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위에 떠있는 배들을 보니 얼마 전 일이 떠올랐다. 나는 배웅을 위해 부산역 플랫폼에 서 있었다. 가야 할 사람들은 이미 자기 자리를 찾아 들어갔고, 기차는 곧 출발할 기운이 감돌았다. 그때 나는 모든 것을 뒤로하고 서울로 떠나고픈 충동에 휩싸였다. 그 충동이 어찌나 강하던지 정말로 기차가 출발하기 직전 객실 안으로 뛰어들 뻔했다.
내가 기차를 타지 못할 이유는 없었다. 그냥 기차에 올라타서 기차표를 결제하고, 세 시간쯤 후에 눈 뜨면 서울일 것이었다. 갑작스럽지만 친구들에게 연락해서 잠 잘 곳을 구할 수 있을 것이고 그렇게 하지 않더라도 어딘가 하루쯤 묵을 곳 구하기야 쉬운 일이었다. 올라간 다음 날엔 친구와 만나도 좋고 혼자 시간을 보내도 좋을 것이었다. 그래, 그렇게 쉬운 일인데…
지금 보니 내가 떠나고팠던 이유는 현실로부터 도망치고 싶은 마음이라는 생각이 든다. 갖지 못한 삶, 어딘가 있을 것만 같은 나의 지루한 루틴이 있는 곳으로. 그러나 정작 쉽다고 말한 일을 하지 않은 것은 그게 한낱 신기루라는 걸 이미 알았기 때문이다. 기분 전환, 어떤 충동에 의한 경험, 영감 등— 아마도 분명 흥미로운 일들이 벌어졌겠지만 그렇게 도망친다고 내 현실이 사라지지 않는다는 걸, 오히려 더 짙어질 걸 알았다.
여전히 나는 삶을 견디고 있나. 실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럴 것인데, 유독 내 삶만 거대하고 낯선 거리감으로 다가올 때가 있다.
그렇구나, 또 조금 외로운가 보다.
그렇게 흘려보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