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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다 Sep 12. 2020

나는 빨래를 좋아한다

혼자 있을 때 할 일이 얼마나 많은데

 누군가와 함께 산다는 건 무엇인가는 포기해야 한다는 것이다. 십 년 가까이를 부모님과 떨어져 살았고 회사를 그만두면서 다시 부모님 집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주변에서는 혼자 살다가 들어가면 못 견딘다더라, 같은 걱정을 했다. 하지만 괜찮았다. 집이라는 공간은 나에게 큰 의미가 없었다. 어차피 집은 잠만 자는 곳이었으니까. 실제로 부모님과의 동거는 큰 문제가 없었다. 아침 일찍 나와서 저녁 늦게 들어가니 부딪힐 일이 거의 생기지 않았다.


 엄마는 살림꾼이다. 요리도 잘하고 청소도 잘하고, 덕분에 늘 집은 깨끗했고 모든 것이 항상 제자리에 있었다. 그런 엄마에게도 못하는 것이 한 가지가 있다. 내 흰 티셔츠에 푸른 물이 든 채로 옷장에 개켜져 있거나, 니트가 입을 수 없을 정도로 쪼그라들어 있거나, 검은색 후드티에 돌돌이로도 뗄 수 없을 만치의 흰 먼지들이 잔뜩 붙어있는 일들이 종종 생기면서 알게 되었다. 타고난 살림꾼인 엄마도 빨래만큼은 소질이 없는 것이 분명했다. 푸른 물이 든 티셔츠를 들고 화를 냈을 때 엄마는 실수라고 했다. 니트를 세탁기에 돌렸냐고 소리쳤을 땐 몰랐다고 했고, 흰 먼지가 잔뜩 붙어있는 후드티를 들고 난리를 쳤을 땐 미안하다고 했다. 색깔별로 옷을 빨아야 하는 거 아니냐고 하니 그럼 도대체 세탁기를 몇 번이나 돌려야 하냐고 엄마가 짜증을 부렸다. 그렇다면 내 옷은 내가 빨겠다고 제발 아무것도 빨지 말라고 간곡히 말했지만, 내 방 의자에 하나둘씩 쌓여가는 빨랫감을 못 본 척 내버려 둘 수는 없는 깔끔한 우리 엄마였다. 사실 빨지 말라고 해도 그럴 리 없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다시 독립해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은 다름 아닌 빨래 때문이었다.


다시 혼자 살게 되면서 이제 더 이상 빨래를 망칠 걱정이 없다는 사실이 좋았다. 언니가 통돌이 세탁기를 선물해 줬다. 통돌이가 드럼세탁기보다 잘 빨린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흡족했다. 나는 작은 집에 두기엔 너무 큰 4단 건조대를 샀다. 흰 빨래용, 색깔 옷 빨래용, 중성 세제, 세 가지 종류와 섬유 유연제도 구비했고 세탁망도 여러 개를 크기별로 준비했다. 수건은 수건끼리, 흰옷은 흰옷대로, 검은 옷, 색깔 옷, 속옷, 양말을 모두 분리해서 빨 수 있다. 수건을 빨 때에 섬유 유연제는 넣지 않아야 한다는 사실도 잊지 않는다. 빨랫감에 먼지가 붙어 나오지 않도록 세탁조는 주기적으로 청소를 해준다. 세탁기가 돌아가는 동안 퍼지는 섬유 유연제 향기가 좋다. 통이 돌아가는 소리도 경쾌하고, 물이 빠지는 소리도 시원하다. 빨래가 다 돌아갔다는 알림음도 좋고, 문을 열었을 때 퍼지는 미지근한 김도 좋다. 커다란 건조대에 가지런히 널린 빨래들도 보기 좋다. 바싹 마른 수건과 옷을 각 잡아 개키는 것까지도 좋으니 나는 정말 빨래를 좋아한다. 다시 혼자 살게 되면서 알게 된 사실이다. 내 집에선 세탁기를 몇 번이나 마음껏 돌려도 괜찮다.


“집에 혼자 있을 때 뭐해? 심심하지 않아?”라는 질문을 간혹 들으면, 혼자 있을 때 할 일이 얼마나 많은데? 빨래만 해도 (서너번을 연달아 돌리니까) 시간은 금방 가는걸. 혼자 사는 사람들이 집에 있는 것을 못 견뎌 하는 것을 신기하듯 생각하다가도, 나도 집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 익숙하지 않았던 때를 떠올린다.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얼마 전까지도 집에 있는 것이 괜히 게을러 보이는 것 같아서 사람들을 많이 만났고, 딱히 약속이 없어도 밖에서 시간을 보냈다. 집에서는 잠만 잔다고 하면 굉장히 바쁘고 부지런히 사는 사람처럼 보이겠거니 생각했다. 늘 바쁘고 생산적인 일을 하는 사람처럼, 게으른 사람처럼 보이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언젠가 그것이 조금 피곤하다고 느껴졌던 순간, 혼자 살게 되었고 조금씩 나에게 빈 시간들을 주기 시작했다. 빨래를 돌리고 세탁기가 돌아가는 소리를 들으며 책을 읽거나, 손자국 난 유리창을 닦거나 청소기를 돌리고 먼지를 닦아내거나, 혹은 아무것도 하지 않거나.


정신적 외상 치유 전문가인 로라 판 더누트 립스키는 그녀의 책에서 이렇게 말했다. "하던 일을 계속하기 위해 잠깐의 휴식이 필요하다면 스스로에게 시간과 공간의 여유를 주어야 한다. 그냥 아무것도 하지 마라. 잠시 멈추는 것이다." 시간을 귀하게 쓰는 방법이 꼭 대단한 일들을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고작 빨래를 하며 즐거움을 느끼니까. 나에게 시간과 공간을 주면서 알게 되었다. 세상과 조금 떨어져 있는 동안 나는 내가 되어간다. 몸과 마음이 편안한 상태로. “나는 빨래해. 그게 너무 좋아.”라고 말해도 혹여 남들에게 게을러 보이지는 않을까 걱정하지도 않는다. 혼자 산다는 건 나 자신을 바라볼 틈을 만들어 주는 것이다.


틈이라는 시간에서, 틈이라는 공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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