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엔 베란다에 있던 반려식물을 안으로 들이는 일을 했어요. 그 아이들도 추울 텐데 차일피일 미루고만 있었죠. 기온이 많이 내려가는 날이면 나 혼자만 따뜻한 실내에 있다는 죄책감이 자꾸 들기 시작해 더 이상 미룰 수가 없었습니다.
시들은 이파리는 떼어내고 웃자란 가지는 잘라주고 나름 예쁘게 손을 보아 거실 여기저기 적당한 곳에 배치해줍니다. 두 시간 정도의 노동으로 허리는 뻐근했지만 속이 다 후련했어요. 김장도 했고, 화초도 들여놨으니 월동준비는 끝인 셈입니다.
걷기는 그러나 아직 멈출 수 없습니다. 아침 기온 영하 2도라는 예보는 조금은 움츠려 들게 하는 온도이긴 합니다. 하지만 아직은 방한복만으로도 이 정도는 너끈히 걸을 수 있죠. 화초도 따뜻한 곳으로 이사시켜 놓으니 세상만사 근심이 사라지고 이까짓 추위는 만만해 보입니다.영하 10도면 몰라도 이 정도 기온은 아직 괜찮겠지 싶습니다. 나가기 전에 미세먼지는 또 어떨까 살펴보니 공기질도 나쁘지 않아요. 그런데 이런저런 지수를 자꾸 확인하는 제 자신이 보입니다. 어쩐지 안 나갈 핑계를 찾고 싶은 무의식의 발로이지 않나 잠시 뜨끔했습니다.
안타깝게도 그 어떠한 타당한 이유가 발견되지 않네요. 그렇담 얼른 나가야지요.
이 단풍 색깔이 진정 자연이 빚어 낸 색인가요
어제 비가 내려 산에 가는 길이 괜찮을까 싶었지만 오늘은 산길을 걷고 싶었어요. 역시 늦가을 산행도 운치가 있네요. 한층 더 많이 떨어진 낙엽 때문에 저벅저벅 걷는 기분도 좋고요. 다만 바닥이낙엽에 가려 돌이 숨겨져 있거나 미끄러울 수 있으니 발걸음은 조심해야 합니다.
바람도 좀 불고 공기도 차서 단단히 입고는 나왔어요. 손에 장갑도 끼니 좀 더 추위에 자유롭습니다. 스타일은 살지 않지만 후드티에 있는 모자를씁니다. 그제야 하나도 춥지 않아요.
코끝은 조금 시리긴 하지만 산 공기가 참 신선합니다. 비가 온 후라 그런지 솔잎 향이 진하게 전해졌어요. 어릴 적 추석 때 솔잎 넣어 찐 송편 냄새처럼 좀 과하게요. 가슴 깊이 숨을 들이마셔봅니다.
처음 지나가는 길이 아닐텐데 처음인 듯 경치에 잠시 걸음을 멈춥니다
이런 담벼락이 예전에도 있었을까요. 새삼스레 예쁜 담벼락에도 눈길이 닿습니다. 금방이라도 눈이 내릴 것만 같은 날씨예요. 이럴 때 분위기 좋은 카페에서 따뜻한 커피 한 잔 괜찮겠죠. 산을 내려와 근처에 있는 카페에 들어가니 짜잔 트리가 안팎으로 멋들어지게 반겨줍니다. 아직은 11월이라 그런지 소녀가 된 것처럼 트리가 참 반갑습니다. 머지않아 캐럴송도 심심치 않게 들리겠죠.
작년 겨울에는 집에 트리를 설치하지 않았는데 올해는 어쩔까 고민이 됩니다
포근한 카페에 앉아 따뜻한 커피 한 잔 하니 노곤해지고 나가기가 싫어집니다. 그래도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야겠죠.
아담한 산길을 걸었지만 한 주 시작으로 이런 기분 나쁘지 않은 것 같습니다. 항상 느끼는 거지만 자연은 언제나 옳은 것 같아요. 다른 날의 걷기 그리고 또 다른 풍경을 기대하며 오늘도 만보를 채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