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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다 Oct 10. 2020

시끄러운 침묵

고요한 외침으로 일관했던 그날

 조용히 살고 싶다. 주변의 듣그러운 일들에 휘말리지 않고 바라지 않는 일에 얽매이지 않으면 내 삶은 꽤 평화로울 테니까. 남 때문에 피곤할 일 없이 조용히. 그래서 될 수 있는 한 피했고, 차라리 무심한 사람이 되는 쪽을 택했다. 맘껏 흔들리고 휘둘려 본 뒤에, 나를 세상의 중심에 두기로 마음먹었을 때부터 그랬다. 그날도 혼자서 천천히 걷는 길이 좋았고, 이어폰을 타고 흘러나오는 음악을 들으며 걷기에 좋은 날이었다. 



 그때였다. 쿵 하는 굉음이 들렸다. 사고가 났다. 순식간에 오토바이는 넘어지면서 앞 유리가 와장창 깨졌고, 운전자는 그대로 땅에 퉁, 하고 떨어졌다. 배달업체의 오토바이와 1톤 트럭의 사고였는데, 유턴이 되지 않는 도로에서 트럭이 급하게 차를 돌리다가 직진하던 오토바이를 친 것이다. 사고를 당한 운전자는 팔과 다리가 부러진 것 같았다. 트럭 운전자는 차에서 내리자마자 트럭 범퍼를 확인했다. 범퍼가 구겨져 있었다. 트럭 운전자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일어나지도 못하고 신음만 뱉는 사람을 힐끗 보고는 곧장 차에 다시 올라타는 것이 아닌가? 당연히 112 든 119 든 신고를 먼저 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예상치 못한 전개에 그냥 지나치려던 길을 멈춰 서고 말았다.


내가 신고를 해야 하나, 현장을 먼저 찍어둬야 하나, 사고를 낸 운전자가 트럭을 길가로 빼는 모습을 보며 생각들이 뒤엉켰다. 주머니 속의 핸드폰만 만지작대던 찰나 옆에 있던 한 젊은 여자가 급하게 달려오며 전화를 걸었다. 위치를 설명하는 것으로 보아 신고를 하는 모양이었다. 지나가던 다른 오토바이는 사고 현장을 가로막고 진입하는 차량들을 우회시켰다. 누군가는 사고를 당한 운전자에게 괜찮냐며 연신 상태를 확인했고, 다른 많은 사람들도 현장에서 바닥에 누워있는 이를 가까이에서 감쌌다. 얼마 지나지 않아 구급차와 경찰차가 도착했다. 환자는 곧 들것에 실려 옮겨졌고 구급차는 급하게 떠났다.


경찰은 현장을 확인하고는 트럭 운전자가 누구냐며 소리쳤다. 그러고 보니 사고를 낸 사람이 내내 보이지 않았다. 검은테 안경을 쓴 중년 아저씨였는데… 급하게 이리저리 돌아보니 저 멀리에서 핸드폰을 붙잡고 통화를 하고 있는 아저씨가 보였다. 어떻게 사람이 저럴 수가 있나, 생각을 하면서도 막상 경찰에게 저기 있다고 크게 소리쳐주지는 못했다. 다행히도 머지않아 경찰이 발견하고는 그에게 다가갔다. 현장 사진도 찍지 않은 채 차를 옮겨버린 트럭 운전자가 본인 잘못이 아니라며 발뺌을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혹시나 사고 목격자가 필요하지는 않을까 해서 수습되는 동안 그 자리에 머물러 있어야 할 것 같았다. 나는 한동안 지켜보다가 그가 전화를 끊고 경찰과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본 뒤에야 안심하고 걸음을 옮겼다. 


집으로 돌아오는 발걸음이 무거운 것은 사고를 목격해서 놀랐기 때문인지 아니면 마음이 무거운 것인지 분간할 수가 없었다.



사고가 나던 순간. 거침없이 사고 현장의 한가운데로 달려가던 용감한 사람들이 계속 떠올랐다. 고민 없이 곧장 신고를 하던 사람, 현장을 통제하던 사람, 구급차가 올 때까지 피해자의 상태를 확인하고 현장을 지켜준 사람들. 멀찍이 떨어져 지켜만 보던 나와는 분명 다른 사람들이었다. 바람대로 현장에는 휘말리지 않았지만 그 생각들로 내내 마음이 불편했다. 다른 일들이 눈앞에서 또다시 벌어진대도 나는 피해 가거나, 발만 동동 구르거나, 고작 마음속으로 소리쳐보거나, 핸드폰만 만지작대다 결국 방관자가 돼버리겠구나 생각하니 목 끝부터 얼굴까지 화끈거렸다.


조용한 삶에 대해서 생각한다. 고요한 외침으로 일관했던 그날의 사고를 떠올리며 시끄러운 마음속을 한참이나 헤맨 뒤에 깨달았다. 나는 침묵했지만 내 마음은 잠잠하지 않았으니까. 때로는 소리 내는 용기가 필요하겠구나. 평온한 마음을 지키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하다. 용기, 이 두 글자를 다짐 섞어 소리 내뱉어본다. 그제야 구겨진 마음이 조금 펴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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