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오랜만에 만보를 걸었습니다. 아이들이 방학을 했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그동안 걸을 수 없었던 합당한 이유는 단 한 가지 공기 질이 좋지 않아서였습니다. 그 이유 하나만으로 연말 동안 걷기가 매우 소홀해졌습니다. 이불속은 참 따듯도 했지요. 그러나 1월 1일 새해 오늘, 그렇게 어영부영 넘어갈 수 없습니다. 다행히 흐리긴 하지만 공기가 맑았습니다.
일 년 중에 가장 자발적으로 부지런해지는 날이 제겐 오늘이기도 합니다. 새해 첫날부터 게으름을 피우면 그 한 해가 어쩐지 엉망이 될 것 같은 혼자만의 주술과도 같을까요. 멀리 일출을 보러 가는 수고로움까지는 아니지만 지역에서 주체하는 일출 행사는 꼭 참석하고자 합니다. 마음은 항상 그렇긴 했지만 실제로 실천을 한 건 작년이 처음이었습니다. 해돋이를 보며 지역 주민과 함께 소망을 쓴 풍선을 날리는 행사가 그리 나쁘지 않더라고요. 마음가짐도 남다르게 느껴지고 여느 날과 또 다른 기분이 들어 좋았습니다.
일기예보를 보니 올해 일출은 날이 흐려 동해에서만 볼 수 있을 거라고 하더라고요. 어차피 보지 못할 일출인데 새벽부터 산에 가는 부산을 떨기는 싫었습니다. 그저 아침 일찍 떡국을 끓여 먹고 가벼운 아침 산행이라도 그나마 해보자 했습니다. 다행히 아들내미가 같이 나서 줘 외롭지 않았어요.
나뭇잎을 거의 떨구어 낸 겨울 산은 오늘도 새로운 점을 제게 알게 했습니다. 가지가 앙상해지니 평소에 걷던 그 길이 너무나 새롭게 느껴지는 겁니다. 예전에는 안보이던 산 밑으로 쌩쌩 달리는 도로 위 차 그리고 그 소음, 훤히 보이는 아파트 단지 전경이 참 낯설었습니다. 산을 걷는 느낌보다 도심 한가운데를 지나는 기분이었어요. '이렇게 도시 가까이 산이 있었구나'라며 익히 알고 있는 점에 대해서도 새삼스러웠습니다. 산속으로 들어가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당장 앞의 숲만 보이던 시야가 이제는 더 넓어져 도심까지 품었습니다.
휴일이면 집 앞 학교 운동장은 아이들도 없는데 시끌시끌합니다. 조기축구회 소리 때문입니다. 오늘도 어김없이 축구하러 나오셨네요. 새해 첫날인데도 열심인 모습이 보기 좋았습니다. 떡국은 드시고 나오셨을까요? 아니나 다를까 산으로 오고 가며 새해 아침부터 운동하시는 분을 많이 뵙긴 했습니다. 산 아래 배드민턴장이나 테니스장에는 사람과 차량으로 붐볐거든요. 팔팔 뛰어가며 주인을 운동시키는 반려견도 여럿 발견했습니다.
아들과 두런두런 얘기하며 간 산행이라 오늘은 더욱 힘들지 않았습니다. 집으로 올라가는 아파트 계단에서는 고사리 볶는 냄새가 나네요. 그것은 바로 차례 준비의 냄새입니다. 새벽부터 음식을 준비했을 어느 어머니의 노고가 밴 향이기도 하지요. 신정을 쇠시나 봅니다. 가족 모두 모여 맛있는 식사를 하시겠군요.
혹시나 엄마가 외로울까 싶어 따라 나온 아들이 고맙네요. 작년에는 풍선을 온 가족이 함께 날렸는데 올해는 아들과 이렇게 추억을 쌓았습니다. 내년의 오늘이 되면 또 지금의 오늘이 떠오르겠죠.