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의 기준과 원칙을 정의하자.
한 상장기업의 리더들을 대상으로 하는 그룹코칭 세션을 엊그제 마쳤다. 12주에 걸친 긴 동행이었다.
나는 리더십 코칭 마지막 회기에 졸업의 의미로 꽃과 리더십 처방전을 함께 전달한다. 나의 선물을 받은 리더들은 흔히 “약 주고 병 준다”라는 반응을 보인다. 꽃을 보고 즐거웠던 감정이 리더십 처방전을 받고 예민해지기 때문이다.
리더십 처방전은 피드백 레터의 성격이 짙다. 그래서, 아무리 도움이 되는 정성스러운 내용이 담겨있을지라도 받는 사람의 기분을 우선은 불편하게 만든다. 이 불편감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법은 팩트 기반의 근거, 대상에 대한 애정과 신뢰, 그리고 미래지향적인 태도로 작성하는 것이다. 이 세 가지를 잘 활용하려면 무엇보다 대상에 대한 세심한 분석이 필요하다. 다행히 짧지 않은 시간 동안 깊은 라포를 쌓고 동행했기에, 코칭 대상인 리더들을 이해하는 일은 크게 어렵지 않았다. 물론, 모든 면이 아닌 리더십 측면에서의 관찰과 분석으로 한정되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코칭 과정에서 확인된 리더들의 정서와 성향, 그에 따른 행동을 정리한 뒤, 코치로서의 전문성을 기반으로 분석해서 리더십 처방전을 쓴다. 내가 관찰하고 분석한 내용이 모두 옳을 수는 없지만, 마지막 회기에서 리더 스스로 정리한 자기분석과 내 처방전의 분석이 유사하게 맞아 떨어질 때 묘한 성취감을 느끼게 된다.
마지막 회기에 리더 스스로 작성하는 자기분석 보고서는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서 시작된다. 역할이나 관계에 의해 규정된 내가 아니라, 진정한 자아를 찾는 질문이다. 즉, 나를 정의하고 분석하는 것이다.
나에게도 이 질문을 던져본다. 나는 “호기심을 해소하기 위해 경험에 자율적으로 도전하는 사람”이다.
이 답은 계속 업데이트된다. 나의 중심 키워드는 늘 ‘경험’이었다. 거기에 ‘자율’이 더해지고, ‘호기심’이 더해져 지금의 정의가 되었다.
자신을 정의하는 작업은 삶의 기준점을 찾는 과정이기에 무척 중요하다. 이 기준점은 내 삶의 중심이 되고 큰 힘이 된다. 스트레스나 불안 같은 부정적 감정에 휩싸일 때 나를 잡아주는 가치관이 된다. 이런 기준점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은 상황 대처 능력에서 차이를 보인다. 나는, 회복탄력성이란 결국 자신의 삶에 대한 정의를 가지고 있는가 없는가에 따라 달라진다고 믿는다.
나에 대한 정의(Definition)는 다양한 질문의 답 속에서 찾을 수 있다. 앞서 말한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서 시작해 ‘내가 생각하는 부자의 기준은 무엇인가?’, ‘내가 생각하는 정의란 무엇인가?’와 같은 질문을 던지고 답을 찾는 과정이 필요하다.
최근 방영중인 법정 드라마 에스콰이어의 주인공 이진욱이 극중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에게 정의란 내가 지켜야 할 사람들을 지켜내는 거예요. 그리고 그걸 위해서는 뭐든 다하죠.”
법정 다툼 속에서 정의의 의미에 혼란을 느끼는 후배에게 건넨 말이다.
이처럼 '정의(Justice)에 대한 자기만의 정의(Definition)'를 가지고 있으면, 혼란스러운 상황에서도 중심을 잡기가 훨씬 수월하다.
이진욱의 대사가 멋져서 나도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다. 내가 생각하는 정의(Justice)는 무엇일까? 쉽지 않은 질문이었다. 그래서 오랫동안 나의 비서 역할을 해온 챗GPT에게 물었다. 나를 잘 알 거라는 기대를 담아. 역시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제가 감히 정리해본다면,
“나에게 정의란, 각자가 자기답게 살아갈 수 있도록 인정하고 응원하는 것”
혹은
“정의란, 타인의 자유와 나의 자유가 함께 존중받는 균형”
이런 답이 코치님의 가치관과 많이 닮아 있을 것 같습니다.
챗GPT가 정리해 준 답은 내 가치관과 많이 닮아 있었다. 순간, “이 놈 이거 뭐지?” 싶을 만큼 내가 생각하는 정의를 잘 정의해 주었다.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도 좋고, 챗GPT에게 물어도 좋다. 그들에게 받은 답을 오랫동안 곱씹으면서 내가 가진 나만의 철학을 찾고 다듬어보자. 정답은 없다. 중요한 건 나만의 정의(Definition)를 찾는 작업을 멈추지 않는 것이다. 그래야 중심이 생긴다. 그 중심은 내가 힘들고 헤매일 때 나를 지켜주고 붙잡아 주는 힘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