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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eebird Oct 01. 2021

이젠 부암동 주민

(부암동 이주기)


콕 집어 말하긴 어렵지만 세상엔 애초부터, 또 결국 그렇게 되도록 되어 있는, 그런 뭔가가 있는 것 같다. 말장난 같지만 그냥 그렇다. 내겐 부암동이 그랬다.  


1999년, 2000년쯤이 아니었나 싶다. 계절은 봄이었던 것 같고, 취재 나갔다가 우연히 이 동네에 툭 놓여졌다. 지금 보니 주민센터 부근이었다. 느낌이 좋았다. 나른하니 봄볕도 부셨지만, 동네 자체가 따뜻했다. 시골 버스 정류장 같기도 하고, 곳곳에 조각조각 텃밭도 보였다. 청와대에 경찰청, 정부청사가 빽빽이 모여 와글와글한 광화문에서 불과 차로 5분 거리인데 이렇게 풍경이 바뀔 수 있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나오는 토끼굴처럼, 자하문터널이 새로운 세계로 안내하는 출입문 같았다. 부암동의 첫인상은 그랬다. 그 때는 여기에 살 거란 생각은 안 했다. 동네 예쁘다고 해서 곧바로 부동산, 투자 이런 단어로 연결되는 공식은 아예 머릿속에 없었던 20대 시절이었다.


20년이 지난 2020년 2월. 타운하우스 분양설명회가 열린다는 광고문을 인터넷에서 우연히 접했다. 머릿속 어딘가에서 먼지 뒤집어쓰고 있던 ‘부암동’이라는 세 글자가 튀어나왔다. 아내와 함께 부암동을 다시 찾았고, 그때부터 ‘내 집 찾기’ 긴 여행이 시작됐다. 부암동에서 시작해 주변 동네로 범위를 넓혔다. 아내는 평창동은 싫다고 했다. 우리 형편에 과하기도 했지만, 왠지 위압감이 있었다. 드라마, 영화에 나오는 동네. 높은 담이 버거웠다. 나도 같은 생각이었다. 구기동은 풍경 면에선 압도적이었다. 북한산에서 뿜어 나오는 공기도 좋고 참으로 멋있는 곳이었다. 그런데 매일 출근하는 사람 입장에선 너무 외지다는 느낌이었다. 이번엔 아내가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번엔 성북동. 멀어서 애초엔 관심 없었는데 막상 가보니 의외로 아주 마음에 들었던 동네. 역시 뼈대 있는 동네는 다르구나 했다. 다만 우리와는 아무래도 동선이 안 맞았다. 막판까지 미련이 남았던 동네는 연희동. 지금 사는 곳 옆 동네라 눈 감고도 돌아다닐만큼 익숙하다. 평지이고 상권 등 인프라도 가장 좋다. 그래서 너무 비싸다. 괜찮은 집을 찾긴 했는데 집값에 리모델링 비용 합치면 가진 돈을 싹 다 쏟아붓고는 집을 머리에 이고 살아야 할 견적이었다. 그렇게까지 해야 할까 싶었다.


그러던 중 전문가를 소개받았고, 결과적으로 그분은 나에게 귀인이 되었다. 몇몇 집을 소개받았는데, 그 중에 부암동 집이 있었고, 그분은 그 집을 꼭 집어 추천했다. 입지나, 우리 조건이나 여러 가지 요소를 종합했을 때 이 집이 가장 좋은 것 같다고 했다. 돌고 돌아 다시 부암동. 그분에게 말은 안 했지만 이쯤 되면 내가 죽기 전에 한 번은 이 동네에 와서 살게 될 운명인가 보다 속으로 생각했다. 오늘, 2021년 9월 30일, 잔금을 치르고 소유권 이전 신청을 접수하면서 우리는 서울 종로구 부암동 주민이 되었다.


소심한 내 인생에서 처음으로 ‘내지른’ 결정. 자석처럼, 운명처럼 뭔가 끌리는 게 있었기 때문에 그 결행도 가능하지 않았을까 싶다. 이젠 살면서 증명하는 일만 남았다. 여기도 서울이다보니 20년 전과는 많이 달라졌지만 내가 좋아했던 그 느낌, 그 분위기는 여전하다. 좋아진 것도 있고 사라져서 아쉬운 것도 있다. 세상만사 그렇다. 100% 내 뜻대로 되는 건 없으니까. 그냥 천천히, 내 인생 걸음걸이 속도와 발맞춰 변했으면 좋겠고, 나와 아내가 소리없이, 보기좋게 그 풍경에 녹아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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