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 말고 졸업

Single stage가 아닌 Multi stage를 살아야 하는 나에게

by 최용


이나가키 에미코의 책 '퇴사하겠습니다'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회사란 무엇이었는지를 생각해 봅니다. 회사를 그만두길 정말 잘했어. 아주 잘했어! 싶으면서도 한편으론 만약 회사에 취직하지 않았더라면 나는 지금쯤 어떻게 되었을까를 생각해 봅니다. 회사란, 제게 더 없이 좋은 '인생의 학교'였습니다. 우선 일하는 방법을 가르쳐 준 소중한 존재였습니다. 동료와 선배, 그리고 취재 상대에게서도 많은 걸 배웠습니다. 한가지 일에 대해, 내 경우에는 글쓰기에 대해, 그럭저럭 프로 로서 일할 수 있게 된 건 틀림없이 회사 덕분입니다. 그리고 그 뿐만이 아닙니다. 돈과 어떻게 관계를 맺을 것인가, 성격에 맞지 않는 동료와 상사와 어떻게 맞춰갈 것인가, 열심히 노력해도 결과가 따르지 않아 자신감을 잃었을 때에는 어떻게 할 것인가, 불합리한 인사이동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납득할 수 없는 명령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등등 많은 걸 배웠습니다. 마치 영화의 성장 스토리 같습니다. 회사에 취직하면 그것만으로도 누구나 영화의 주인공 같은 체험을 할 수 있습니다. 역시 회사란 멋진 곳이지요? 그렇습니다. 회사는 나를 만들어가는 곳이지, 내가 의존해가는 곳이 아닙니다. 그걸 알게 되면 회사만큼 멋진 곳도 없습니다. 그리고 수행이 끝났을 때, 당신은 언제고 회사를 그만둘 수 있습니다. 다만, 언젠가 회사를 졸업할 수 있는 자기를 만들 것, 그것만큼은 정말 중요한게 아닐까요?"


51세의 나이에 퇴사를 꿈꾸던 작가는 목표했던 나이에 꿈을 완성한다.

나는 이나가키 에미코 보다는 조금 늦은 쉰넷의 나이에 회사를 졸업 했다. 첫 직장이었던 삼성에서 네이버로의 이직은 마치 전학과 같았고, 마지막 회사를 끝으로 회사생활은 끝내는 것이니 퇴직은 졸업이 맞는 것 같다. 한 매듭짓고 새로운 시작을 하는 과정이니 졸업이라는 말이 참 맞는 것 같다. 그리고 새로운 입학이 이어졌기에 분명 졸업이 맞다.

예전 선배들의 삶의 패턴은 비교적 단순했다. 25년 정도는 공부하고, 35년쯤 일하고, 그 뒤로는 15년가량 쉬며 인생을 마무리했다. 선배 세대에게 노동은 35년으로 끝났기에 ‘퇴사’라는 말이 딱 맞았다. 하지만 우리 또래 세대부터는 조금 다르다. 우리를 포함한 이후 세대는 단일 경력 단계(single stage)가 아니라 여러 단계를 거치는 다단계 인생 여정(multi stage)을 살아야 한다. 우선 35년을 온전히 버틸 수 있는 일터가 많지 않다. 그리고 15년만 쉬면 되었던 선배들보다 우리에게 남은 시간은 훨씬 길다. 운이 나쁘면 130살까지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고 하지 않는가. 장수시대라는 불확실성 속에서 지속가능한 삶을 위해서는, 그리고 multi stage 인생에서 유연한 전환을 위해서는 ‘퇴사’보다는 ‘졸업’이라는 관점이 필요하다. 그리고 졸업 이후에는 새로운 ‘입학’이 이어져야 한다. 그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학습이다. 공부소리가 지겨웠던 우리들에게 다소 불편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지금은 끊임없는 학습이 필수인 시대다.

내가 지금 그렇다. 2023년에 졸업하고 약 2년간 학습모드이다. 이렇게 졸업하고 다시 공부하고 새롭게 입학해야 삶이 지속가능해진다. 그렇게 우리에게는 학습하는 시간이 중요해졌다. 커리어 코칭을 할 때, 이제 막 커리어를 만들어 가는 젊은 친구들에게도 끊임없는 학습의 필요성을 느끼게 하려고 애쓰는 편이다. 장수시대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불확실성의 시대, 급변하는 시대이기 때문이기도 해서 끊임없는 학습은 더더욱 중요하다. 아니, 필수조건이다.

그래서 나는 다시 학업을 시작했다. 대학원에서 심리학 박사과정중에 있다. 산업 및 조직심리학과 코칭심리학을 공부하고 있다. 이왕이면 새롭게 시작하는 공부가 내가 늘 궁금했던 것을 찾는 과정이길 바랐다. 그리고 학습과정 이후에 내가 해보고 싶었던 일과 연관된 공부를 하고 싶었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공부는 직장생활 동안 품어왔던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한 여정이다. '조금이라도 더 행복한 직장생활을 위해 나는 무엇을 할 수 있나?' 이 문장에서의 '나'가 한 회사의 대표이사로서의 '나'가 아닌 코치로서의 '나'로 바뀌었을 뿐 질문은 같다.


물론 이런 전환이 쉽지만은 않다. 안정적인 월급과 명확한 조직 내 역할, 그리고 예측 가능한 일상이 그리워질 때도 있다. 지금의 내 모습이 한없이 불안하게 느껴질 때도 있다. 하지만 학습하는 과정에서 흥미로운 점을 발견하는 즐거움도 크다. 예전에는 보지 못했던 연결고리들을 보는 즐거움이 크다. 산업 및 조직심리학과 코칭 이론이 만나고, 과거의 경영 경험과 현재의 심리학 지식이 융합되면서 새로운 인사이트가 생겨난다. 이것이 바로 multi stage 인생의 매력이 아닐까 싶다. 서로 다른 단계에서 쌓은 경험과 지식이 예상치 못한 시너지를 만들어내는 것 말이다.

그렇게 나는 퇴사가 아닌 졸업을 선택했고, 이제 막 새로운 입학을 한다. 완벽할 수 없는 세상이지만 조금이라도 더 나은 삶을 위해 나와 우리의 하루에 힘을 조금 보태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한 일터에서의 새로운 시작을 한다. 설렘과 두려움이 교차하지만, 그 역시 새로운 성장을 알리는 신호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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