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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eebird May 03. 2023

살아나라, 無名樹-초보 가드너의 실수

(부암동 이주기)

마당을 오갈 때마다 신경이 쓰이는 나무가 하나 있다. 꽃 피운 적이 없고 잎만 무성히 나 있어 사실 무슨 나무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마음이 불편한 이유는 며칠 전 이 나무를 옮겨 심은 뒤 앓고 있어서다.

그냥 둬도 될 나무를 억지로 뽑았다. 이것만 없으면 눈에 걸리적거리는 것 없이 꽃을 더 심을 수 있겠다 욕심에 삽을 들었다. 그런데 큰 문제 없이 쑥쑥 뽑히던 바로 옆 철쭉 두 그루와 달리 이놈은 뿌리도 길게 뻗었고 일부는 바위틈에 끼어서 꿈쩍을 안 했다. 좌우로 잡아당기고 나중엔 누가 이기나 해보자 심정으로 돌틈으로 파고든 잔뿌리를 삽으로 쳐내가며 끝내 뽑아냈다. 고작 5미터 옆 귀퉁이에 옮겨심고는 까맣게 잊었다.

그런데 사흘째인가, 출근길에 문득 이 나무가 눈에 들어왔다. 잎들이 시름시름, 끓는 물에 데친 시금치처럼 축 늘어져 있었다. 그제서야 내가 괜한 짓을 했다 싶었다. 내 눈앞 깨끗해지라고 너한테 못할 짓을 했구나. 이름도 모르고 멋있지도 않은 나무, 그 땅이 그 땅인데 알아서 자라겠지 했다. 생각해보니 이미 죽어있는 나무들을 정리할 땐 삽도 필요 없이 손으로 당기면 후두둑후두둑 힘없이 뽑혀나왔다. 이놈이 그리도 뽑히지 않던 건 살아있어서, 그래서 땅을 움켜쥐고 발버둥쳤던 게 아니었나 싶다. 그걸 삽으로 치고 양손에 쥐고 흔들어댔으니..
   
사실 눈길이 한 번 더 가는 꽃과 나무가 있고 반대로 영 거슬리는 놈들도 있다. 회양목이 그렇다. 전주인이 여기저기 심어놨는데 이 나무를 싫어한다. 어릴 적 아파트 화단에 주르륵 있던 나무. 꽃을 피우는 것도, 열매를 맺는 것도 아니고, 마치 쌍팔년대 뽀글이 파마 같은 촌스러운 외양까지. 저걸 왜 저리 많이 심어놨을까, 누렇게 말라가는 회양목을 며칠 동안 끙끙대며 뽑아냈다. 질긴 줄기를 붙잡고 씨름하며 구시렁대는 나를 보며 옆지기가 웃으며 한마디 했다. “뭘 그렇게 면전에 대고 싫다고 밉다고 그래.. 쟤들도 다 들어.” 뜨끔했다. 내 마음에 안 들 뿐, 열심히 살고 있던 애들인데.

이 세상에 존재하는 건 무엇이든 자연스럽다. 나도 마당 가꾸기를 시작한 만큼 멋지고 예쁜 것만 따지지 말고 식물을 사랑하는 법부터 배워야겠다. 오늘 출근길에 다시 본 이름 모를 그 나무는 아주 조금 생기를 찾은 듯하다. 빨리 회복해주길 빈다. 두고두고 마음의 빚을 갚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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