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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혜빈 Aug 09. 2023

예술을 흘려보내는 사람

2023 첫 전시 활동 후 든 생각

전시를 앞두면 항상 난감하게 느껴지는 사항이 있다. 지인들에게 전시를 한다고 알릴 것이냐 말 것이냐의 문제. 전시를 한다는 건 내게 너무나 좋은 기회이고 기쁘게 알리고픈 일인데, 전시 소식을 알리는 건 여러모로 듣는 상대에게 부담을 주는 것 같아서 고민이 된다. 물론 알리지 않고 전시를 마치면 왜 그랬냐며 아쉬워할 사람들이 있다. 전시할 때마다 꼭 찾아가고 싶으니 알려달라고 적극 말해주는 친구들도 있고 말이다. 그런 마음을 받을 때마다 진심으로 고맙고 힘이 되는데도 이 성격은 늘 주춤하게 되는 것 같다.


지난 7월 부산에서 진행된 호텔 아트페어도 그런 생각에 조용히 지나가려고 했다. 하지만 매주 교회에서 사람들을 만나고 내 근황을 이야기하다 보면 그것도 완전히 숨길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결국 처음 의도와는 다르게 사람들을 초대하게 되고 말았다. 말을 꺼내고 나서 괜히 부담 준 것은 아닌가 걱정했는데, 초대를 받고 전시를 볼 생각에 설렘과 기대 가득한 얼굴들을 보니 마음 한쪽에서 슬며시 기쁜 감정이 피어올랐다.








나는 전시를 늘 찾아다니며 보는 사람이고 또 하는 입장이다. 가까운 친구들, 지인들만 해도 대부분 미술/디자인 전공생이고 말이다. 그런 만큼 내게는 전시를 보고 이와 관련한 대화를 하는 게 일상적이고 익숙하다. 익숙해서 몰랐는데, 이번에 초대를 받고 전시 관람 후기를 말해주는 사람들의 반응을 지켜보면서 한 가지 깨닫게 된 것이 있다. 실생활이 미술과 관련이 없는 일반 사람들에게 전시 초대 자체가 특별한 선물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요즘은 미술 전시를 보는 사람들이 많아져서 종종 어떤 전시는 티켓 구하기도 어렵다는 말이 들리기도 한다. 그러나 솔직하게 미술 전시는 이 분야와 관련이 있거나 미술에 높은 관심 있는 사람이 찾아가게 되는 게 맞는 것 같다. 실제로 몇 년 전 서울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전시되었던 관람객 참여 설문조사 작품 중에 응답자의 90% 이상이 미술 관련 전공자이거나 관련 분야 종사자였던 것을 기억한다. 오래전 기억이라 데이터에 오류가 있을 수도 있지만, 그때 현실이 내게 준 충격만은 지금도 선명하다. 별다른 계기나 이유가 있지 않고서 일반 사람들(미술 관련 전공자 혹은 관련 분야 종사자가 아닌 사람들)이 기꺼이 티켓 값을 지불하고 시간을 들여 전시를 보기란 쉽지 않은 것이다.


그런데 내 주변에는 미술에 별 관심이 없다가 나 때문에 미술 전시를 접하고 보게 된 친구들이 있었다. 친구들이 전시장에 와서 작품들을 마주할 때 무엇을 보고 어떻게 느껴야 하는지 어렵고 어색해하면서도 평소와 다른 경험에 즐거워하던 모습이 떠오른다. 전시를 둘러보며 내게 ‘덕분에 문화생활을 한다’던가 ‘접점이 없던 미술 전시를 다 본다’고 하던 말은 그냥 하는 얘기라고만 여겼는데, 지금 다시 돌이켜 보면 정말 대단한 말이었다.


나는 예술이 좋아서 이 안에 있고 누구든 삶에는 예술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어떻게 사람들이 삶에서 예술을 가까이하도록 할 수 있을까? 이런 어려운 질문이 떠오를 때마다 그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며 넘기곤 했다. 하지만 이미 나(예술 안에 있는 나)는 매개였다. 내가 작가이기 때문에 주변 사람들에게 예술로의 기회를 열어줄 수 있던 것이다. 사람들에게 문화생활의 시간을 선물하고 예술과의 거리를 좁히도록 돕는 일을, 내 작품뿐만 아니라 내가 활동하는 영역에 속한 많은 다른 사람들의 예술 소개를 나는 하고 있었다.


사람들의 삶으로 예술을 흘려보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알지 못한 사이 사람들과 예술 사이에 다리 놓는 역할을 조금씩 조금씩 해오고 있던 걸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내가 겸손한 마음으로 작업하기를 바라고 부끄럽지 않은 작품을 보이고 싶은 건 더 좋은 예술을 흘려보내고픈 마음이지 않을까. 많은 사람들에게 예술을 권하고 기쁘게 이 장으로 초대할 수 있도록 좀 더 자신감을 가져야겠다.








흐르는 여름 | Flowing Summer,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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