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에는 달 창문이 하나 있다. 층고 높은 거실 끝자락에서 달빛을 비쳐주기도 하고 거실에 누워 달을 볼 수 있어 달 창문이다. 이 달창문으로는 달빛만 들어오는 것은 아니다. 햇볕이 더 자주 들어온다.
볕이 좋은 어느 날, 달창문으로 스며든 햇볕이 마침 달항아리 화병에 담긴 꽃을 비추고 있다. 핸드폰을 꺼내어 그 장면을 살포시 담아보았다. 집사람이 좋아해서 자주 만드는 달항아리 화병 위로 이쁘게 담긴 빛을 나는 내 폰에 담았다. 그렇게 사진을 담고 우연히 다시 그 곳을 보니 또 다른 빛이 화병을 비추고 있다. 15분 사이에 빛이 바뀌어 있다. 15분 사이에 그렇게 풍경이 바뀌어 있다.
이 날의 이 장면은 이 사진에 담긴 풍경보다 더 따뜻하고 선명하게 내 마음에 담겨있다. 행복한 장면으로 담겨있다. 무슨 날이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사진정보를 보니 2월 23일 일요일이란다. 겨울의 끝자락에서 봄을 맞이하는 햇볕이어서 그렇게 더 따숩게 느껴졌나보다.
나이가 들면 안 보이던 풍경이 보인다고 하던데, 안보이다 보이는건 풍경만이 아니다. 2월 23일에 달창문을 통해 들어온 15분 간격의 빛과 그 빛이 만든 풍경처럼, 잘 보이지 않던 소소한 것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소소한 것들이 전해주는 행복이 보이기 시작한다.
우리는 매일 뉴스와 SNS 속에서 특별한 것을 자주 접한다. 화려한 여행, 놀라운 성취, 때로는 충격적인 사건들이 끝없이 쏟아진다. 그러다 보니 평범한 일상은 금세 시시하고 무미건조한 것으로 여겨진다. 그래서인지 평범한 일상은 너무 평범해서 잘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정작 우리의 삶을 채우는 건 드라마틱한 장면이 아니라, 특별하지 않은 아주 평범한 일상이지 않나. 매일 눈 뜨는 침대, 일주일 째 사용하는 칫솔, 익숙한 하늘, 어제도 만난 아내, 매끼 식사, 그런 평범한 것들이 하루를 채우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그것들을 잘 못 본다. 특별한 사건이라 말하는 쎈 것들에 밀려서 평범한 일상의 소소함을 보지 못하는 날들이 많다. 그런데 나이드니 그것들이 조금 보인다. 그리고 그것들이 주는 행복이 만져진다.
행복심리학은 이 점을 오래 전부터 말해왔다. 하버드대의 장기 연구는 사람들의 행복이 몇 번의 큰 사건에서 비롯되지 않는다고 했다. 오히려 매일의 관계, 소소한 즐거움, 순간의 따뜻함이 삶을 더 단단하게 지탱해준다고 말한다. 심리학자 소냐 류보머스키(Sonja Lyubomirsky)는 “작은 긍정적 순간을 자주 음미하는 것”이 행복의 중요한 비결이라고 했다. 그 말처럼, 우리가 대단치 않다고 흘려보내던 순간을 붙잡아 곱씹을 때, 삶은 훨씬 더 선명하고 충만하게 느껴진다.
생각해보면 행복은 어떤 특별한 사건의 총합이 아니다. 오히려 매일의 소소한 순간들이 조용히 겹겹이 쌓여 만들어지는 모자이크 같다. 동네에서 잘 들리지 않던 아이의 웃음소리에 나도 따라 웃는 순간, 빗소리를 음악삼아 마당에서 마시는 커피 한잔의 따뜻함, 길을 걷다 우연히 눈이 마주친 사람에게 미소를 건네며 갖게되는 여유로움... 이런 순간들이 모여 하루를 빛나게 하고, 그 하루가 모여 우리의 삶을 빛나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버킷리스트에 좀 색다른 것들을 담아보면 어떨까 싶다. 산티아고 순례길 걷기, 세계 일주, 오토바이로 유럽투어 같은 크고 화려한 목표들도 좋지만 매일 매일 느낄 소소한 것들을 버킷에 담으면 어떨까 싶다. '지하철에서 마주 앉은 아이와 눈 마주치고 미소지어주기', '뒷사람을 위해 문 잡아주기', '밤하늘 별 올려다보기' 같은 작고 평범한 항목들을 버킷에 넣어본다면 어떨까. 버킷에 담긴 하루가 만들어질 때 우리는 특별하지 않아도 충분히 특별한 삶을 살고 있음을 알게 되지 않을까?
물론 크고 화려한 목표를 달성하고 경험하는 것도 특별한 추억이 될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진짜 행복을 더 풍성하게 만드는 건 매일 반복되는 순간 속의 기쁨일 것이다.
멀리도 보아야겠지만 우선 가까이부터 보자. 자극적이고 특별한 사건에 익숙해지느라 놓치고 잊고 있었던 평범한 일상을 보자. 그렇게 오늘 하루를 따뜻하게 만들어보자. 그러다보면 내가 좀 더 행복해져있을거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