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는 이야기 초입부터 '같은 사무실 안에 남편의 여자가 있다'는 충격 메시지를 던진다. 용의자는 셋이다. 회사 동료이자 친구, 아이 둘이 있는 유부녀 부하직원, 갓 들어온 낙하산 신입. 이 중에 누가 당첨될까.
그 베일은 매주 하나씩 벗겨지는 양상이다. 지난주 회차까지 봤을 때는 남편이 오해받고 있는 거라고 난 오해했다. 그렇게 굳건히 믿었더랬다. 드라마를 띄엄띄엄 봐서 전체 맥락을 놓친 건지 모르겠으나 암튼 만나기로 약속한 부인을 놔두고 신입에게 달려간 남자를 보고 다음 날 연예 기사는 드디어 불륜녀를 찾았다고 썼다. 그때만 하더라도 코웃음 쳤다. '거참 기자 양반들, 드라마 볼 줄 모르네'하면서 말이다. 남자 주인공의 반듯하고 착한 이미지 탓이었을까. 부사장의 내연녀를 관리하는 남자로서 받는 당연한 오해라고 이해했다.
이번 주 회차 드라마를 모두 보고 나니 아, 화가 났다. 이 드라마 고구마다. 마음이 흔들린 남자에게도 짜증이 났지만 문제의 어린 여자가 더 꼴 보기가 싫다. 다음 주 예고편을 보니 서로의 관계를 들켰음에도 여전히 남자를 포기하지 않고 있다. '뭐야, 저 당당함은? 근데 나 왜 이러지. 왜 이렇게 화가 나는 거야. 이 감정은 또 뭐지.'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인 것을 현실 분간 못하며 현실 배우에게 욕하면서 드라마를 보는 그런 사람, 나는 아니지 않은가. 나 이성적인 사람인데. 꼴랑 한 시간 짜리 이런 드라마 가지고 왜 그러는 거야?지금 기분 같아서는 시장바닥에서 머리끄덩이 잡아가며 싸우는 게 다 속이 시원할 것 같으니 말 다했다. 작은 울화가 치미는 것이 욕구불만일까. 늙었나 보다.
자기만의 아픔을 다른 여자가 알아줬다해서 홀랑 마음이 이동하는 남자, 누구 남편인지도 뻔히 알면서도 마음을 멈추지 않는 여자, 둘 모두 딱 싫다. 내막이 더 어떻게 펼쳐질지는 모르겠지만 약한 척, 착한 척, 사연 많은 척하는 그 둘에게는 어떤 연민도 아직은 생기지 않는다.
두 장면은 좀 시원했다. 그녀 업무 능력의 미달을 두고 '당신은 그래서 특혜인 거야'라고 팩트로 공격할 때, 또 하나는 남편과의 관계를 부사장 부부에게 눈 하나 깜짝 안 하고 드러낼 때가 바로 사이다였다. 혼자 전전긍긍하지 않고, 남편에게 매달리지도 않으며 지옥에 함께 가자고 말하는 마지막 장면까지 장나라 만세였다. 그래, 부셔버려.
앞으로 이야기 전개 방향은 누구의 편일지 모르겠다. 사연 많은 두 남녀의 사랑이 지지받을지, 말해주지 않아 아무것도 모르던 차에 뒤통수 맞은 여자가 여차 저차 하여 남편의 사랑을 다시 찾아 승리한다는 이야기일지. 단지 드라마는 화려하거나 갑질이거나 백화점 VIP 고객 이야기인 줄로만 알았는데 기승전 치정극이었다. '황후의 품격'과 같은 다소 센 드라마 행보와 같이 원래가 명랑 로코퀸이던 장나라의연기 패턴 변화가 놀랍고 의미심장하다. 장나라도 이제는 나이 든 건가.
내 입장은 이렇다. 남편 있는 어쩔 수 없는 평범한 유부녀여서 그런지 이번 주 회차까지 본 감정으로써는 장나라의 처절한 응징을 앞으로 기대한다.
울근불근하며 "아, 고구마!"라고 자꾸 중얼대니 옆에 있던 남편은 "어제 삶은 고구마 남았어? 하나 먹을까?"라며 굳이 밤 11시에 엉뚱한 호박고구마를 찾고 있다. 이 알 수 없는 분노의 출처는 아무래도 남편에게 뭔지 모를 서슬 퍼런 감정이 내게도 있는 건 아닌지 살짝 의심이 드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