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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윌버와 샬롯 Dec 02. 2019

난 오늘도 딸에게 졌다

: 하루 한 컷 만보 클럽

주말 내내 딸과의 신경전이다. 얼르고 달래도 도통 들어먹질 않는다. 엄마가 하나를 양보하면 저도 뭘 어느 하나 정도는 수그러들고 말아야 하는 거 아닌가. 얻을 건 홀랑 얻어가고 의무는 저버리겠다는 심보가 영 마뜩지 않다. 부모와 자식과의 관계는 양자가 만족하는 타협이 결코 이루어지지 않는다. 누군가 한쪽은 꼭 약자이게 마련이다.


서로 만나지도 않고 좁혀지지도 않을 이 평행선 같은 상황이 두통을 부른다. 현명하고도 지혜로운 부모는 온데간데 없어진다. 금세 지쳐버리고 다운되어 엄마는 동굴로 들어간다.


그렇게 주말을 감정 소모로 소비하고 나니 걷기가 더 절실했다.



바람이 차다. 이 정도 바람이야 이미 익숙하지만 마음이 스산해 그런지 더 따갑게 느껴진다. 하루가 다르게 나무는 앙상해지고 산길은 매일매일 쌓인 낙엽으로 더욱 낯설다. 같은 길이 다른 옷을 입어 매번 눈길을 뗄 수가 없다. 산은 여전히 그 자리에서 말없이 나를 맞이한다. 그리고 조용히 다가와 서늘한 나를 품어준다.


비에 젖은 낙엽을 밟으며 생각했다. 아이만 쓸데없는 고집을 피우고 있는 건지, 아니면 아이에게 꼭 필요하다고 내건 것이 엄마의 욕심은 아니었는지. 엄마가 딸에게 바라는 그 한 가지가 정말 그렇게 대단하고 중요한 것인지.


역시나 정답은 없다. 그래도 미움만 가득 차게 한 동굴을 빠져나오니 마음의 여유와 작은 틈이 생겼다. 걸으니 조금은 이해할 수도 있을 듯싶었다. 차갑고 따갑던 공기는 무거웠던 가슴을 한결 가볍게 했다.


그렇게 엄마는 오늘도 아이에게 진다. 이 선택이 또 다른 날에는 후회할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다만 기억하자. 어떤 결정이었든 그 순간만큼은 최선을 다한 것임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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