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답 말고 해답

각자의 경험이 다르니까

by 최용

오늘 재미있는 영상을 하나 봤다. ‘김제동 vs 서장훈, 당신의 선택은?’ 이라는 캡션이 달린 숏츠였다.

아무 것도 안 하면 사람이 아무 쓸모없는 사람이냐며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 아름다운데 왜 자꾸 뭘 하라고 하느냐는 김제동의 이야기. 즐겨서 되는 것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다면서 절대 즐겨서 안 된다는 서장훈의 이야기.


해석해보면, 김제동은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도 충분히 아름다우니 스스로를 몰아치거나, 무엇이든 하라고 강요하는 사회나 어른으로 인해 흔들리지 말라’는 이야기를 하는 것 같다. 반면, 서장훈은 ‘즐기면서 무언가를 이루는 것은 불가능하다. 주변에서 즐기면서 하라고 하는 이야기는 듣기 좋으라고 그냥 하는 말일 뿐이다. 그러니 치열하게 살아야 한다’는 이야기를 전하고자 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들에게도 묻고 싶다. ‘김제동 vs 서장훈, 당신의 선택은?’ 내가 이렇게 묻는다고 해서 둘 중의 하나를 꼭 선택할 필요는 없다. 어떤 상황을 제시하고 그중 하나를 선택하라는 것은 이분법적 사고를 강요하는 일종의 폭력이 될 수도 있다고 본다. 그러니 답을 하실 필요는 없다.


사실 두 사람 이야기가 모두 맞다. 두 사람의 이야기는 상황과 맥락에 따라 각각 의미있게 받아들여 질 경우 모두 맞는 이야기이다.


이 두 상반된 이야기가 의미 있게 받아들여지는 상황과 맥락은 어떻게 다를까? 에너지가 있을 때와 없을 때 달라지지 않을까? 열심히 달리다 지쳐있는 나에게 필요한 이야기는 김제동의 이야기일 것이다. ‘너 충분히 잘 하고 있어. 그러니 너 자신을 너무 몰아치지는 마. 지금 그대로도 멋져.’ 이런 말이 필요한 때가 있다. 반면, 새롭게 뭔가를 시작하기 위해 에너지가 충만할 때는 ‘지금은 한 번 달려봐. 그런 경험도 해봐. 그렇게 뭔가를 성취하는 경험도 필요해. 죽을 만큼 한번 달려보는 것도 필요해’라는 말이 먹힐 가능성이 크다.


두번째 차이는 단거리를 달릴 때와 장거리를 달릴 때의 차이이지 않을까 싶다. 단거리 경주처럼 시한을 두고 무언가를 할 때에는 서장훈의 메시지가 유효할 것이다. 죽으라고 한 번 달려보는거다. 그렇지만 장거리 경주는 마냥 죽으라고 달릴 수 없다. 장거리를 계속 죽으라고 달리다 보면 정말 죽을 수도 있다. 매 순간 죽으라 달리기보다는, 한 발자국이라도 앞으로 내딛으며 나아가고 있는 자신을 믿고 격려하고 응원하며 인정하는 것 만으로도 충분할 때가 있다. 속도의 문제가 아니다. 그냥 잠시 쉬고 있어도 좋다. 그렇게 에너지를 채우고 또 한 발 내딛으면 된다.


우리의 삶은 단거리가 아니다. 장거리 레이스이다. 대개의 경우 정해진 골인 지점도 없다. 이 장기 레이스에서 매 순간 열정을 소비하며 꾸준히 최선을 다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누구나 서장훈처럼 살 수 없다. 고백하자면, 한때 서장훈과 같은 Top tier의 삶을 동경했던 적도 있다. 그런데 나는 그렇게 살 수 없었다. 어느 분야에서 Top이 된 사람이 유지한 열정의 크기와 그 과정에서 견뎌야 할 삶의 무게를 나는 채울 수도, 견딜 수 없을 것 같았다. 물론, 특출난 재능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존재로서의 내가 아닌 본질로서의 나를 증명하는 것은 보통의 일이 아님을 알기에 엄두가 나지 않았다. 나의 재능에 더해진 세상의 요구를 증명하고 입증하는 것, 그것이 본질로서의 나를 증명하는 일일 텐데, 어우 난 못하겠더라.


그렇다고 아무것도 안하고 살지는 않았다. 꾸준히 매일 한 걸음씩 내딛으면서 나의 속도에 맞춰 사는 방식이 나에게 맞는 방식임을 알고 그렇게 살았다. 그렇게 걷다 보니 내가 가고자 했던 길을 가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되더라.


김제동의 방식이 맞을까? 아니면 서장훈의 방식이 맞을까? 둘 다 아니다. 내 방식이 맞는거다. 각자의 경험을 정답이라고 우기면 안된다. 그건 그냥 그가 경험한 세상에서 찾은 답일 뿐이다. 세상에 정답은 없다. 각자가 가진 해답만 있을 뿐.


누군가의 경험에 기대어 정답을 찾느라 애쓰기보다는 그냥 오늘 한 걸음 내딛으면서 나만의 해답을 찾아보자.

그렇게 나를 응원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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