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할로서의 나 말고 존재로서의 나

그렇게 나를 챙기자

by 최용

30여 년 직장인으로서의 삶을 졸업하고, 오랫동안 준비해 왔던 코치로서의 새로운 삶을 시작하면서 주변 지인들에게 널리 알리기 시작했다. 주로 외부 활동을 중심으로 일을 하다 보니 별도의 사무실을 굳이 갖추지 않았다. 만약 사무실을 오픈했더라면 개업식 같은 행사를 했겠지만 그렇지 않다 보니 온라인으로 시작을 알리기만 했다. 나의 소식을 접한 많은 분이 격려와 응원을 해 주었다. 관심 가져 주고 전해 주시는 ‘화이팅’이라는 말 한마디 한마디가 큰 힘이 되었다. 참으로 감사하다.


많은 격려와 응원 중에서도 한 선배의 응원이 내게 깊이 남았다.


지금은 각자 다른 곳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지만, 한 회사에서 같은 업무를 하며 만난 인연이 만들어 준 회사 동문회 같은 성격의 모임이 있다. 이 모임의 카카오 단체 대화방에도 나의 새로운 시작 인사를 올렸다. 이 모임의 선배였다. 이 선배의 응원이 내게 깊이 남았다. 이 선배는 노무사다. 그래서 내가 필요할 때 종종 연락해 자문을 구하곤 했었다. 하지만 형이 먼저 전화를 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대표적인 츤데레 스타일이고, 평소 살가운 말투로 이야기를 나누던 형이 아니었기에 전화 자체가 뜻밖이었다. 형은 담담한 목소리로 내게 축하의 말을 전했고, 잘 해낼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하며 나를 응원했다. 그리고 마지막에 한마디 덧붙였다.


“너가 가진 그 재능을 세상에 잘 써봐.”

선배는 이렇게 말했다.


그 말이 내 마음에 꽂혔다. 전화를 끊고 나서도 한동안 휴대폰을 내려놓지 못했다. 그 한마디가 울림이 되어 머리와 가슴을 오갔다. 괜스레 눈시울이 뜨거워지기도 했다. 대체 왜 이렇게 울컥할까? 가만히 마음을 들여다보니 ‘재능’이라는 단어가 내 깊숙한 감정을 건드린 것 같았다.


우리는 대부분 주어진 역할에 맞춰 살아간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보다 내가 무엇을 잘할 수 있는지가 살아가면서 더 중요해진다. 회사에서 맡은 역할, 가정에서의 역할, 사회에서의 역할. 그 모든 역할을 잘해 내기 위해 스스로를 단련하고, 부족하면 더 배워서라도 채워 넣는다.
나 역시 그랬다. 타고난 ‘재능’을 꺼내 쓰기보다는, 세상이 필요로 하는 능력을 갖추는 데 익숙해졌다. 그렇게 조직의 기대에 부응하며 괜찮은 사람이 되고자 애썼다. 잘해 왔다. 하지만 오랜 시간 그 삶을 살다 보니, 나라는 사람이 원래 무엇을 좋아하고 어떤 재능이 있었는지 잊고 있었다.


이런 기억이 난다. 두 발 자전거를 가르쳐 주던 아버지가 자전거에서 손을 놓고 한참을 같이 뛰어주다가 나의 운동신경이 남다르다며 기뻐한 기억. 서툰 발음으로 ‘엄마!’ 라고 불렸을 뿐인데 내 아이를 언어 천재라고 칭찬하던 기억. 어린 시절에는 아주 작은 일에도 재능을 인정받았고, 내 아이의 모습 하나 하나도 어린 시절에는 모두 칭찬꺼리였다. 존재만으로도 충분히 사랑받고 사랑했었다. 뭘 잘하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저 존재와 가능성이 가족과 주변 사람들의 자랑이었다.


하지만 어른이 되면서 우리는 그런 인정과 칭찬을 점점 잊게 된 듯 하다. 더 큰 목표를 향해 달리며 ‘타고난 것’보다는 ‘갖춰야 할 것’에 집중하게 되었다. 언젠가부터는 내가 가진 고유한 재능을 펼치기보다는, 주어진 역할을 잘해 내는 것으로 평가받게 되었다. 그 평가가 곧 나 자신이라 믿으면서.

그러다 보니 나조차도 내 안에 재능이 있었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 아니, 어쩌면 알면서도 애써 외면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 무심한 츤데레 형이 툭하고 전해 준 단 한마디가 그걸 다시 소환해 주었다. “너가 가진 재능, 세상에 잘 써봐.” 그 말은 ‘너라는 존재는 이미 충분히 괜찮다’는 응원이기도 했다. 역할 수행의 결과로 인정받는 게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인정받는 기분. 오랜만에 그 감정을 느꼈다. 그래서 더 벅차고, 괜히 울컥했던 모양이다. 내 안에 재능이 있고, 그 재능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확신. 잊고 있던 것을 다시 꺼내니 마음 한구석이 뜨거워졌던 것이다.


앞으로 이 길에서 내 재능이 어떻게 쓰일지 나는 잘 모른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내가 가진 것을 나답게 쓰는 일이야말로 가장 큰 힘이라는 걸. 역할이나 성과가 아니라 존재 그 자체로도 충분히 응원받을 수 있다는 걸.


내가 받았던 존재론적 인정을 독자들께도 전하고 싶다. 각자의 재능을 잊지 않기를 바란다. 누구나 자신만의 보석 같은 재능을 품고 있다. 다만 못 찾았을 뿐이고, 때로는 스스로 챙기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 묻고 싶다. ‘당신 안에 어떤 재능이 있었는가?’ 어린 시절 누군가에게 칭찬받던 모습, 내가 즐겁게 몰두했던 순간을 떠올려 보면 좋겠다. 그렇게 그 재능이 지금 내 삶 어디에 숨겨져 있을지 살펴보면 좋겠다. 그리고 당신 자신의 역할을 걱정하기보다는, 존재 자체를 응원하는 마음을 갖기를 바란다고 이야기하고 싶다. 역할에 맞춰진 나 말고, 존재하는 나를, 잊고 있었던 재능을 찾아서 응원해 주길 바란다.


역할로서의 나 말고, 존재로서의 나를 오늘도 그렇게 챙겨 보자.

내가 가진 재능을 세상에 잘 쓰이게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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