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적에 맞는 목표의 중요
아주 가깝지는 않지만 종종 뵙고 지내는 분, 던바의 숫자(Dunbar’s Number)에 따르면 4단계쯤에 포함되는 지인 중에 헌혈왕이 계시다. 헌혈을 많이 하신 분들을 공식적으로 어떻게 표현하는지 검색해보니 정말로 헌혈왕이라고 표현하는 모양이다. 이 헌혈왕은 무려 700번을 넘게 헌혈을 하셨다고 한다. 700번을 하려면 얼마나 걸리냐고 여쭈니, 40년 넘게 꾸준히 이어오신 결과라고 하셨다. 연세도 적지 않으신 이 분은 자신의 건강관리에 엄청난 투자를 하신다. 건강관리의 목적은 오로지 깨끗한 피를 헌혈하기 위해서이다.
가까이 지내는 분 중에 건강을 열심히 관리하는 또 다른 한 분이 계신다. 큰 체구에 사람 좋게 생긴 외모로, 딱 봐도 호인으로 보이는 그분은 애주가이다. 70이 다 되어가시는 나이에도 말 술을 드시는 애주가이다. 누구와 함께 있어도 즐겁게 자리를 이끌며 술을 곁들이는 애주가이다. 그 분은 건강하게 오랫동안 즐겁게 술을 드시기 위해 몸을 관리하신다.
이 두 분을 뵈면서 그런 질문이 들었다.
어느 분의 건강관리 과정이 더 효과적일까? 어느 분이 더 즐겁게 건강관리를 하실까? 궁극적으로 어느 분이 더 건강하게 오래 사실까?
내가 아는 심리학 지식을 통해 답을 한번 찾아본다.
두 분 모두 건강관리라는 동일한 목표를 가지고 있다. 즉, 종속변수는 동일하다. 하지만 독립변수는 완전 다르다. 한 분은 이타적인 목적을 가지고 계시고, 다른 한 분은 지극히 개인적인 목적을 가지고 계신다. 즉, 한 분의 건강 목적은 ‘공동체’를 향해 있고, 다른 한 분의 목적은 ‘나’라는 개인의 즐거움을 향해 있다.
타인과 세상을 향한 이타적인 목적을 가지면 우리는 더 큰 세상과 연결된다. 헌혈왕이신 그 분은 자신의 건강관리를 통해 이름 모를 수많은 사람들과 보이지 않는 유대를 맺고 있다. 그의 건강관리는 고립된 개인의 노력이 아니라, 사회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책임을 다하는 과정이라 볼 수 있다. 이러한 연결감은 개인의 실존적 불안을 완화하고 삶에 대한 깊은 안정감과 소속감을 부여한다.
반면, 자기 자신에게 초점을 맞춘 목표는 성취의 기쁨을 줄 수는 있겠지만 때때로 고립감과 불안을 동반할 수 있을 것이다. 자신의 즐거움만을 위해 건강관리를 하시는 지인의 경우 숙취가 많이 오르거나 한 날 좌절을 느끼고, 타인과 자신을 비교하며 만족감을 쉽게 잃을 수도 있다.
연구에 따르면, 타인을 위해 돈이나 시간을 사용하는 친사회적 행동이 자신을 위해 사용할 때보다 훨씬 더 지속적이고 강한 행복감을 유발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헌혈왕이 애주가보다 더 행복감을 많이 느끼실래나?
자, 이쯤에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어느 분의 건강 관리 과정이 더 효과적인가?
‘효과’의 기준을 ‘건강 유지’라는 결과에 둔다면, 두 분 모두 만점 일 것이다. 단순히 뵙기에도 두 분 모두 건강하시다. 육체적으로도 심리적으로도 건강하시다.
두번째 질문, 어느 분이 더 즐겁게 건강관리를 하실까?
애주가의 삶은 유쾌하고 즐거운 순간들로 가득 차 있어 보인다. 그 분의 건강 관리는 그 순간들을 더욱 풍요롭게 만드는 현명한 전략이다. 반면, 헌혈왕의 삶은 즐거움 뿐만 아니라 충만함과 의미로도 채워져 있을 것이다. 그의 건강 관리는 매일 매일 자신을 단련하는 행위를 통해 타인의 생명을 구하고 있다는 깊은 자긍심과 연결되어 있을 것이다. 이는 순간의 쾌락이 줄 수 없는, 의미있는 만족감이다.
즉, 한 분의 건강관리는 쾌락적 행복(Hedonic Well-being)을 위한 것이며, 다른 한 분의 건강관리는 의미적 행복(Eudaimonic Well-being)을 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어느 분의 즐거움이 더 클까? 잘 모르겠다. 두 분만의 행복에 대한 주관적 기준이 있을테니까.
두 분 모두 행복해 보이신다. 그래서 어느 분의 목적이 더 나은 목적인지 모르겠다.
사실 내 질문 자체가 잘못된 것일 수도 있다.
각자가 가진 행복의 기준이 있을 것이고, 그에 따른 삶의 만족도가 다를테니까 서로를 비교하는 질문 자체가 잘못된 것일 수도 있다. 그 무엇이 되었든, 나 나름의 건강관리라는 목표를 달성하게 해주는 목적이 있다는 것은 참 좋은 일이라는 생각이다.
결국 중요한 건 ‘누가 더 잘 사느냐’가 아니라 ‘나는 왜 이 길을 걷고 있는가’일 것이다. 그렇게 찾은 답을 목적으로 삼고 살아가는 과정 속에서 우리는 조금 더 단단한 자세로, 조금 더 행복한 모습으로 이 하루를 만들어가지 않을까 싶다.
마지막 질문, 궁극적으로 어느 분이 더 건강하게 오래 사실까?
모르겠다. 그게 중요한 건 아니지 싶다. '왜 이 길을 걷고 있는가'가 '누가 더 잘, 누가 더 오래 건강하게 사느냐'보다 중요할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