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내!' 말고 '괜찮아?'

그에게 맞는 방법으로 위로하기

by 최용

카톡으로 이별을 통보받은 딸아이가 열변을 토한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요?",

"이건 아니지 않아요?",

"말이 안 되잖아요."

혼자 말인 것도 같고, 엄마 아빠가 들어주고 반응해주기를 바라며 큰 소리로 말하는 듯도 하다.


이럴 땐 슬그머니 아는체 해줘야 한다.

엄마가 먼저 나섰다.

"걔 이상하네. 완전 경우 없는 아이네. 이상하다 이상해. 헤어져~"


엄마는 전문가가 아니다. 딸아이의 수다 메이트이자 누구보다 귀한 딸을 둔 엄마일 뿐 위로의 전문가는 아니다. 그러니, 자신의 감정이 더 앞선다. 엄마는 이미 화가 난거다. 어찌 내 딸에게 그 따위로 이별통보를 할 수 있어, 내 딸을 뭘로 보고.. 그런 마음일 것이다.


엄마의 이런 반응이 딸아이가 원하던 반응은 아니었다. 그래서인지 나에게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쏟아낸다.


"아빠, 엄마는 이상해. 그 친구 이상하다고 헤어지래요. 그게 이별 통보 받은 딸한테 할 이야기는 아니지 않아요? 내가 그럼 지금까지 이상한 사람을 만났다는거예요? 그 친구도 지금 무슨 사정이 있겠지. 분명 무슨 일이 있는거야. 우선 이야기를 들어봐야해요."


나도 코치이기 이전에 아빠다. 내 아이를 슬프게 하거나 아프게 하는 사람은 밉다. 하지만 내 감정은 최소화하고 딸의 이야기를 들었다.


다행히(?) 슬퍼 보이지는 않았다. 토닥토닥 해주기 보다는 그냥 딸아이의 말을 들어주기만 하면 될 것 같았다. 계속 들었다.


딸은 FJ성향이라 감정적 이해를 중시한다. 그래서 이해가 안되는 이 상황이 화가 나는 모양이다.

"우리 딸, 슬픈 감정은 아닌가봐? 아빠는 이별통보 받으면 먼저 슬플 것 같은데."

한참 이야기를 듣다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라도 슬픔으로 화로 감추는 것은 아닌지 싶어 조심스럽게 물었다.

"당황스럽고 화가 나지 슬픈 건 아녜요."


이런 딸아이에게 어떤 위로가 먹힐까? 아니다 위로라고 단정짓지 않는 것이 먼저일 것이다. 어떤 반응을 하는 것이 딸아이에게 가장 힘이 될까?

철저하게 딸의 감정을 이해하는 것이다.

"화가 나는구나? 뭐가 제일 화가날까? 그래서 어떻게 하고 싶어?"

한참을 씩씩대던 딸아이는 감정을 추스리고 만나서 이야기를 우선 들어보겠다고 한다.


딸아이의 이 일을 보면서 문득 얼마 전 본 KBO 신인드래프트 장면이 떠올랐다.


며칠 전, KBO 2026 신인드래프트가 있었다. 110명을 뽑는 드래프트에 2천 명이 넘게 지원했다고 한다.


야구를 즐겨보기는 하지만 지금까지 KBO 신인드래프트가 그리 관심있는 이벤트는 아니었다. 사실 불꽃야구 덕분에 신인드래프트를 보게 되었다.

불꽃야구 멤버들은 은퇴한 유명 선수들과 아직 프로에 가지 못한 대학생, 독립구단 선수들로 구성되어있다. 대학생과 독립구단 선수들은 불꽃야구를 통해 자신을 알리고 실력을 인정받아 프로에 콜업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은퇴한 선수들도, 그리고 무엇보다 김성근 감독도 그들을 프로리그에 보내기 위해 많은 애를 쓴다. 그 과정의 결과인 KBO 신인드래프트가 그래서 궁금해졌다. 그렇게 보게 되었다.


올해 드래프트에는 총 5명의 불꽃야구 멤버가 신청을 했다. 그 중 한 선수를 제외하고는 드래프트에서 지명받지 못했다. 지명받지 못한 멤버들의 아쉬워하는 장면과 그들이 부모님과 서로를 위로하는 장면이 불꽃야구 콘텐츠로 방영되었다.


부모가 선수를 위로하는 것이 당연해보이지만 선수가 부모를 위로하는 집도 있었다. 위로 모습도 가지각색이었다.


괜찮지? 밥 먹자! 울지마!

다시 갈거잖아. 아직 안 끝났어.

너만 괜찮으면 돼.

괜찮지? 힘내.

이제 또 시작이야. 힘내자. 파이팅 한번 하자.

고마웠어, 매일 뒷바라지 해줘서. 아직 뒷바라지 안 끝났어.

꿈만 잃지 마라.


그 어떤 위로가 이제 막 탈락 소식을 들은 아들에게 유효할까 싶지만, 그들이 나누는 위로는 그 무엇보다 서로에게 힘이 됨은 틀림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 힘이 다시 그들을 움직이게 하는 동력이 될 것이다.


그런데, 위로도 응원도 이왕이면 받는 사람에게 맞는 방식으로 하는 게 좋다. 위로하는 사람의 관점과 방식이 아니라, 위로를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맞춘 방식이 더 유효할 것이다.


위로의 방식은 다양하다. 어떤 이는 시간만 두고 지켜봐 주는 것에서 힘을 얻고, 어떤 이는 계속 호응하며 들어주는 것을 원한다. 밥이나 술을 같이 하면서 위로받기를 원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혼자 운동하며 푸는 사람이 있기도 하다. 말 한마디도 중요하다. 힘이 빠진 누군가에게 '힘내'라는 말은 오히려 짜증이 될 수 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위로하는 사람의 방식이 아니라 그들이 원하는 방식의 위로다.


돌이켜보면 엄마의 위로는 엄마 입장에서 한 말이었지만, 딸이 원한 위로는 달랐다. 위로도 받는 사람에게 맞아야 한다.


위로는 누구의 말이 옳으냐의 문제가 아니다. 위로가 필요한 사람이 원하는 방식으로 다가갈 때, 비로소 그것이 힘이 되고 응원이 된다.


그렇게 그들을 챙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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