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입학 후 1~2년 지나고 나서 누구보다 바쁘게 살았다.사실 쫓기며 버틴 것에 가깝다.무언가를 하지 않는 시간들이 인생을 낭비하는 듯한 느낌이었기에 스스로를 다그치며 일, 동호회, 봉사활동 등 다양한 활동과 관계를 만들었다. 그렇게 평일과 주말 구분 없이 외부활동에 시간을 쏟았다. 그렇게 지내던 어느 날부터 머릿속에 뿌연 안개가 낀 듯한 느낌이 들면서 눈앞의 선명한 현실의자국들이 지워지기시작했다.
바빠서 잠시 그런 걸 거야. 스스로 다독였지만 안갯속에 가려진 멍한 시간들은 늘어났다. 보고서를 써야 하는데 집중력이 떨어졌다. 그럼에도 나는 여전하게 어느 하나도 놓칠 수 없었고 발등에 떨어진 불 끄듯 각종 활동들을 '처리'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어느 날부터 눈앞이 깜깜해지기 시작했고, 사무실에 앉아 있는 것이 힘들어지기 시작했다. 회사 소속의 프리랜서 신분으로 근무가 자율적이어서 좀 더 버텨보려 했지만 일에 대한 회의감과 삶에 대한 무력감이 깊어져 일을 그만두기로 했다.
송별회 겸 상사분과의 저녁식사를 위해 모였다. 작은여의도 지하 식당에 앉아 음식을 기다리는데 호흡이 가빠지기 시작했다. 점점 눈앞이 캄캄해지기 시작해 공기를 좀 쐬면 나아질 것 같아 건물 앞으로 나왔다. 그러나 증상은 점점 심해지면서 검은 물속으로 빠져 이대로 죽을 것만 같았다.
내 손으로 119를 눌렀다. 같이 자리하던 친구가 한참을 들어오지 않는 나를 걱정하며 나왔다. 119를 불렀으니 가방을 챙겨달라고 얘기하고 대형빌딩에 흔히 있는 조경물의 평평한 대리석 위를 누워 응급차를 기다렸다. 응급차를 타고 가는 시간 동안 다시 진정이 되었고, 병원에서 아무 이상이 없다는 결과를 받고 나왔다.
이 일을 계기로 당분간은 쉬면서 회복하려 했다. 그러나 프리랜서로서 좋은 조건으로 제의가 들어오게 연속해서 들어오게 되면서 일을 손에 놓지 못했다. 봉사활동은 사업이 종료되면서 멈췄지만 동호회도 지속하고 독서모임까지 여러 개 참여하면서 다시 바쁜 생활이시작되었다. 그렇게 19년 쓰러지면서 5년이 지났다.
그러는 사이 불안은 해결되지 못하고 점점 몸집을 불려 나갔다. 그리곤 자꾸 위험한 생각을 불러냈다.
본능적으로 몸은 이 생각을 막아서기 위해 온몸에 지진이 나고 따듯한 기운이 한 번에 빠져 갑자기 추위를 몰고 오는 듯이 떨려왔다.
그러면 안 된다는 몸부림과 현존하는 고통을 벗어나고 싶은 생각의 격투. 다행히 이성적인 몸부림이 도망치고 싶은 욕구를 막아주었다. 그리고 이런 격투의 근본적인 뿌리를 찾아내 해소하고 싶어 다시 상담을 시작했다.
불안을 잠시 잠재우기 위해 doing으로 버텨온 것 같은데, 이제 Doing보다 being에 집중해 보는 것이 필요해 보입니다. 무언가를 하지 말고 가만히 감정을 인정해 주는 시간을 가져보세요
상담선생님은 Doing(행위)이 아닌 being(존재하기)에 집중하는 것을 권했다. 인생을 효율과 효능으로만 일관하던 나에게 존재 자체로만 있다는 것은 쉽지 않았다. 차근차근 그간의 행위를 멈추기 시작했다. 각종 모임들을 줄이고, 집에서 빈 백에 반쯤 몸을 걸친 채 창문 너머의 해질녘 노르스름한 포근함을 지켜보았다.그럼에도 불안은 사라지지 않고 다시 불쑥불쑥 찾아와 누워있는 나의 표피를 벗겨내곤한다.
지금도 아무것도 안 하는 '나'를 자꾸 무가치함으로 스스로 몰고 간다. 그럴때마다 나는 존재 그 자체로도 가치 있고 괜찮다고 스스로 되뇐다. 이제는 다른 사람과 외부 상황을 돌보며 존재를 인정받지 않아도 된다고, 이제는 그동안 애쓴 나라는 존재를 돌봐주겠노라고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