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요, 『내 작은 정원 이야기』를 읽고
사시사철 해가 잘 드는 친정집 거실에는 늘 각종 식물이 자라나고 있었다. 가장 해가 잘 드는 베란다 한편에서 때로는 꽃을 피우고, 때로는 앙상한 가지만 남기기도 하면서. 마치 시간이 우리를 자라게 하듯, 하나의 당연한 풍경이 되어 우리와 함께 자랐다. 커버린 딸들이 결혼해 집을 떠나는 동안에도 식물은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식물을 좋아했던가? 오히려 아빠의 유난스러운 식물 사랑이 못 미더웠다. 때마다 화분에 흙을 바꿔주고 마르지 않도록 물을 챙겨주는 그 모든 과정들이 그저 번거로워 보였다. 무엇을 위해 키우는 것일까. 열매를 맺는 것도 아닌데. 얻을 게 있어야 수고로움을 감당해야 하는 것처럼 생각했다. 아이를 낳고서야 그렇지 않은 마음도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시도했던 무수한 식물들이 죽어나갔다. 심지어 선인장마저 바짝 흙이 메말라 잎이 부스러졌을 때는 이제 더 이상 식물을 키우지 말자, 생각했다. 하지만 매해 새로운 마음으로 다이어리를 구매하듯 봄이 오면 자꾸 마음이 근질거렸다. ’이번에는 잘 키울 수 있지 않을까‘. 마침 새로 이사 온 집의 베란다는 해가 참 잘 들어왔다.
고심 끝에 작은 화분을 여러 개 구매했다. 지나가듯 봤던 영상에서처럼 방울토마토를 반으로 갈라 적당한 깊이에 묻어두고 물을 듬뿍 준 뒤 싹이 나기를 기다리며 틈날 때마다 들여다봤다. 예상보다 여러 개의 싹이 올라왔을 때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처음으로 우리 집에서 살아남은 식물이 혹여나 또 죽지는 않을까 작은 화분을 정성껏 햇살 따라 옮겨 주었다.
얼마 전 그 방울토마토에서 처음으로 노란 꽃이 열렸다. 키우기 시작한 지 약 8개월 만에 일이다.
”식물을 키운다는 건 어쩌면 기다림의 연속인지도 모르겠다. 겨울엔 봄을 기다리고 여름엔 가을을 기다리며 미래를 그린다. 봄을 그리며 구근을 심었으니 이제 내가 해야 할 일은 기다리는 것뿐이다.“ _ 194페이지
저자의 말처럼 내 지난 8개월은 기다림의 시간이었다. 이번에는 성공할지도 모른다는, 내 손으로 키워낸 식물이 열매를 맺을지도 모른다는, 그간의 막연한 기대감이 현실이 되어 눈앞에서 선명하게 자라나고 있다.
수고로움을 자처하는 일임에도 식물을 키우겠다고 결심하는 데에는 그리 거창한 이유가 있지 않다. 그저 잘 살아내고 싶은 마음에 일기를 쓰듯, 때마다 식물에게 물을 주고 햇살을 비춰준다. 사사로운 보살핌으로 식물이 커가는 모습을 보는 것은 삶에 작지만 확실한 위안이 된다. 켜켜이 쌓인 노력이 꽃이 된다는 건 언제 생각해도 참 낭만적이다.
방울토마토의 성장에 힘입어 파프리카와 바질도 심었다. 초보 식집사의 초조한 마음을 아는지 다행히 잘 자라주어 텃밭이 날로 풍성해지고 있다. 다시 시도했기에 누릴 수 있는 소소한 즐거움. 햇살과 물이 있다면 얼마든지 다시 시작할 수 있다. 나의 정원 이야기는 이제 막 첫걸음을 내딛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