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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다 Aug 09. 2020

꽉 막힌 고집쟁이

창피한 줄도 모르고 

어려서부터 사람들 앞에 나서야 하는 일들이 많았다. 반장을 도맡아 해야 했던 내 유년시절은 그 시작점이었다. 여럿의 대표가 되어야 하는 일은 타의로 시작된 일이었지만 내게 걸려있는 기대들에 부흥하는 것이 내가 가야 하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대표는 모범적이어야 하니까 올바른 길만 가겠다고 다짐했다. 인정을 받는 것 같을 때면 성취감을 느꼈고 그럴수록 더 욕심이 생겼다. 그렇게 내 목소리는 점점 커져갔다. 그 자리에 있으려면 나는 틀림이 없어야 했다. 딱히 내 의견에 반박하는 사람도 없었고, 네가 틀렸다고 말하는 사람도 없었다. 그렇게도 별 무리 없이 살아올 수 있었다.


문제는 머지않아 생겼다.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회사에는 선임님이라 부르는 사수가 있었는데 나는 사원과 선임의 경력 차이가 얼마큼 나는지도 인지하지 못하는 초년생이었다. 학교에서 배운 대로 업무에 적용시킬 수 있을 거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던 그때. 내가 생각하는 것이 정답이라고 여전히 믿고 있던 때였다.


내 작업물을 확인받아야 했는데 선임님은 “이렇게 하면 안 되고, 내가 알려주는 대로 해야 해.”라고 말하며 다시 해오라고 했다. '내가 알고 있는 대로 제대로 했는데, 이게 틀렸다니?’ 피드백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나는 되가져온 일을 대충 수정하는 척 끄적이다가 얼마 뒤 다시 가져갔다. 돌아오는 건 왜 가르쳐준 대로 하지 않냐는 선임님의 호통이었다. 나는 버럭 큰소리를 치며 “제가 한 게 맞는 것 같은데요?”라고 받아쳤다. 순간 아차 싶었지만 돌이킬 수 없었다. 일은 손에 잡히지 않았고, 온종일 불편한 마음으로 좌불안석이었다. 가림막 하나를 사이로 어색한 공기가 온몸을 짓눌렀다. 선임님이 알려준 방법으로 작업을 마무리했다.


그날 밤, 메시지를 썼다가 지웠다가 결국 죄송하다는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답장은 오지 않았다. 다음날, 도망가고 싶은 마음을 겨우 붙잡고 출근을 했다. 선임님은 잠시 커피 한 잔을 하러 가자며 회사 앞 카페로 나를 데려갔다. 나는 잘못했다고 빌었고 용서를 받았다. 누군가의 조언을 받아들이는 것도 내가 틀렸음을 인정할 수 있는 용기가 있어야만 가능한 일이었다.


이런 일도 있었다. 친구들과 이야기를 하던 중에 내 생각과는 다른 이야기하는 친구가 있었다. 나는 친구의 말을 받아들일 수 없어서 그 친구의 말은 듣는 둥 마는 둥 하고 그게 아니라고 우겼는데, 뱉고 나서 생각해보니 그 친구의 말이 맞는 것 같았다. 그래도 내가 한 말을 번복하느니 내가 맞다고 우기는 쪽을 택했다. 박박 우기다가 결국 나는 언성이 높아졌는데 나와 이야기를 하던 친구는 얼굴이 새빨개지다가 결국은 “그래그래. 너 말이 맞다”며 상황을 정리했다. 내가 맞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속이 시원 할리 없었다.


나는 내가 틀렸다는 생각이 들면 부러 더 화를 냈다. 틀렸다는 사실이 세상에서 가장 창피한 것인 줄로만 알았으니까. 어쩌면 지금까지 내 말이 늘 옳다고 생각할 수 있었던 상황들은, 사실 내 주변의 너그러운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내가 말하고 행동하는 것을 나 자신이 지켜보고 있을 때의 그 불편함이란. 그래서 사람들은 온전히, 나다운 상태를 원하는지도 모른다. 스스로에 대해 더 이상 불편함을 느끼지 않는 상태. 내가 나를 좋아할 수 있는 상태. 나에게서 나 자신이 소외되지 않는 상태. 내가 나인 것이 자연스러운 상태.

-한수희 ⟪온전히 나답게⟫



늘 틀림없는 사람이 돼야 한다는 강박 속에서 나는 불편한 마음과 불편한 상황을 마주하면서도 애써 모른 체하며 내가 맞다고 맞다고 되뇌었다. 나는 늘 맞는 사람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것이 아님을, 여러 번의 문제가 생긴 뒤에야 알았다. 주변의 상황들이 나를 그렇게 만들었다고 탓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그저 나는 꽉 막힌 고집쟁이임을 받아들였다.


시간이 흐를수록 나는 작아질 때가 많았다. 틀리는 일도, 잘못하는 일도, 실수하는 일도, 못하는 일도, 점점 더 많아졌다. 그 사실을 깨닫고 나니 오히려 마음이 너무나 편안했다. 나를 불편하게 하는 것들은 틀 안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바로 나 자신을 향해 있었다.


내가 바라는 모습의 내가 아니라 그저 나인 나를 받아들이게 되기까지, 나를 용서해준 사수가 있었고, 나를 참아준 친구들이 있었다.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주위의 많은 이들이 있었을 거다. 미안하다고 말하고, 내가 틀렸다고 인정하는 것이 이제는 내게 더 이상 어려운 일이 아니다. 지난 부끄러운 순간들을 떠올리며 이제는 나에게서 나를 외면하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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