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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희원 Nov 16. 2022

스피노자와 나의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

스피노자 에티카 1부 전반부를 읽고나서 (2)

1. 왜 스피노자는 에티카를 ‘신’으로 시작했을까?

최근 이중전공인 사회학과에서 ‘사회학적 상상력’이라는 단어를 배웠다. 처음에는 무슨 뚱딴지같은 단어인가 했지만, 알고보니 매우 재미있는 개념이었다. 사회학적 상상력이란, 정보가 넘쳐나는 현대사회속에서 일상생활에서 겪는 다양한 문제들을 개인의 탓으로 돌리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제도적 맥락 속에서 그 문제를 상상하는 능력이다. 요컨대 내가 현재 겪고 있는 실업 등의 문제를 나의 스펙부족, 노력부족, 능력부족으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구조적인, 정치적인 문제로 바라보는 것을 의미한다. 사회학과에서는 ‘사회학적 상상력’이 필요한 이유를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그리고 자신들 내부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선명하게 요약하고 이성을 발전시키기게 하기 위함에 있다고 바라본다.

내가 글의 시작을 ‘사회학적 상상력’이라는 단어로 시작한 이유는, 스피노자의 에티카의 흐름 또한, 이러한 사회학적 상상력과 유사한 ‘신적 상상력’을 펼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스피노자는 각종 증명을 통해 무한한 속성으로 구성된 실체인 신이 필연적으로 존재한다는 결론을 내게 된다. 저번 세미나에서도 왜 스피노자가 ‘신’이라는 개념으로 에티카를 시작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고, 과학의 한계로 인한 것이라는 이야기를 했었다. 그러나 오히려 그것보다는 사회학적 상상력과 같이 일상생활의 문제들을 ‘신’이라는 무한한 실체 속에서 생각하기 위해서, 이를통해 자신들 내부에서 어떠한 일이 일어나는지 선명하게 요약하기 위해서 ‘신’이라는 개념으로 에티카를 시작하지 않았나는 생각이 든다.


2. ‘신적상상력’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면 무엇이 다른가?

그렇다면, ‘신’이라는 우주, 자연, 만물과 같은 무한한 실체의 개념을 바탕으로 사회를 이해한다면 과연 무엇이 달라질까? 나는 에티카를 읽기 전까지 온 세상을 아우르는 하나의 무한한 실체가 존재한다고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아리스토텔레스가 각 사물의 본질은 그 안에 존재한다고 주장했듯이, 라이프니츠가 모든 개체가 곧 실체라고 주장하였듯이, 각각의 사물은 그 나름의 본질을 지니고 있고, 각각의 실체를 지니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스피노자는 각각의 사물들은 신이라는 무한한 실체의 양태에 불과하며, <정리 15>에 따르면 모든 존재하는 것은 신 안에 있으며, 신 없이는 있을 수도, 인식될 수도 없다고 주장한다. 나는 스피노자의 주장을 바탕으로 전과는 다르게 세상을 ‘신’이라는 하나의 무한한 실체를 바탕으로 인식해보고자 하였다. 그리고 확실히 전과는 다른 느낌을 얻었다. 

우선, 내가 느낀 것은 안정감이다. 그 전에 모든 사람들과 사물과 현상이 각각의 실체를 지녔다고 가정을 할 경우에 스피노자의 <정의 3>에 따르면, 실체는 자기자신 안에 있고 자기자신을 통해서만 알 수 있기 때문에, 나는 영원히 그것들을 이해할 수 없다. 이는 무척 외롭고 비참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같은 세상을 살아가지만 여전히 나를 제외한 모든 것들을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우울증에 걸릴 정도로 외로워진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스피노자식으로 세상을 바라본다면 세상 모든 것들은 ‘신’이라는 실체 속의 양태이며, <정의 5>에 따르면 양태는 다른 것 안에 있으면서 다른 것을 통해서만 알 수 있는 것이다. 결국 스피노자식으로 세상을 해석할 경우 충분히 나는 나와 다른 것들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는 생각이 들었고, 훨씬 안정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두 번째로, 평등함을 느꼈다. 만약 모든 사물들이 각각의 실체를 가지고 있다면 서로는 그 실체를 영영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각각의 실체의 중요도 등에 따라 차등적인 관계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스피노자와 같이 신을 중심으로 모든 사물들을 양태로써 이해한다면 모두가 평등해진다는 느낌을 받았다.

3. 그래서 나는 어떻게 세상을 바라볼 것인가?


그래서, 스피노자의 에티카를 바탕으로 나는 세상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아까 말했듯이 나는 세상을 바라볼 때, 모든 것을 통용하는 스피노자의 ‘신’과 같은 세계관은 없다고 여겨왔다. 그러나 스스로 생각해보면서 세상을 바라볼 때 스피노자의 ‘신’과 같은 온 우주를 매개하는 절대적인 원리 및 실체가 있다고 여기는 것도 나쁜 점만 있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히려 그러한 절대적인 실체가 있기를 바란다는 생각이 들었고, 앞으로 나는 세상을 이해할 때, 그러한 신을 상정하고 이해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이러한 개념이 전체주의, 극단적인 종교에 대한 집착으로 이어지면 그것은 잘못된 것이지만, ‘최소한의 다른 사람들과의 공유할 수 있는 연결고리가 현대사회에 들어서면서 더더욱 당위적으로 필요하지 않는가’라는 생각이 든다. 왜냐하면 현대사회의 많은 문제들, 예컨대 자살, 우울증 등의 문제들은 타인과의 관계의 단절로부터 이루어지고, 타인과의 관계의 단절은 타인과 나의 공통분모는 없다는 개인주의적 사고방식에 입각한 인식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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