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작가 말고 보조작가

그림자 코칭

by 최용

루키(The Rookie)라는 미드를 재미있게 보고 있다. 시즌1이 2018년에 첫 방영이 되었으니 출시된 지 좀 된 드라마인데, 우연히 넷플릭스에서 발견하여 보게 되었다. 에피소드 하나가 약 40분 정도 분량이라 아침에 러닝머신 위에서 보기에 딱 좋다.


루키(The Rookie)는, 이혼 후 방황하던 삶을 살던 주인공이 은행 강도를 당한 일을 계기로 LA경찰(LAPD)에 지원하면서 시작된다. 40세의 나이에 최고령으로 들어온 늦깎이 신입이 경찰이라는 치열한 현장에서 겪는 성장 스토리인데, 나는 커리어 코치 입장에서 참고할 만한 점이 많아 즐겁게 보고 있다. 또, LA라는 도시에서 경찰들이 맞닥뜨리는 다양한 사건·사고들이 흥미로운 볼거리이기도 하다.


마침 오늘 아침에 본 에피소드가 코치로서의 나에게 꽤 인상적인 메시지를 던져주어 글로 남겨본다.


드라마 속에서 신입 경찰들은 약 6개월간 사수와 함께 활동하며 실전을 경험하는 OJT(On the Job Training) 과정을 거친다. 이후 평가를 거쳐 정식 경관으로 임명되는 구조인데, 내가 시청 중인 장면은 아직 정식 경관이 되기 전, 훈련의 한복판이다.


매일매일이 다양한 OJT 과정이지만, 오늘 본 에피소드는 조금 특별했다.


보통의 일과는 사수와 신참이 정복을 입고 순찰차를 함께 타고 다니며 이루어진다. 그 과정에서 맞닥뜨리게 되는 사건들을 해결하면서 실무에 필요한 것들을 자연스럽게 경험하고 배운다. 하지만 오늘의 OJT는 사수가 평소와 달리 아예 사수 역할을 하지 않고, 사복차림으로 옆자리에 앉아 지켜보기만 하는 방식이었다.

사수는 순찰차에 동승하지만 사건 해결 과정에는 일절 개입하지 않는다. 개입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마치 존재하지 않는 것 처럼 행동한다. 따라서, 신참은 사수가 없는 것처럼 혼자서 사건을 처리해야 한다. 사수는 신참이 큰 위기에 빠질 경우에만 나설 수 있는 안전장치로 함께하고 있을 뿐이다.


신참은 이 낯선 방식이 불편했는지 옆에 앉은 사수에게 계속 말을 건다. 사건을 해결하는 순간에도 자꾸 조언을 구한다. 그러나 규칙에 따라 사수는 대응하지 않는다.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듯, 그림자처럼 곁에 머무르기만 한다. 시간이 반복되면서 신참은 차츰 혼자서 상황을 판단하고 스스로 결정하며 사건을 대응해 나간다. 마치 처음엔 의존하다가 점차 독립해 가는 아이의 성장 과정을 보는 듯했다.


나는 이 장면에서 코칭의 본질을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되었다.


코치는 클라이언트의 삶에 ‘정답’을 주지 않는다. 대신 질문을 던지고, 침묵하고 기다리며, 변화를 만들어 낼 기회를 제공한다. 클라이언트가 스스로의 힘으로 길을 찾도록 돕는 것이다. 때로는 사수가 사복차림으로 그림자처럼 동승하듯, 코치는 클라이언트의 여정에 보조작가로 동행한다. 하지만 메인작가는 언제나 클라이언트이다. 코치는 옆에서 그 여정을 지켜보며, 그가 길을 잃지 않도록 눈빛과 마음으로 챙기며 동행할 뿐이다.


그림자 처럼 보일 듯 보이지 않게 동행하기 위해서는 갖추어야 할 기본 관계가 있다.


첫째, 코치는 안전한 공간을 만들어주는 사람어야 한다. 드라마 속 사수가 옆자리에 있는 이유는 단 하나, 신참이 위급한 상황에 처할 때 개입하기 위함이다. 코칭에서도 마찬가지다. 코치는 클라이언트가 도전하고 시도하는 과정에서 넘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전제한다. 하지만 완전히 방치하지 않는다. 필요한 순간에는 안전망 역할을 한다. 클라이언트가 더 큰 상처를 입지 않도록 환경을 세팅해주는 것이다.


둘째, 불필요한 개입을 삼가는 사람이어야 한다. 코치는 답을 대신 말해주지 않는다. 신참이 사수에게 끊임없이 묻지만, 사수는 끝내 입을 열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것이 신참의 성장을 방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코치는 클라이언트가 스스로 사고하고 결정하는 힘을 기르도록 돕는다. 개입이 적을수록 클라이언트의 주도성은 강화된다. 때로는 침묵이 가장 강력한 코칭 스킬이 된다.


셋째, 성장과 변화를 지켜보는 동반자이어야 한다. 코칭의 핵심은 해결책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성장과 변화의 과정을 함께 걸어가는 것이다. 신참이 점차 혼자 사건을 해결할 수 있게 되는 순간, 사수는 말없이 미소를 짓는다. 그것은 ‘네가 해냈다’라는 묵묵한 인정이다. 코치 역시 클라이언트가 스스로 성취해내는 순간을 함께 목격하는 동반자이다. 코치는 답을 주지 않았지만, 클라이언트가 자신의 힘으로 답을 찾았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이런 점에서 오늘 본 루키의 OJT 방식은 코칭 장면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했다. 있는 듯 없는 듯, 그러나 결코 부재하지 않은 존재. 필요한 순간에만 조용히 개입하는 그림자. 바로 그것이 코치의 역할이다.


내가 살아가는 길에 내 곁에서 있는 듯 없는 듯, 그러나 결코 부재하지 않은 존재로 함께하는 사람이 있다면 얼마나 든든할까? 내 곁에서 나를 응원하며 필요할 때 버팀목이 되어주는 코치가 있다면 얼마나 힘이될까?


나에게 그런 사람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내가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이 되어보자는 생각으로 바꿔 본다.

우리 모두가 서로 그런 존재가 되어보자. 그렇게 서로를 챙겨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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