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마음을 비웠고 양보도 했으며 다시 한번 기회를 주고자 했다. 그러나 그마저도 내게 등을 돌린다면 어찌해야 할까.
처음은 내 발등을 내가 찍었지 하며 후회의 감정이 쓰나미처럼 밀려온다. 그때도 물론 고심하며 했던 결정이 단박에 무용지물이 되며 신념에마저 큰 상처를 입는다. 이미 엎질러진 물은 어떻게 수습해야 할지 감도 잡히지 않는다. 막다른 골목이다. 오도 가도 못할 신세에 다시 침전의 시간이 흐른다.
이럴 때일수록 무조건 걷는다
상념은 계속 그 자리에 머물고 있다. 붙잡고 있는다 해서 없어지거나 그 해결책이 생기는 것도 아니다. 이럴 땐 다른 공기를 마셔야 한다.
다행이다. 내게 일상의 걷기라는 습관이 있어서. 그저 운동화를 신고 나오기만 했는데도 머리가 맑아진다. 숨이 가쁘지만 그 헐떡거림이 다시 깨어나게 하는 힘이 된다. 차갑고 날카로운 이 공기는 다시 숨을 쉴 수 있게 한다. 구름 한 점 없는 이 파란 하늘로 잃어버린 미소를 찾는다.
내가 원했던 플랜 A는 처참히 실패했다. 그러나 그게 끝은 아니다. 그다음 플랜 B를 준비한다. 누가 알랴. 그 두 번째 계획이 최고의 결과가 될지. 그런 희망을 다시금 품게 되지만 솔직히 여전히 겁은 난다.
내가 선택한 이 길의 끝은 희망일까
인생이라는 큰 그림을 미리 당겨서 볼 수만 있다면, 이런 살 떨리는 시행착오를 줄일 수만 있다면, 저 가로수 끝에 무엇이 있는지 알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이라는 숫자는 거침없이 늘어만 가는데 그에 걸맞은 내공의 축적은 참 더디기만 하다.
두 발로 이 거리를 꾹꾹 밟는다. 괜찮다고 나를 토닥이듯 힘차게 걷는다. 신선한 바람을 맞으니 마음이 한결 유연해진다. 주사위를 다시 던질 용기가 조금 생겼다. 이제는 다시 기다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