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러운 고백이지만, '맘모스'와 '매머드'가 같은 거란 사실을 3년 전에야 알았다. 어느날 커피숍에서 음료를 기다리며 mammoth coffee라고 적힌 간판을 물끄러미 보다가 무릎을 친 것. 혹시 매머드가 맘모스인가?? 맞구나!!! 난 40년 넘게 맘모스는 맘모스고 매머드는 매머드인줄 알았는데... 알파벳으로 된 원어 표기를 보고서야 알게 된 것.
이 착각(정확히는 무식)을 굳이 변명하자면, 어릴적 맘모스라는 말은 대부분 좋은 단어에 붙었다. 맘모스빵(이 달콤한 빵에 왜 이런 이름이 붙었는지는 아직도 모르겠다), 맘모스수영장, 맘모스백화점... 기억 속 백화점 로고도 마치 둘리같이 생긴 하늘색 아기코끼리였다. 상아가 무시무시하게 뻗어있는 매머드 이미지와는 정반대였다. 발음부터 귀엽지 않은가. 윤석열 선대위를 매머드급이라고 하지 맘모스급이라고는 안 하지 않나.
일본식 발음이었던 맘모스를 매머드로 쓰게 된 게 언제부터였는지는 모르겠다. 외래어, 외국어 발음을 현지, 원어 발음에 가깝게 하면서 나같은 지각생이 생긴 것.
그 원어가 영어가 아닐 경우는 더 복잡해진다. 알레르기, 알러지 한동안 뭐가 맞냐를 놓고 격렬했던 걸로 안다. 둘 다 엄연히 있는 발음(독일어-영어)이니까. 영어만 좇는 한국 사회의 분위기 때문에 왠지 알러지라고 해야 유식한 사람 대접을 받는 분위기도 있었던 것 같다. (물론 반대의 생각을 가진 사람들은 '꼴값 떤다'고 내심 조롱하기도 했지만)
한자를 쓰는 중국어의 경우는 더하다. 오랜 기간 우리 한자 독음으로 사용해왔던 지명, 인명은 뇌리에 박혀있는데 요즘은 또 원칙이 그게 아니기 때문이다. 덩샤오핑보다는 등소평이 익숙한데 시진핑을 습근평이라고 하면 알아들을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조선중앙TV를 즐겨보는 사람이 아니라면.) 흑룡강성이라고 말하면 어른들은 대부분 어디 있는지까지도 잘 안다. "맞아, 우리 손주 봐주는 그 이가 흑룡강성 사람이야. 연변 윗쪽에 있잖아." 그런데 헤이롱장이라고 하는 순간 대번에 "그건 또 어디여?"라는 반응이 돌아올 것이다. 중경과 충칭, 성도와 청뚜, 심양과 선양 다 마찬가지.
일관성이 없는 경우도 있다. 타이완은 대만이라 하지만 타이베이를 대북이라고 부르지는 않는다. 이준석 말마따나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할 지.
원어 발음에 가깝게 옮기는 큰 방향은 사실 맞다고 본다. 미국인이 우리 발음이 어렵다며 내 이름을 대충 뭉개서 제멋대로 부르는게 불쾌한 것처럼 우리도 마찬가지여야 한다. 그러나 위의 경우들처럼 헷갈리는 일이 많은 것도 현실이니 참 어렵다. 더구나 말과 글을 업으로 사는 나한테는. 뉴스 시간 코앞에 두고 1분1초 바빠죽겠는데 알레르기가 맞냐 알러지가 맞냐, 야 그럼 이데올로기도 이디알러쥐라고 쓰냐.. 머리에 쥐가 난다.
한글이 표음문자이기 때문에 이런 어려움이 더 한 것 같다. 중국어는 표의문자다 보니 외래어를 비슷한 발음의 한자로 바꾸면서도 뜻도 유추할 수 있도록 하는 경우가 꽤 있어 흥미로운 적이 많다. 가장 잘 옮긴 외래어중 하나가 대만에서 쓰는 '탈구수'라는 말. '토크쇼'를 음역한 것인데 脫口秀라고 쓰고 '투어커우시우'라고 읽는다. 발음도 비슷하게 따왔지만 '입을 턴다, 벗는다, 허심탄회하게 털어놓는다'는 토크쇼의 뜻까지도 기발하게 잘 보여주는 단어다.
결론도 내지 못할 이야기를 주절주절 쓰다보니 국립국어연구원에 계신 분들도 참 어렵겠다 싶다.
이 와중에 네이버에 맘모스라는 단어를 쳐보니 곧바로 '맘모스 매머드'가 자동완성된다. 나처럼 헷갈린 사람이 또 있나보다. 위안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