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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휴잇 Sep 09. 2015

희미하다

    희미해진 선에서 느껴지는, 사프란 색의 향기는 나의 기억의 한 조각을 꺼내기에 충분했다. 조각조각 난 기억의 파편에서, 사람의 오감 중 하나라는 후각이 떠올리게 해 주는 매개체가 될 줄이야. 분명한 것은, 아직 그 조각들은 산산조각 나 있던 상태였고, 나는 그 기억들을 짜 맞추기에 시간을 두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조금, 이상한 부분일지는 모르겠으나 보통 사람들이라면 약재의 몸에 좋은 성분을 끝까지라도 얻어내려고 젖 먹던 힘까지 짜내려고 하지만, 나는 굳이 있으면 있는 거고 없으면 없는 거였다. 딱히 생각을 떠올리기엔, 난 그냥 지금의 상황이 너무나 바빴던 거다. 그래도, 추억이라는 것은 아련듯 떠올리는 것. 기여코 그 시간이 도래한 것이다.


    거리를 돌아다녀보면, 의외로 기모노를 입은 여성들을 흔히 만날 수 있다. 이 곳이, 일본이고, 교토이고, 정신의 수도이니. 정신의 수도 답게, 옛 것은 그대로이고, 변하는 것은 없다. 딱 한 가지 변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이 거리에 서 있는 나 하나로도 충분하다. 불과, 10대의 젊은 불씨를 가지던 작년의 그때는 벌써 20대의 횃불이 되어 점점 불타오르고 있었지만, 그때의 불씨가 계속 이어지는 것이 아닌 새로운 불빛의 시작으로써 계속 타오르는 것일 뿐. 분명한 것은, 내가 어떤 모습을 하고 있다고 한들 이 자리는 항상 제자리고 그대로이다.


    카모가와(鴨川)의 저 편에 서서, 불꽃놀이를 즐기는 연인들의 모습을 보고자 하니, 또다시 스물스물 올라오는 사프란 색의 냄새. 마치 짜기라도 한 듯 올라오는 그 향기에서, 어느 한 소녀가 조용히 앉아있었다. 내 기억에 없는 소녀지만, 분명 한 것은, 그 자태는 내가 가지고 있던 조각의 희미한 선과 일치했다는 것. 그리고 그 소녀는 나를 보고선 아무런 대가 없이 환하게 웃고 있었던  것뿐이었다.


    바보처럼 지긋이 멍하게 쳐다보다, 정신을 차리고 발걸음을 움직이려고 했을 때, 소녀는 아무런  말없이 나의 셔츠 소매를 잡았고, 나는 이상하게도 그 소녀에게서 올라오는 그 향기의 진함에 끌려, 말없이 꼭 껴안았다. 어느 새 눈물을 흘리고 있는 나. 무슨 감정인지는 모르겠으나, 분명 그 향기에서 찾아 낼 수 있는 희미한 선이 점점 선명해짐에 따라 그저 주저 앉을  수밖에 없었다. 마치 자석처럼 끌려드는 그 소녀의 품으로 빨려 들어가는 나는, 어느 새 그 소녀의 가슴팍을 잡은 채 펑펑 하염없이 울고 있었다. 넓고 푸르른 바다 비린내가 내 코를 찌르는 순간, 나는 어느새 그 소녀의 입술을 맞추고 있었고, 그 달콤한 맛을 느끼는 순간에 그 기억의 조각은 어느 한 여성의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었다. 그 여성의 모습과  오버랩되는 그 소녀의 얼굴이 깜짝 놀랄 정도로 나타나 있었을 때, 나는 그 소녀를 데리고 갈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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