕실로 들어오더라구요. '오늘 목욕은 좀 편안하겠구나'라는 생각에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화장실로 들어온 아들을 봤죠. 바닥에 미끄럼방지 매트가 깔려 있으니 안심하며 아들에게 가려던 찰나, 아들은 순식간에 발을 매트 밖으로 디뎠고, 그대로 미끄덩했습니다. 다행히 엉덩이 쪽으로 넘어져서 안도의 한숨을 쉬고, 목욕을 시켰죠. 그런데...



아파? 근데 어디가 아픈데? 어디?


 그런데 아들이 한 걸음 걷더니 왼쪽 발을 이상하게 구부리면서 낑낑대기 시작했어요. 뭐가 불편한 건지, 아픈 건지... 아들에게 열심히 물어봤죠. 

 "아파? 어디가 아파?"

 "여기가 아파? 여기? 발가락? 발목? 어딜까..."

 아직 말을 못 하는 아들이기에 부자 사이에 답답함만이 오가고 있었습니다. 아들은 계속 왼쪽 다리를 가리키며 소리를 지르더라구요. 

 처음에는 그냥 흔한 엄살 같은 거라 생각했어요. 가만히 있을 때는 아프다는 소리를 안 했으니까요. 그래서 같이 앉아서 밴드를 붙여주고, 이제 다 나았다 라고 말을 해줬죠.


 토끼 밴드를 붙여주면 괜찮을 줄 알았어요


 하지만... 만족한다는 듯이 웃으며 일어선 아들이 한 걸음을 내딛는 순간, 또 소리를 질렀어요. 진짜 아픈가 보구나. 문제는 정확히 어디가 아픈지 알 수가 없다는 것이었죠. 아들이 아직 말을 못 하니까요. 제가 발가락부터 허벅지까지 부위별로 가리키면서 여기가 맞는지 물어봤지만, 아들은 명확한 답을 하지 않았어요. 게다가 어떤 통증 인지도 알 수가 없었죠. 아픈 건지 아니면 불편한 건지, 욱신거리는 건지... 



실금이 무너뜨린 일상


 바로 정형외과를 갔습니다. 어쩔 수 없이 엑스레이를 찍어야 하는데, 태어나서 처음 보는 기계와 그 공간의 분위기가 낯설어서 그런지 아들은 소리를 지르며 울었습니다. 머리에 땀이 가득할 정도로 우는 아들을 겨우 겨우 붙잡고 사진을 찍었습니다.

 다행히 사진상으로는 문제가 없었고, 일단 집에 돌아가서 조금 지켜보라고 하더군요. 아들이 걸으려고 하면 소리를 지르니까 어쩔 수 없이 최대한 앉아서 노는 걸 택했습니다. 그런데... 너무너무 시간이 안 가더군요. 아들이 걷지 못할 때는 이런 식으로 많이 놀았을 텐데, 왜 이리 재미가 없고 지루하던지... 아들은 당장 달려가고 싶은데 안 되니까 답답해하니 제가 남은 하루는 아들을 거의 안고서 보내고 겨우 잠이 들었습니다.


 다음 날 아침, 아들은 다리가 아팠다는 사실을 잊어버리고 일어나서 네 걸음을 걷더군요. 제가 조용히 정말 열심히 지켜보면서 '어? 괜찮아졌네?'라는 생각이 끝나기도 전에, 아들은 다시 울부짖었습니다. 어제보다는 덜했지만 분명 걸을 때마다 뭔가가 아프거나 불편한 모양입니다.

 아들을 겨우 달래서 아침을 먹이고, 다시 정형외과로 출발했습니다. 그리고 반깁스를 하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병원에서 안 아픈지 테스트를 해보고 싶었지만, 아들은 어제의 기억 때문인지 너무 울어서 결국 테스트를 못하고 유모차에 태워서 겨우 집에 왔어요.


 

 집에 돌아와서 아들을 조심히 매트 위에 내렸습니다. 숨죽이는 긴장감 속에 아들에게 걸어보라고 했죠. 한 발. 두 발. 오! 다행히 아프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하지만 뭔가 어색한지 반깁스 한 발을 한참 쳐다보더군요. 그리고 스스로 조심스럽게 한 발, 한 발 걸었습니다.

 걸음마하던 시절을 떠올리게 했어요. 처음 한 발, 두 발은 어려웠는데 막상 걷기 시작하니 달리는 데까지는 얼마 안 걸렸던 것처럼, 이번에도 그랬거든요. 처음에 조금 낯설어하더니, 안 아프다는 걸 확신하고 나니 깁스를 했다는 사실도 잊어버린 채 평소처럼 뛰기 시작하더군요. 저는 그러다 또 넘어지기라도 하면 큰 일 날 것 같아서 아들이 잠들 때까지 또 옆에서 밀착 경호를 했습니다. 


 아마 실금이 살짝 생기지 않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제 찰나의 방심이 실금을 만들었고, 그 실금이 반깁스를 하게 했고, 그 반깁스가 평온한 일상을 깨뜨렸습니다. 반깁스 상태로 열심히 돌아다니는 아들을 밀착마크 하다가 겨우 또 잠이 들었네요. 


 아... 저는 물리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헬리콥터 부모 스타일은 아닌가 봅니다.




 3일째가 되니 안 아픈 것 같아 보였지만, 혹시 몰라서 반깁스를 해서 어린이집에 보냈습니다. 어린이집 선생님이 완전 평소처럼 잘 놀았다고 하시길래 집에 와서 완전히 깁스를 풀었어요. 


 이번 사건을 겪으면서 몇 가지 깨달은 바가 있습니다. 먼저 모든 일은 순식간에 일어난다는 것. 아들이 이제 좀 많이 컸구나 라고 안일하게 생각한 것이 문제였어요. 한순간의 방심이 며칠의 고생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평범한 하루가 사실 정말 소중하다는 것도 깨달았죠. 회사에서도 그렇잖아요. 평범한 업무량에 불만을 가지다가 일 하나 터지면 그 평범함이 그리워지잖아요. 육아도 똑같더군요. 아들이 자유롭게 걸어 다니며 놀던 그 평범한 일상이 3일 동안 참 그리웠습니다. 12kg의 아들을 밀착 케어하는 건 정말 보통일이 아니더군요.

 그 평범함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브런치에 얼른 글을 써봅니다. 내일은 또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까요! 오늘도 부디 평범한 하루이길 바라며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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