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부에 스며든 내 추억들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쯤, 타투를 처음 알았다. 중학교 2~3학년 때였던 것 같다. 학교에 불법으로 타투를 하고 온 소위 ‘노는’ 학생을 통해 타투를 접했다. 그래서 그냥 ‘나쁜 짓’이라고 치부하며 넘겼던 것 같다.
그러다 고등학교에 입학하기 전 겨울방학 때 동남아시아의 한 여행지에서 외국인들이 헤나를 아무렇지 않게 하는 것을 보고 경험 삼아 나도 헤나를 했었다. 정말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는 게 확실하냐고 계속 물으면서. 나비였나? 별생각 없이 골랐던 기억이 있다.
헤나 한 부분을 계속 보게 되면서 괜히 신경 쓰이면서도 신기해서 사진도 찍고, 만지기도 하며 헤나가 점점 지워지는 게 아쉬워질 무렵, 어느 외국인이 ‘하쿠나마타타’란 문구의 타투를 새긴 것을 봤다. 잘 될 거란 응원의 의미가 담긴 문구라 했다. 참… 우리나라랑 다르게 쓰이는구나 싶었다. 우리나라에서는, 타투를 떠올릴 때면 부정적인 이미지가 많았고(조폭, 일진 등), 나이가 많으신 분들은 타투를 한 젊은이를 보면 혀를 찼기 때문이다.
10년 전에만 해도 타투는, 지금 인기의 절반도 안 됐다. 길거리에 타투하는 곳도 많지 않았고. 아마 내가 고등학교 올라가서야 점점 헤나로 시작해서 타투까지 붐이 일었었는데, 연예인의 영향이 컸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별, 장미, 하트 등등 딱히 의미가 있진 않은 타투를 했고 문구를 넣어도 ‘있어 보이는’ 허세의 문구들을 새겼다. 물론 아닌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이 그랬다는 거다.
내가 ‘소중한 사람을 새겨서 긴장되거나 슬플 때마다 타투를 보며 위로받는 것도 괜찮겠다!’라고 생각할 무렵, 타투는 유행에서 개성으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그때도 미성년자였던 난, 성인이 되면 누구부터 어떻게 새길지 고민하는 재미로 남들이 한 타투를 눈여겨보고 있던 참에 우연히 안젤리나 졸리의 타투를 보게 됐다.
그녀는 어머니의 이니셜, (전) 남편의 이름, 입양한 아들의 이름 등 자신에게 있어 소중한 사람들을 새겼다. 물론, 이혼하면서 전남편의 이름은 지우긴 했지만. 대체로 내가 하려는 타투의 목적과 거의 일치했다. 그리고 나도 그녀가 지운 전남편의 이름을 보고, ‘있는 그대로를 적진 말아야겠다.’라고 생각해서 어떻게 우회적으로 나만 알아볼 수 있는 것으로 새길지 고민하곤 했다. 꽤 재밌었다. 단순하게는 이니셜부터 복잡하게는 내가 문양을 만들기도 했으니까.
그렇게 해서 탄생한 지금의 내 타투! 20살이 되자마자 약 1년에 하나씩, 4개를 새겼다. 20살, 21살, 22살, 24살. 24살 이후로 2년간 타투를 하지 않았다. 계획만 있다. 어머니에 대한 것을 새길 예정. 이것에 대한 이유는 밑에 글을 읽고 나면 설명될 것이다.
지금은 잉크가 많이 빠져서 다시 리터치를 해야 한다. 이게 제일 처음으로 했던 타투인데, 손가락 마디 옆에다 했다. 남들 눈엔 최대한 안 띄면서 나는 볼 수 있는 곳에 새기고 싶어서 고민하다 고른 곳이었다. 손가락이 제일 아픈 부위 중 하나며, 관리가 어려워 쉽게 지워질 거라고 타투이스트가 다른 부위를 추천해 줬지만 난 확고했다. 저 문구의 의미는 ‘내 첫사랑+첫째 고양이’이다.
첫째 고양이 이름은 ‘강이’. 이 이름의 ‘ㅇㅇ’ 두 개를 뫼비우스 띠로 연결해 ‘오래 살았으면’ 이란 내 소망을 넣었다. 그리고 첫사랑은 내 인생에서 많이 소중한 사람이자 추억이기에, 많은 고민 끝에 새겼다. 첫사랑과 헤어진지 약 7년 정도 흐른 지금도, 그를 새긴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 그를 그리워하는 게 아니라 그와 만났던 ‘그 때’를 그리워하고, 위안을 받는 거니까.
다음은 내 세 번째 타투. (두 번째 타투는 지우는 중이어서 생략) 둘째 고양이 ‘뚜’의 이름이다. ‘ㄷㄷ’이 연속인 ‘ㄸ’. 이 중 두 번째의 ㄷ을 좌우 반전하면 ‘⊏⊐’ 모양이 된다. 난, 이걸 곡선으로 만들었고, 그 결과 이것도 뫼비우스 띠가 됐다. 첫째와 같이 ‘오래 살았으면’하는 뜻을 품고 있다. 그리고 만들고 보니, 분수 같아서 둘째란 의미로 ‘2’를 ‘제곱’처럼 새겼다. 이렇게 탄생한 세 번째 타투 문양이다. 엄지손가락에 새겼는데 사람들이 관심 있게 보지 않는 한, 생각보다 잘 못 알아본다.
네 번째 타투는 약지 손가락 지문에 새겼다. ‘s 申의 뜻은 두 번째로 내게 소중한 기억을 갖게 해준 사람에 대한 것이다. 그는 원숭이띠다. 그래서 영어의 '소유' 의미가 있는 어퍼스트로피(’)+s를 원숭이띠인 신시 앞에 붙여서 ‘(나의) 그 사람’이란 뜻을 만들었다. 사랑받는 게 뭔지, 소중히 여겨주고 배려해주는 게 뭔지 알려준 사람이다. 이것 또한 2년 반이 지난 지금도 후회하지 않는다.
지우고 있는 두 번째 타투는 너무 눈에 띄어서 지우고 있다. “낙서했어요?”란 질문을 많이 받게 했던 타투다. 손등 쪽에 해서 상대적으로 다른 부위에 비해 눈에 띄길래 지우고 있다. 그리고 난 지금까지 한 타투 중 후회됐던 건 없다. 그만큼 신중히 생각하고,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이 타투를 후회하지 않을 자신이 있는지 고민하고 확신에 찬 뒤에야 행동으로 옮기기 때문이다.
타투를 반대했던 부모님은, 아직도 아니꼽게 보신다. 그래도 난 당당히 말한다. 이 잉크들에서 큰 위로를 받고 있다고. 시험 볼 때나 면접 볼 때와 같이 긴장되는 순간에 내게 부적 같은 존재가 되고 있다고.
타투는 절대 나쁜 게 아니다. 그리고 쉽게 생각할 것 또한 아니다. 나는 사람들이 타투를 할 때 신중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평생 후회하지 않도록 그들에게 의미 있는 것이었으면 한다. 곰돌이 혹은 순간의 감정으로 당시의 애인 이름 같은 것은 새기지 않았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